상투적이라는 말이 과히 불쾌하지 않은 이유
생명과학에 따르면, 행복과 고통은 단지 그 순간에 어떤 신체감각이 우세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반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실직해서, 이혼해서, 전쟁이 일어나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이다. 실직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우울증 자체는 일종의 불쾌한 신체감각이다. 우리는 수천 가지 이유로 화를 내지만, 화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화는 항상 열이나 긴장 같은 감각을 통해 일어나고, 그런 감각이 화를 솟구치게 만든다. 우리가 '열불' 난다고 표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 이하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 에서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르는 골을 넣지 않아도 그런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기대하지 않던 승진을 하고 기뻐서 팔짝팔짝 뛴다면, 당신 역시 같은 종류의 감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마음의 더 깊숙한 부분들은 축구나 직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 부분들이 아는 것은 오직 감각뿐이다. 승진했는데도 어떤 이유로 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해고되었는데도(또는 결정적인 축구 경기에서 졌는데도) 지극한 쾌감을 느낀다면(아마 어떤 약을 먹었기 때문일 텐데), 당신은 그런 사건과 관계없이 세상 꼭대기에 있는 느낌일 것이다.
나쁜 소식은, 유쾌한 감각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불쾌한 감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르는 골을 넣어도 그 행복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은 내리막길만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승진을 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도, 승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쾌감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그 경이로운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다시 승진하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승진하지 못한다면, 계속 말단 직원이었을 때보다 휠씬 더 씁쓸하고 화가 날 것이다.
모두 진화 탓이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오면서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적응했을 뿐, 행복을 위해 적응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생존과 번식에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쾌한 감각으로 보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알팍한 상술일 뿐이다. 우리는 배가 고픈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기분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을 즐기기 위해 음식과 연인을 필사적으로 찾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은 얼마 못 가고,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음식과 연인을 찾아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