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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지나친 고통] 사람의 일이란

상투적이라는 말이 과히 불쾌하지 않은 이유

by 콩코드


생명과학에 따르면, 행복과 고통은 단지 그 순간에 어떤 신체감각이 우세한가의 문제이다. 우리는 외부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반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실직해서, 이혼해서, 전쟁이 일어나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유일한 것은 몸에서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이다. 실직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우울증 자체는 일종의 불쾌한 신체감각이다. 우리는 수천 가지 이유로 화를 내지만, 화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화는 항상 열이나 긴장 같은 감각을 통해 일어나고, 그런 감각이 화를 솟구치게 만든다. 우리가 '열불' 난다고 표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 이하 《호모데우스: 미래의 역사》 에서



모를 일입니다. 원하지 않은 곳에 가 있기도 하고 바라지 않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곳과 그런 일이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곳, 그 일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못 찾을 것도 없습니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일견 맞지만 마음 먹는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부터 인정할 때라야 말에 의미가 있겠지요. 바꿀 수 없으면 받아들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멀리 본다는 말의 의미가 그렇겠지요. 이마저도 헛된 기대임을 모르지 않지만 가능성이라는 여지는 조금 남겨두겠습니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르는 골을 넣지 않아도 그런 감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기대하지 않던 승진을 하고 기뻐서 팔짝팔짝 뛴다면, 당신 역시 같은 종류의 감각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 마음의 더 깊숙한 부분들은 축구나 직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 부분들이 아는 것은 오직 감각뿐이다. 승진했는데도 어떤 이유로 쾌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해고되었는데도(또는 결정적인 축구 경기에서 졌는데도) 지극한 쾌감을 느낀다면(아마 어떤 약을 먹었기 때문일 텐데), 당신은 그런 사건과 관계없이 세상 꼭대기에 있는 느낌일 것이다.



몇 권의 책을 앞에 두었습니다. 책들 사이에 연관성은 크게 없습니다. 아침 시간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가다듬을 수단으로는 딱히 내키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렇다고 탁자 위에 꺼내놓은 책을 다시 가방 안에 쑤셔 넣을 정도로 크게 못마땅하지는 않습니다.



읽은 부분을 이어 조금씩 읽으면 어느 정도는 가늠되겠지요. 어떤 책은 한참 뒤에나 특별한 계기로 다시 책장을 펼칠 기회를 잡게 될 겁니다. 대신할 책은 근처 책방에서 구입하기로 합니다.


되도록 오전 시간을 길게 보내려 합니다. 핸드폰은 내려놓고 주변을 가끔 둘러보고 틈틈이 책을 읽을 작정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날 때쯤 호수 주변을 걸어보려 합니다. 풀 한 포기, 나뭇가지 하나하나 눈에 꼭 담을 생각도 했습니다.



습관대로 손에 책을 들고 이곳을 나서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입니다.





나쁜 소식은, 유쾌한 감각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불쾌한 감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르는 골을 넣어도 그 행복이 평생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실은 내리막길만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승진을 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도, 승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낀 쾌감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그 경이로운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다시 승진하는 수밖에 없다. 그다음에도 마찬가지이다. 혹시 승진하지 못한다면, 계속 말단 직원이었을 때보다 휠씬 더 씁쓸하고 화가 날 것이다.

모두 진화 탓이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수없이 많은 세대를 거쳐오면서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늘리기 위해 적응했을 뿐, 행복을 위해 적응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화학적 기제는 생존과 번식에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쾌한 감각으로 보상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알팍한 상술일 뿐이다. 우리는 배가 고픈 불쾌한 느낌을 피하고 기분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을 즐기기 위해 음식과 연인을 필사적으로 찾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맛과 황홀한 오르가슴은 얼마 못 가고, 그런 감각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더 많은 음식과 연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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