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르지만 틀리다는 말

다양성의 표면 아래 숨겨진 동일성 강박

by 콩코드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다.”

이 말은 이제 너무 익숙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기업의 인재상, 학교 교육 철학, 정부 홍보 문구, 개인 SNS 프로필까지, 우리는 ‘다양성’과 ‘포용’을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말 뒤에는 질문이 숨어 있다. 과연 우리는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않는가?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진정으로 ‘다름’을 허용하고 존중하는가? 아니면 다름을 겉으로만 수용하며 스스로 그 경계선을 그어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양성과 포용이 표면적으로는 공고한 가치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면에는 ‘동일성 강박’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작동한다.


‘동일성 강박’이란 “다름은 허용하되, 정해진 틀 안에서만”이라는 사회적 압박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르다’고 인정받기를 바라면서도, ‘너무 다르면’ 위험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다름에는 일정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는 사회가 공유하는 관습, 문화, 정치적 기호,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조직이나 학교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의견이 기존 질서나 분위기를 심각하게 흔들면 ‘조화롭지 못하다’, ‘팀워크를 해친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젠더, 인종, 성적 지향 등 사회적 정체성의 다양성도 마찬가지다. 다양성을 외치면서도, 특정 집단이 지나치게 목소리를 내거나 기존 규범에 적극 도전하면 ‘과격하다’, ‘소란스럽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즉,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어느 정도 다름까지만’ 허용하는 이중 잣대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름’의 경계, 그 불편한 진실

다양성의 경계가 어디인지 정확히 규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기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며, 누가 그 경계를 설정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다름이 ‘틀림’으로 치환되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틀림’은 단순한 차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배제와 낙인을 의미하며, ‘틀린’ 존재는 곧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된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다르지만 괜찮다”는 말이 제공하는 보호막 밖으로 밀려난다.


이처럼 다름과 틀림 사이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다. 하지만 그 모호함 자체가 사회적 통제의 역할을 한다.


사회는 이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유지함으로써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든다.


“나는 너무 다르진 않은가?”

“내 다름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어디까지 표현해야 할까, 어디서 멈춰야 할까?”


개인은 이런 불안과 고민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제한하고, ‘허용 가능한 다름’에 맞추려 끊임없이 애쓰게 된다.


결국 우리는 ‘다름’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검열과 자기 제한의 굴레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동일성 강박과 자기검열

동일성 강박은 결국 개인의 자기검열로 귀결된다.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와 욕구를 숨긴 채,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기대에 맞춰 ‘적당히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강요받는다.


이는 다양성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다양성이란 단순히 ‘차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존재들이 충돌하고 부딪히면서도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이해와 관계를 창조해 나가는 행위다.


하지만 동일성 강박은 이러한 다름을 ‘관리 가능한 차이’로 축소시키고, 결국에는 ‘동질성’이라는 하나의 틀로 수렴시킨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사회적 안정과 조화를 위한 필요한 장치일 수는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심각하게 억압하는 위험한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사회는 다름을 허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허용 가능한 다름의 범위를 좁히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존재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진짜 나’와 사회적 나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본질적 욕구를 표현하는 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결과적으로 동일성 강박은 다양성을 말하는 사회에서조차 개인의 자기검열과 내적 위축을 부추기는 역설적 현상으로 우리 모두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진짜 자세

진정한 다양성은 다름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때로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며 그로 인한 충돌과 갈등을 감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즉, 우리가 진심으로 다름을 인정하려면 때로는 ‘틀림’을 용인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과 긴장을

함께 견뎌내야 한다는 뜻이다.


포용은 단순히 ‘좋은 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의 불완전함과 불편함을 직면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조화를 이루려는 진정한 용기와 태도다.


이런 태도와 용기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다양성은 그저 겉치레에 불과하며, 결국 동일성 강박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다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




심층 공부를 위한 이야기들

이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몇몇 학자와 사상가들의 통찰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리베카 솔닛은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사회가 다름을 어떻게 ‘위험한 것’ 혹은 ‘틀린 것’으로 규정하며 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는지를 예리하게 분석한다. 그녀의 글은 다름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이해하고 진정한 포용의 의미를 고민하는 데 귀중한 시사점을 준다.


또한,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과 담론의 관계를 통해

어떤 생각과 행동이 ‘정상’으로 간주되고, 어떤 것이 ‘비정상’ 혹은 ‘틀림’으로 배제되는지를 보여준다. 이 관점은 다양성의 한계를 넘어 권력 구조 속에서 ‘다름’이 어떻게 관리되고 통제되는지 깊이 있게 성찰하도록 돕는다.


심리학자 케빈 윌슨은 ‘동일성 강박’과 관련해

개인이 사회적 소속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독특성을 숨기고, 집단 규범에 동조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이는 왜 사람들은 다양성 시대에도 실제 행동에서는 자기 검열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도, 다문화주의, 퀴어 이론, 포스트콜로니얼 연구 등 여러 학문 분야가 다양성과 동일성 강박의 긴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하고 있다.


진정한 ‘다름’을 향한 여정은 단순한 가치 선언을 넘어서 복잡하고 미묘한 권력과 문화의 얽힘을 이해하고, 스스로 내면에 숨겨진 동일성 강박과 마주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 글이 ‘다르지만 틀리다는 말’ 너머에 감춰진 사회적 압박과 개인 내면의 갈등을 비추는 작은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