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거울-'파시즘'과 '타인의 고통'을 함께 읽다

by 안녕 콩코드



서론 ― 두 개의 거울 앞에 서다

역사는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마다 비추는 얼굴은 다르다.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은 제도와 운동, 정치와 권력의 얼굴을 직시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그의 눈에 비친 파시즘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과정 속에서 움직이는 살아 있는 현상이다. 반면,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감각과 이미지, 시선과 감정의 층위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사진으로 마주할 때, 그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감각에 스며들고, 때로는 무력하게 만들며, 또 때로는 동조를 길러내는지를 손택을 통해 성찰한다.


두 권의 책은 장르는 다르지만 하나의 질문에서 만난다. “인간은 어떻게 폭력에 끌리고, 그 폭력을 소비하며, 때로는 재생산하게 되는가?” 정치학과 미학, 제도와 감각, 구조와 윤리가 서로 다른 차원에서 교차한다. 그리고 그 교차의 자리에서 오늘의 우리가 서 있다.


파시즘의 궤적: 팩스턴의 분석 틀

팩스턴에게 파시즘은 단순한 이념이 아니다. 그는 파시즘을 하나의 '운동의 경력(career)'으로 파악한다. 이는 단순히 ‘나치즘’이나 ‘무솔리니 시대’의 정치적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권력과 대중, 폭력과 제도가 서로 얽혀 어떻게 파시즘적 현상이 형성되는지를 설명한다.


팩스턴의 다섯 단계 모델은 다음과 같다.


창출: 불안과 분노가 사회에 누적되고 새로운 운동이 등장한다. 경제적 위기, 사회적 혼란, 정치적 불신은 이 시기의 배경이다.

뿌리내림: 운동은 기존 제도의 균열을 파고들며 지지 기반을 확장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는 전쟁 후 혼란 속에 등장하며,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을 포섭했다.

권력 획득: 운동은 기성 정치와 타협하거나 충돌하며 권력을 잡는다. 독일의 히틀러가 1933년 총리로 임명되는 과정은 팩스턴이 말한 ‘권력 획득’ 단계의 전형적 사례다.

권력 행사: 합법적 제도를 비틀고 폭력을 제도화하며 통치한다. 나치 정권은 비밀경찰, 선전, 강제 수용소 등으로 권력을 공고히 했다.

체제화 혹은 해체: 내부 모순과 외부 압력에 따라 체제는 안정되거나 붕괴한다. 스페인 프랑코 정권이나 루마니아, 헝가리의 사례에서 그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다.


팩스턴이 강조하는 핵심은 대중의 자발적 동원이다. 지도자의 카리스마만으로는 파시즘이 유지될 수 없다. 파시즘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할 때 살아난다. 이 점에서 손택의 시선과 맞닿는다.


이미지와 고통: 손택의 문제제기

손택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우리가 전쟁 사진을 볼 때, 그 고통은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소비되는가?” 하지만 그 단순함은 곧 복잡한 심연으로 우리를 이끈다.


사진은 고통을 전달하지만 동시에 고통을 거리두기 한다. 우리는 잔혹한 장면에 충격을 받지만, 곧 익숙해지고, 때로는 ‘아름답다’고 느끼기도 한다. 손택은 이 과정을 해부하며, 사진 속 고통이 연대와 냉담, 동원과 무관심을 동시에 불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스페인 내전의 로버트 카파 사진, 베트남 전쟁의 ‘네이팜 소녀’ 사진은 충격적이지만, 동시에 강렬한 미학적 구성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의 힘은 곧 감각적 매혹이며, 동시에 인간성을 시험하는 장치가 된다.


손택은 우리에게 거울을 들이댄다. “당신은 목격자인가, 아니면 방관자인가? 아니면 은밀한 소비자인가?” 이 질문은 파시즘의 대중적 토대와 겹친다.


교차지점 1 ― 폭력의 미학과 정치

파시즘은 정치적 운동인 동시에 미학적 연출이었다. 나치의 대규모 집회, 깃발과 횃불, 균일한 행진은 단순한 정치 행위가 아니라 시각적 스펙터클이었다. 팩스턴은 이를 대중 동원의 핵심 전략으로 설명한다. 집단적 감각의 동조가 폭력을 강화하는 순간이었다.


손택은 전쟁 사진에서도 유사한 지점을 지적한다. 사진은 고통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미학적 힘으로 사람들을 매혹한다. 미학적 구도 속 고통은 잔혹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전한다. 그 모순이 관객을 붙잡는다.


결국 두 책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폭력은 미학을 통해 강화된다. 파시즘 집회든, 전쟁 사진이든, 폭력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감각적 경험으로 사람들을 움직인다.


교차지점 2 ― 대중의 자리

팩스턴은 파시즘을 이해할 때 “지도자”보다 “대중”의 역할을 강조한다. 무솔리니나 히틀러는 대중의 열광이 없었다면 그저 떠돌이 선동가였을 것이다. 파시즘은 평범한 사람들의 참여로 제도화된다.


손택 역시 ‘이미지의 소비자’를 단순한 구경꾼으로 두지 않는다. 이미지를 본다는 행위는 곧 관여다. 사진 속 고통을 소비하며, 우리는 목격자와 공모자 사이를 오간다.


여기서 두 거울은 하나의 얼굴을 비춘다. 폭력은 소수의 지배자가 아니라, 다수의 참여와 시선의 합으로 유지된다. 이는 두 책이 공통으로 던지는 불편한 진실이다.


교차지점 3 ― 망각과 반복

팩스턴은 파시즘이 특정 역사적 순간의 산물이지만,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패턴임을 경고한다. 경제적 위기, 사회적 불안, 정치적 분열은 파시즘적 동원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손택은 이미지의 반복과 망각을 지적한다. 충격적이던 사진도 반복되면 감각은 무뎌지고, 결국 무관심과 냉담이 생긴다. 이 공백 속에서 새로운 폭력은 다시 등장한다.


두 사람의 결론은 겹친다. 망각은 폭력의 토양이다. 역사를 잊고 고통을 무시할 때, 파시즘적 순간은 다시 도래한다.


현대적 적용 ― 21세기의 파시즘과 이미지

오늘날 우리는 파시즘을 ‘과거의 유령’이라 치부한다. 그러나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적 동원을 가능케 한다. 혐오와 배제의 언어는 순식간에 확산되고, 이미지와 밈이 집단 결속을 강화한다.


팩스턴의 분석은 포퓰리즘과 혐오 정치에 그대로 적용된다. 손택의 문제의식은 디지털 시대에서 더욱 날카롭다. 우리는 전쟁 영상, 난민의 고통, 테러 현장을 휴대폰으로 스크롤하며 소비한다. 그 속도와 빈도는 감각을 무디게 하고, 냉담을 강화한다.


즉, 파시즘은 다시 돌아올 수 있고, 고통의 소비는 그 길을 닦는다.


철학적 사유와 윤리적 질문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바르트의 ‘사진의 푼크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우리의 사유를 더 깊게 한다.


아렌트: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잔혹한 체제에 협력하는가

바르트: 사진이 감각과 감정을 매혹하는 방식

아감벤: 폭력적 제도 속 생명 정치


이들은 팩스턴과 손택의 관찰을 철학적으로 보강한다. 우리는 단순히 폭력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윤리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결론 ― 목격자이자 행위자인 우리

팩스턴은 구조와 제도의 문제를, 손택은 감각과 윤리의 문제를 보라고 한다. 두 책은 다른 언어를 쓰지만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그 자리는 불편하다.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구조 속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지워버리고 있는가?


역사와 이미지, 권력과 감각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선택과 시선 속에 살아 있다. 우리는 언제나 목격자이자 행위자로 서 있다.


이 두 권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거울을 마주하는 일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폭력과 동원 속에서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불편한 시선 끝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만들 것인가.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티모시 스나이더, 《폭정(On Tyranny)》

마사 누스바움, 《감정의 격동(Upheavals of Thought 중 일부)》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Homo Sacer)》


참고 사항: 사상가별 핵심 사유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잔혹한 체제 속에서 비인간적 행위가 어떻게 일상 속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극단적 악을 저지르는 개인의 기괴한 성향이 아니라, 일상적 삶 속에서 책임과 판단을 포기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역할이었다. 즉, 사람들이 명령과 관행에 순응하며 생각하지 않을 때, 폭력과 억압은 제도화되고 체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팩스턴이 파시즘의 대중적 토대를 분석한 것과 맞닿아, 아렌트는 우리 모두가 역사적 사건 속에서 선택의 주체임을 상기시킨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바르트는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을 매혹하는 장치로 이해했다. 그의 개념인 ‘푼크툼(Punctum)’은 사진 속 우연적 요소가 관객의 내면에 자극을 주어 감정을 일깨우는 방식을 설명한다. 손택이 전쟁 사진과 고통의 이미지 소비를 분석할 때, 바르트의 이론은 사진이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심리를 움직이고, 연대와 무관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아감벤은 폭력적 제도 속에서 ‘생명 정치(Biopolitics)’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주권적 권력이 특정한 생명을 보호하거나 배제하고, 때로는 희생시키는 방식을 통해 사회를 통제한다고 보았다. ‘호모 사케르(Homo Sacer)’ 개념은 법과 정치의 경계 속에서 인간이 생명체로서 어떻게 대상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파시즘과 현대 권력 구조 속에서 폭력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특정 집단의 삶이 정치적 결정에 의해 좌우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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