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살인』과 『폭염사회』를 중심으로
올여름은 유난히 잔인하다. 계절이 바뀌어 더위가 한풀 꺾여야 할 시점에도 폭염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낮의 아스팔트는 마치 용광로처럼 달아오르고, 사람들의 피부는 태양의 직격탄에 그대로 노출된다. 언론은 연일 최고 기온 경신을 보도하지만, 수치의 놀라움은 이미 무뎌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몇 도"가 아니라, "누가 살아남는가"다.
폭염은 단순한 ‘더위’의 차원을 넘어, 재난이자 사회의 균열을 비추는 거대한 렌즈가 되었다. 문제는 기온 상승 그 자체가 아니다. 누가 더 취약하게 노출되는가, 어떤 도시 구조가 위험을 키우는가, 어떤 사회가 더 쉽게 무너지는가―이 질문들이 폭염과 함께 던져진다.
이런 문제를 탐구한 두 권의 책이 있다. 제프 구델(Jeff Goodell)의 『폭염 살인(The Heat Will Kill You First)』은 과학적 사실과 구체적 사례를 통해 폭염이 인체와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직시한다. 반면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폭염사회(Heat Wave)』는 1995년 시카고 폭염을 분석하며, 같은 폭염 속에서도 어떤 공동체는 살아남고 어떤 공동체는 쓰러지는지를 사회학적 시선으로 해부한다.
두 책은 서로 다른 렌즈를 들이대지만, 함께 읽으면 폭염은 단순한 기후 현상을 넘어선 정치적·사회적 사건임이 분명해진다. 한쪽은 열의 물리적 파괴력을, 다른 한쪽은 그 열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되는지를 보여준다. 폭염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닌 구조적 취약성과 불평등을 드러내는 가장 적나라한 시험대라 할 수 있다.
구델은 폭염을 “기후위기의 최전선”이라 부른다. 허리케인, 홍수, 산불과 달리 폭염은 눈에 띄는 파괴 장면을 남기지 않는다. 지붕이 날아가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극적인 장면은 없다. 대신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인체의 한계
인체는 열을 견디는 데 매우 취약하다. 체온이 37도에서 단 1~2도만 상승해도 장기는 제 기능을 잃기 시작한다. 뇌는 혼란을 일으키고, 심장은 과도하게 뛰며, 혈관은 팽창한다. 땀의 증발이 막히면 체온은 급격히 치솟는다. 구델은 이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폭염이 결코 추상적 위험이 아님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체온이 40도에 이르면 신체 단백질이 변성되며, 42도를 넘어가면 뇌세포가 파괴된다. 의료 현장에서 열사병(heat stroke) 환자가 의식을 잃어가는 과정은, 폭염이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 사건임을 보여준다.
히트 돔과 기후학적 메커니즘
2021년 북미 북서부의 ‘히트 돔(heat dome)’ 현상은 이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기의 압력 구조가 열을 돔처럼 가두면서 지역 전체를 압박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마을은 섭씨 49.6도를 기록하며, 일반적인 “북극권 인근”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지옥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병원 응급실은 열사병 환자로 가득 차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유럽도 다르지 않았다. 2003년 여름, 유럽은 기록적 폭염으로 약 7만 명의 초과 사망자를 기록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냉방시설이 부족한 노인들이 대거 목숨을 잃었다.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창문을 열지 못한 채 홀로 쓰러진 사람들, 요양원에서 방치된 노인들의 죽음은 단순히 ‘더웠다’로는 기록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매년 수천 명이 폭염으로 생명을 잃는다. 전력 사정이 불안정해 냉방이 사치이고, 수도 공급마저 끊기는 지역에서 사람들은 그대로 열의 포로가 된다. 구델은 이를 “폭염은 인간을 선택적으로 죽인다”고 요약한다. 누구나 더위를 느끼지만, 모두가 같은 위험에 처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기후변화와 폭염의 일상화
폭염은 단순한 자연적 열현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가 낳은 새로운 ‘죽음의 기후’다. 대기 순환의 교란, 해양 온도의 상승, 도시 열섬 효과가 결합해 폭염은 점점 더 자주, 더 강력하게 찾아온다.
구델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폭염은 미래가 아닌 현재이며, 이제 계절적 일탈이 아니라 일상의 상수가 되었다. “앞으로 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와버린 현재”라는 그의 경고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생존을 겨냥한다.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는 폭염을 ‘사회적 해부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시카고 1995년, 일주일의 참사
1995년 7월, 시카고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폭염에 갇혔다. 단 일주일 사이 739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같은 폭염 속에서도 놀라운 격차가 드러났다. 일부 동네에서는 사망률이 급격히 치솟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다.
특히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도 지역별 차이가 뚜렷했다. 어떤 지역은 공동체 네트워크가 살아 있어 이웃들이 서로 안부를 확인하고, 주민센터나 교회가 냉방 공간을 열어주었다. 반면 빈곤과 범죄, 고립이 심한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창문을 열지 못한 채 두려움 속에 홀로 쓰러졌다.
사회적 인프라와 생존
클라이넨버그는 이를 “사회적 인프라(social infra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인프라는 단순한 물리적 시설―도로, 전력망, 냉방 시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동체적 유대, 돌봄과 신뢰, 관계망 자체가 재난 대응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회적 인프라가 살아 있는 지역에서는, 폭염은 견딜 수 있는 사건이었다. 반대로 인프라가 붕괴된 지역에서는, 폭염은 ‘죽음의 재난’으로 변했다. 클라이넨버그의 분석은 폭염을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재해로 규정하게 만든다.
불평등의 거울
폭염은 사회적 균열과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내는 거울이다. 도시 내에서도 누구는 에어컨과 냉방이 보장된 집에서 안정을 찾지만, 누구는 전기 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선풍기조차 켤 수 없다. 누구는 아파트 단지의 녹지와 그늘에서 숨을 고르지만, 누구는 시멘트 바닥 위에 그대로 방치된다.
폭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쌓아온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때로는 그 격차를 더 심화시키기도 한다.
『폭염 살인』과 『폭염사회』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한쪽은 생리학과 기후학의 수치를 통해 폭염의 물리적 위력을 보여주고, 다른 한쪽은 사회학적 서사를 통해 폭염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을 결합하면, 폭염은 단일한 재난이 아니라 이중의 재난임이 분명해진다.
첫째, 폭염은 인간 생리적 한계의 폭로다. 뇌와 심장, 호흡기와 피부가 열에 무너지는 순간,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체온이 급상승하고 장기가 제 기능을 잃는 순간은, 과학적 수치로만 표현될 수 없는 공포를 동반한다.
둘째, 폭염은 사회적 구조의 폭로다. 빈곤층과 노인, 이주민, 사회적 고립자들이 더 쉽게 쓰러지는 현실은, 폭염을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차별의 사건’으로 만든다. 같은 도시, 같은 기온 속에서도 피해가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이유는 사회적 불평등과 공동체적 인프라의 유무에 달려 있다.
이 두 층위가 교차할 때, 폭염은 단순한 기온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사건으로 확장된다. 열은 모두를 덮치지만, 피해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현실이 겹쳐질 때, 우리는 폭염이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 사회 구조와 인간 생존의 경계를 시험하는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폭염은 앞으로 더 자주, 더 치명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폭염 살인』과 『폭염사회』 모두 강조하는 핵심은 ‘시스템적 대응’이다. 단기적 처방이 아닌, 구조적·지속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도시 차원의 대응
녹지와 그늘의 설계
가로수와 공원, 녹색 지붕은 단순한 도시 미관이 아니라 생존의 장치다. 식물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과 증발 냉각은 도심 열섬 효과를 완화하고, 시민들의 체온을 보호한다.
공공 냉방시설
도서관, 체육관,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을 폭염 시 냉방 피난처로 운영하는 정책은 이미 뉴욕, 파리 등에서 시행 중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도시 재설계
시멘트와 아스팔트 대신 반사율이 높은 재료와 차열 재료를 사용하면, 도시의 열을 줄이고 표면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이러한 설계 변화는 장기적 관점에서 폭염 피해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회 차원의 대응
돌봄 네트워크 강화
폭염은 결국 고립된 사람을 먼저 무너뜨린다. 이웃 간 연락망, 주민센터의 안부 확인 체계, 자원봉사 네트워크는 작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가 살아 있는 공동체는 폭염 속에서도 사람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불평등 완화
냉방 전력 요금 지원, 취약계층 전용 냉방기기 지원 등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이는 생명선을 제공하는 사회적 안전망이며, 폭염이 사회적 차별을 심화하지 않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정치 차원의 대응
재난으로서의 폭염 규정
폭염을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니라 국가 재난으로 공식 인정하고, 예보·경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경보가 발령되면, 사회적 인프라와 돌봄 네트워크가 즉시 작동하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폭염 명명제(Heat Wave Naming)
허리케인처럼 폭염에도 이름을 부여해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이름이 붙은 폭염은 단순한 ‘더운 날씨’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으로 남으며 정책적 대응과 개인적 대비를 촉진한다.
폭염은 더 이상 단순한 계절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이자, 사회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내는 거울이다. 『폭염 살인』은 인체와 생태를 파괴하는 열의 과학적 현실을, 『폭염사회』는 공동체와 불평등의 사회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책이 합쳐 제시하는 풍경은 명확하다. 폭염은 자연과 사회, 생리와 정치가 교차하는 복합적 사건, 즉 ‘열의 정치학’이다. 더위는 모두에게 덮치지만, 그로 인해 무너지는 사람들은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 폭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단순한 날씨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뜨거운 초상이다.
다가올 시대, 우리는 더 많은 폭염과 맞닥뜨릴 것이다. 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를 줄이고 공동체를 지켜내며 불평등을 완화하는 일은 가능하다. 결국 폭염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재앙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연대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폭염은 단순히 ‘더운 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 기술과 정책, 연대와 분리 사이의 경계를 시험하는 사건이며, 우리 시대가 직면한 기후와 사회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폭염은 단순히 기온이 높아지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과학과 사회가 맞물린 복합적 사건입니다. 제프 구델의 『폭염 살인』은 체온이 평소보다 1~2도만 올라가도 장기가 제 기능을 잃기 시작하고, 42도에 이르면 뇌세포가 손상되어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는 열사병 사례를 통해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보여줍니다. 또한 ‘히트 돔(heat dome)’처럼 대기 구조가 열을 가둬 장시간 고온을 지속시키는 현상은 북미와 유럽에서 기록적인 폭염을 일으켰으며, 냉방과 의료 체계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한편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는 같은 폭염이라도 사회적 조건에 따라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1995년 시카고 폭염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들은 고립된 노인과 빈곤층이었지만, 공동체적 유대가 살아 있는 지역에서는 사망자가 훨씬 적었습니다. 클라이넨버그는 이러한 차이를 ‘사회적 인프라(social infrastructure)’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물리적 시설뿐 아니라 이웃 간의 신뢰, 돌봄, 지역 네트워크가 폭염 속 생존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처럼 폭염은 인간의 생리적 취약성과 사회적 불평등이 교차하는 재난입니다. 도시 설계, 돌봄 네트워크, 정책적 대응 등 여러 층위에서의 준비와 연대가 곧 생명을 지키는 열쇠가 됩니다. 폭염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온 변화를 관측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몸이 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회 구조가 누구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