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두 얼굴
우리는 일상에서 ‘진실’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한다. 뉴스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고, 법정에서는 오직 진실만이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진실이란 과연 하나의 단일한 실체일까? 우리가 ‘진실’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의 전모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시선과 언어를 통해 드러난 부분적 단면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진실은 표면에 드러난다. 신문 헤드라인, 뉴스 속보, 교과서의 서술처럼 모두가 공유하는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또 다른 진실은 은폐된다. 말해지지 않거나, 왜곡되거나, 혹은 고의적으로 덮인다. 이 간극 속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개인은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이 글은 ‘겉도는 진실’, 즉 표면적으로는 드러나 있지만 그 내부를 파고들지 못한 진실의 형태를 탐구한다. 나아가 왜 어떤 진실은 강조되고, 또 어떤 진실은 침묵 속에 남겨지는지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표면적 진실 – 모두가 아는 이야기
표면적 진실은 사회적 합의 위에 세워진다. 신문 기사, 정부 보고서, 교과서, 대중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성평등은 중요한 가치다”, “환경 보호는 시급하다”와 같은 진술은 사실 반박할 수 없는 당위로서 널리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진실들은 종종 ‘겉도는’ 상태로 존재한다. 예컨대 한국 사회는 분명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하지만, 실제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여전히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좌우된다. 성평등은 모두가 인정하는 가치지만, 직장 내 임금 격차와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환경 보호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지만, 매일같이 개발 논리 앞에서 후퇴한다.
즉, 표면적 진실은 그 자체로 거짓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인 양 말해지는 순간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이 괴리야말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첫 번째 간극이다.
은폐된 진실 – 말해지지 않는 것들
은폐된 진실은 단순히 숨겨진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공론장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집안 문제’, ‘개인적 불운’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졌고, 사회는 이를 불편한 주제로 취급하며 외면했다. 겉으로는 ‘여성의 권리’가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 현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폭력은 은폐된 진실로 남았다.
또 다른 사례는 노동 문제다. ‘노동의 가치는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 불안, 이주 노동자가 겪는 차별은 종종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한다. 뉴스에서 노동자의 파업은 교통 불편이나 경제 손실의 프레임으로 보도되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의 조건은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표면적 진실은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 놓인 구체적이고 불편한 현실은 은폐된다.
왜 진실은 겉도는가 – 권력과 언어
표면적 진실과 은폐된 진실의 간극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권력과 언어의 작동 방식이 있다.
푸코(M. Foucault)가 지적했듯, 권력은 단순히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규정하는 힘이다. 즉, 사회는 특정한 언어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승인하고, 다른 언어는 주변화하거나 금기시한다. ‘무난한 말’은 공적으로 승인되지만, 불편한 말은 위험하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맥락에서 표면적 진실은 권력이 승인한 언어의 산물이다. 반면 은폐된 진실은 권력이 보기를 거부한 현실의 잔여다. 따라서 진실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는 곧 누가 말할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한국 사회의 사례들
(1) 세월호 사건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표면적 진실과 은폐된 진실의 간극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안전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표면적 진실은 반복되었지만, 왜 구조가 지체되었는지, 왜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은폐된 진실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이유도, 바로 이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2) 부동산 문제
부동산 가격 폭등은 누구나 아는 사회 문제다. 표면적 진실은 ‘집값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폐된 진실은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에 있다. 개발 정책의 배경에 존재하는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정치와 자본의 결탁 구조는 종종 공론장에서 흐릿하게 다뤄지거나, 일부러 가려진다.
(3) 온라인 여론
인터넷 공간에서 드러나는 ‘국민의 목소리’ 역시 표면적 진실이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떤 알고리즘과 미디어 환경 속에서 증폭되었는지는 종종 간과된다. 온라인 여론은 전체 민의를 대표하지 않음에도, 마치 사회 전체의 합의처럼 포장되곤 한다.
겉도는 진실이 만드는 사회
겉도는 진실은 사회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첫째, 현실의 모순을 은폐한다. 표면적 진실이 강조될수록 사람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직장 내 차별이 지속되고,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도 개발은 계속된다.
둘째, 개인의 내면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모른다’는 감각을 지니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진실이 드러나 있지만, 어딘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불편한 감각. 이 이중성은 사회적 불신과 냉소를 낳는다.
진실을 드러내는 목소리들
그렇다면 은폐된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것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한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미투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다. 금기시되던 성폭력의 경험이 대규모로 발화되면서, 표면적 진실과 은폐된 진실의 간극이 폭로되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단순히 개인적 고통의 서술을 넘어, 사회 전체가 외면해 온 구조적 현실을 드러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표면적 진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실제로 장애인들이 이동할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은폐된 진실은 오랫동안 가려졌다. 지하철 시위와 같은 집단적 실천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겉도는 진실을 넘어 – 불편함을 감내하는 용기
겉도는 진실을 넘어서는 길은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아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과연 충분한지, 무엇이 누락되어 있는지를 묻는 순간 진실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불편한 대화와 충돌을 감내할 때, 비로소 은폐된 진실이 드러난다. 진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 속에서 갱신되는 과정이다.
진실의 다층성과 민주적 공존
〈겉도는 진실〉이라는 주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핵심 문제와 맞닿아 있다.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말해지지 않는 현실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진실을 향한 노력은 단순히 ‘옳은 말’을 반복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표면적 진실과 은폐된 진실의 간극을 직시하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사회적 대화를 지속해야 한다. 그것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민주적 공존을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진실은 결코 하나의 목소리로 완결되지 않는다. 진실은 언제나 겉돌며,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남긴다. 중요한 것은 그 빈틈을 부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며 채워 나가는 태도다. 그럴 때 우리는 ‘겉도는 진실’을 넘어, 조금 더 깊은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심층공부를 위한 이야기
이상의 글이 표면과 심층의 대비―곧 겉도는 진실과 은폐된 진실―에 집중했다면, 이제 심층 공부에서는 그 사이를 이어 주는 중층의 이야기, 즉 겉과 속을 매개하는 해석과 경험의 층위를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다. 심층 공부의 기본 틀은 다음과 같다.
표면(겉): 모두가 쉽게 접하는 ‘드러난 이야기’
중층(속살): 경험, 맥락, 해석이 쌓여 드러난 표면을 움직이는 층위
심층(밑바닥): 구조, 권력, 은폐된 현실
“겉도는 진실”을 삼층 공부로 다시 풀어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성평등
표면: “성평등은 중요하다.” – 교과서적이고 누구도 쉽게 반대하지 못하는 명제.
중층: 직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승진 차별, 회식 자리에서의 성희롱, 가사·돌봄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일상적 경험. 이는 단순한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삶에 스며든 구체적 고통이다.
심층: 성평등을 가로막는 구조적 힘. 가부장적 권력 체계, 노동시장의 성별 분리, 국가 제도 속 성차별적 설계. 은폐된 진실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배치”다.
안전 사회 (세월호 이후)
표면: “더 이상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자.”
중층: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겪은 깊은 상실, 현장에서 구조되지 못한 학생을 목격한 시민들의 트라우마, 이후 촛불집회에서 쏟아낸 분노. 안전은 표어가 아니라 경험의 층위에서 현실로 다가온다.
심층: 반복되는 참사의 원인은 단순한 관리 소홀이나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결탁, 규제 완화, 책임 회피 구조다. 심층의 진실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체계적 방치’다.
환경 위기
표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중층: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일상,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하는 개인, 폭염으로 삶이 바뀌는 노동자. 환경 문제는 생활 속에서 불편과 두려움으로 경험된다.
심층: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화석연료에 의존한 산업 체제, 탄소 자본주의, 글로벌 불평등. 표면적 실천(분리수거, 일회용 줄이기)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무난함의 규범
표면: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
중층: 대학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다른 의견’을 내기 주저하는 장면, 직장에서 불편한 문제 제기가 회피되는 문화, 온라인 댓글에서 비판적 발언이 ‘유해하다’는 낙인을 받는 경험. 무난함은 구체적 삶의 언어 습관을 지배한다.
심층: 무난함을 요구하는 힘은 단순한 예절 차원이 아니라, 집단적 압력과 권력의 장치로 제도화된다. 다양성 교육이 ‘정답만 있는 퀴즈’로 작동할 때, 무난함은 억압의 장치가 된다. 은폐된 진실은 “배려의 윤리”가 “동일성 강박”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정치적 중립
표면: “나는 정치에 중립이다.” – 갈등을 피하는 안전한 태도처럼 보인다.
중층: 페미니즘 논쟁에서 “나는 중립이다”라 말하며 실제 토론을 피하는 사람들, 직장 회식에서 정치 얘기를 금기시하는 분위기. 이는 현실 속에서 갈등을 외면하는 회피의 습관으로 나타난다.
심층: 중립은 다수 권력이 점유한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이며, 결국 기존 권력에 편승하는 정치적 행위가 된다. 은폐된 진실은 “중립은 비정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리
삼층 공부의 관점에서 보면, 겉도는 진실은 단순히 표면적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표면은 모두가 쉽게 동의하는 진실.
중층은 그 진실이 일상과 경험 속에서 갈등과 불편으로 드러나는 층위.
심층은 구조적 권력이 은폐한 근본적인 진실.
“겉도는 진실”을 탐구하는 공부는 이 세 층위를 오가며 읽어내는 일이다. 겉에 머무르지 않고, 속살을 헤아리고, 밑바닥을 직면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언어가 가린 억압을 넘어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