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 문화로 꿰뚫는 격동의 국제정세 30장면
1991년, 소련의 붕괴와 베를린 장벽의 철거는 전 세계에 '탈냉전 시대'라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미국이라는 단일 패권국(Hyperpower)을 중심으로 세계는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국제 규범과 기구(유엔, WTO 등)를 통해 협력하며 '지구촌'이라는 이상을 꿈꿨죠. 마치 모두가 함께 번영할 '이상향'에 도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냉전이 종식된 지 30여 년 만인 2020년대, 국제사회는 다시금 혼란과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서조차 "탈냉전 시대가 완전히 종언을 맞이하였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우리는 '신냉전(New Cold War)' 혹은 '각자도생(Self-Help)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러시아의 '규칙 파괴'와 강대국 경쟁의 부활
탈냉전의 종말을 전 세계에 가장 충격적으로 알린 사건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탈냉전 시대의 특징은 '규범 기반 국제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였습니다. 국경은 존중되고, 분쟁은 국제 기구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칙이죠. 그러나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임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정면으로 파괴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국가의 침공을 넘어, "이제 국제 규범은 강대국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무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진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의 군사적 굴기와 북한의 핵 위협 증대가 더해지면서, 국제사회는 미·소 냉전 종식 이후 잠시 잊고 지냈던 강대국 간의 경쟁과 힘의 정치(Power Politics)가 다시 지배하는 시대로 회귀했습니다.
'각자도생' 시대, 동맹의 재정의
탈냉전기에는 미국과의 동맹만 잘 관리하면 안보가 튼튼해지는 '이분법적 양극체제'가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동맹의 비용 증가: 미국은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동맹국들에게 방위비 증액과 자체 국방력 강화를 노골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는 동맹이 더 이상 '무조건적인 보호'가 아닌 '거래적 관계(transactional relationship)'로 변모했음을 시사합니다.
다자주의의 붕괴: 유엔 등 국제 기구가 러시아와 강대국의 거부권 행사 등으로 무력화되면서, 국가들은 보편적인 협력보다는 양자 관계나 소규모 이익 공동체(쿼드, 오커스 등)를 통해 생존을 모색합니다.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처럼, 거대한 연합군이 와해되고 각 부대가 고립된 채 "우리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팽배한 상황입니다.
정치적 분열은 고스란히 경제적 단절로 이어집니다. 탈냉전기의 핵심 엔진이었던 '세계화(Globalization)'는 이제 역회전하고 있습니다.
반(反)세계화와 공급망의 안보화
1990년대 이후 중국을 세계 경제 질서에 편입시키며 '하나의 세계 시장'을 만들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저렴한 비용만을 쫓아 전 세계에 흩어졌던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은 팬데믹과 미·중 갈등을 거치며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났습니다.
'디커플링'의 현실: 미국과 중국은 이제 첨단 기술(반도체, AI 등) 분야를 중심으로 서로를 배제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과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을 추진합니다.
경제는 곧 안보: 경제적 효율성보다 '안보'와 '회복 탄력성'이 우선시되면서, 공급망은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나 '블록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이제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관세와 수출 규제 같은 경제적 수단을 정치적 무기로 서슴없이 사용합니다.
강대국 중심의 '제로섬 게임' 심화
신냉전 시대의 경제 질서는 협력을 통한 '윈윈(Win-Win)' 대신 강대국의 이익이 최우선시되는 '제로섬 게임'의 경향이 짙어집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은 '보편 관세'와 같은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전 세계 교역 질서에 혼란을 가중시킬 것입니다.
결국, 탈냉전 시대가 '규범과 협력'을 통한 이상을 추구했다면, 신냉전 시대는 '힘과 이익'을 통한 무질서 속의 각자도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고립된 덩케르크 해변처럼, 우리 스스로 생존 전략을 짜야 하는 엄중한 시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화로 읽는 제1화] 《덩케르크》: 각자도생의 바다에서
제1화에서 다룬 '각자도생'의 시대와 '협력의 와해'라는 주제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Dunkirk, 2017)》를 통해 가장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에 고립된 영국군과 연합군 40만 명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립니다. 영화는 거대한 영웅의 서사 대신, 각 병사와 민간인들이 고립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규범의 붕괴: 병사들은 구조선을 기다리지만, 거대한 전장의 혼돈 속에서 질서나 규범은 무너집니다. 이기심과 절박함이 뒤섞이며,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최우선 목표가 됩니다. 이는 국제 질서가 붕괴했을 때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가 겪는 안보의 혼돈과 닮아 있습니다.
민간의 힘: 정부나 군대라는 거대한 체제가 제 기능을 못 할 때, 작은 어선과 민간인들이 바다를 건너 절망에 빠진 군인들을 구해냅니다. 이는 다자주의가 무력화된 신냉전 시대에 국가 간 협력이 아닌 개별 국가의 독자적인 노력이나 비공식적 연대가 생존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덩케르크 해변의 고립된 병사들처럼, 우리 모두는 지금 '신냉전'이라는 불확실성의 바다에서 스스로의 항로를 찾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위기 앞에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
다음 2화에서는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가 구체적으로 동맹과 국제 질서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거래적 외교'의 실체를 파헤쳐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