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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읽는 세계 질서

​5화. 디커플링의 실체: 첨단 기술의 국경

by 콩코드
​반도체와 AI, '기술 블록'의 탄생


​오늘 읽을 영화: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경제: 첨단 기술이 곧 '생존권'이다

​신냉전 시대의 가장 치열한 전장은 바로 기술 패권 경쟁입니다. 과거에는 영토나 군사력이 국가의 힘을 결정했지만, 이제는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같은 첨단 기술의 확보 여부가 국가의 미래와 안보, 경제를 좌우합니다. 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핵심 현상이 바로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입니다.


​'선택적 디커플링'의 현실: 중국 배제 전략

​디커플링은 본래 미국과 중국 경제 전체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의미했으나, 현실적으로는 상호 의존도가 너무 높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현재는 첨단 기술과 전략 물자에 한정하여 상대를 배제하는 '선택적 디커플링' 또는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 전략이 주를 이룹니다.

​반도체의 무기화: 미국은 중국의 첨단 기술 성장을 봉쇄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및 기술 수출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법규(예: CHIPS Act)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AI, 슈퍼컴퓨터, 군사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을 차단하려는 의도입니다. 반도체가 '21세기의 석유'이자 '기술 전쟁의 핵무기'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투자 규제: 단순 수출 통제를 넘어, 미국 자본과 기술이 중국의 특정 첨단 산업(AI, 양자컴퓨팅, 반도체 등)에 투자되는 것을 막는 역외 투자 제한(Outbound Investment Screening) 조치까지 검토되며, 기술 고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데이터 국경: 각국은 자국민의 데이터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데이터 서버를 자국 내에 두도록 의무화하는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을 강조합니다. 이는 글로벌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고, 정보 교류를 막아 '기술 장벽'을 높입니다.


​기술 블록의 탄생: 우방국끼리만 연결

​선택적 디커플링은 전 세계 공급망을 두 개의 거대한 '기술 블록'으로 쪼개는 결과를 낳습니다.

​서방 주도 기술 블록: 미국 주도의 동맹국들(한국, 일본, 대만 등)은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통해 우방국끼리만 공급망을 연결합니다. 이는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며,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입니다.

​중국 주도 기술 블록: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맞서 '기술 자립'을 최우선 국정 목표로 삼고 막대한 자본을 투입합니다. 또한, 일대일로 등을 통해 연결된 국가들과 대안적인 기술 표준을 만들고, 자체적인 공급망(반도체, 희토류 등)을 구축하여 서방의 압력에 저항하려 합니다.


​정치: 기술 패권과 글로벌 거버넌스의 딜레마

​기술 패권 경쟁은 단순히 경제를 넘어, 미래의 국제 질서를 규정하는 정치적 권력을 두고 벌이는 싸움입니다.


​'기술 종속'의 위험

​기술 블록화는 특히 한국과 같이 특정 기술 분야에서 강점을 가졌으나, 원천 기술이나 거대 시장 중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들에게 큰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미국 중심의 블록에 완전히 편입되면 중국 시장을 잃을 위험이 있고, 중국 시장을 선택하면 미국의 기술 제재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기술 종속'**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주권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 규범 전쟁

​AI, 사이버 보안 등 미래 기술은 아직 국제적인 통일 규범이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자국에 유리한 기술 표준과 윤리 규범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누가 먼저 이 기술 규범을 주도하느냐가 곧 미래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장악하는 열쇠가 됩니다.


​결국 디커플링의 실체는 경제 효율성을 포기하고, 기술 안보와 주권을 지키려는 강대국들의 생존 경쟁입니다. 이는 전 세계를 기술 보유 계층과 기술 종속 계층으로 나누는 냉혹한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영화로 읽는 제5화]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멈추지 않는 열차 속에서 기술과 계층이 어떻게 생존을 결정하는지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꼬리 칸 vs 앞 칸: 열차의 앞 칸은 생존에 필요한 첨단 기술(기관실, 식량 생산 시설)을 독점하며 부와 권력을 누립니다. 이는 반도체, AI 등 핵심 기술을 가진 국가(앞 칸)와 그렇지 못한 국가(꼬리 칸)로 세계가 나뉠 수 있는 기술 블록 시대의 계층 구조를 은유합니다.

​기술의 통제: 열차가 멈추지 않고 운행될 수 있는 것은 엔진이라는 절대적인 기술 덕분입니다. 신냉전 시대에서 반도체, AI 같은 핵심 기술은 바로 이 '엔진'과 같습니다. 이 기술을 통제하는 자가 곧 전체 질서를 지배합니다.


​이 영화는 기술의 보유 여부가 곧 생존 계층을 나누는 냉혹한 현실을 경고하며, 기술 패권 경쟁의 궁극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다음 회 예고]

​다음 6화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돈의 흐름'을 쫓아갑니다.


​미국 연준의 금리 정책이 초래하는 '강달러 시대'는 왜 계속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을 포함한 비(非)미국 국가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고 있을까요? 환율 1,400원대의 의미를 경제적 고통과 불안을 노래하는 블루스 음악에 비유하며, 글로벌 금융 불안정의 본질을 파헤쳐 봅니다. 6화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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