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내 임산부석 비워두기가 시행된 지 어림잡아도 10년 가까이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 내에선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그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게 된 안내와 달리 그 자리에 임산부가 앉는 건 별로 보지 못했다. 오히려 임신과 먼 여성이 앉아가거나 나이 든 분이 고정석처럼 앉는 일이 빈번하다. 임산부를 배려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자리가 취지와 무색하게 사실상 일반 여성의 고정석이 되었다.
주위 눈총에 아랑곳하지 않고 임산부석에 앉아가는 사람이나 자리를 비워둔 채 목적지를 향해 서서 가는 사람 할 것 없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들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좋게 말해서 임산부석에 앉아 가는 사람은 임산부가 오면 비켜주면 되지 싶은 심정이 없지 않을 테고, 서 가는 사람은 언제 임산부가 탈지 모르니 처음부터 자리를 비워두자는 마음이 접점 없이 평행선을 이룬다. 취지와 달리 사실상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임산부석. 진단과 처방을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애매한 방관 아닌 방관의 포지션을 오가며 서로 눈치만 보는 사이 임산부석이 때아닌 애물단지가 되었다. 다들 쉬쉬하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은 문제, 새삼스러울 것 없다. 대안을 세우든 폐지하든 해야 할 시점임에는 서로 공감하는 눈치다. 민감한 문제라고 지레짐작해서 - 방치한 사이 섣불리 말하기 곤란할 만큼 뜨거운 감자가 된 면이 있다. - 어떤 방안이든 해결책이 나오기만 기다릴 뿐이다.
제도의 취지 상 임산부가 앉기 전까지는 자리를 비워두는 게 올바름에도 임산부를 위해 비워둔 자리에 범 여성이 버젓이 앉아가는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는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여러 사람이 소리 없이 신경전을벌이는 상황도 볼썽사납다. 어떤 제도가 당초 취지에서 한참 벗어났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맞다. 대안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처럼 알아서 하겠지 하고 방치하는 건 대단히 무책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