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것들과 사라져간 것들에 대하여] 치킨계의 블루칩

부암동 〈사이 치킨〉

by 콩코드


- 비좁은 골목 사이, 작은 집들 사이에 가게를 차려 ‘사이’라는 말을 간판에 썼을 거라며 난 연신 주인장의 작명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인장을 칭찬했었다.



잘 튀긴 치킨에 길게 썰어 알맞게 구운 포테이토를 접시에 올리고, 또 다른 접시에는 데쳤지만, 숨이 과하게 죽지 않은 숙주 위로 양파를 올린 뒤 숙주와 양파에 적절히 밸 만큼의 소이 소스를 뿌려 낸 것이 전부였던 부암동 치킨. 그 조합이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는 여태 잊히지 않고 되살아나는 맛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치킨이 다 같은 치킨일 텐데 웬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그곳 치킨은,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대단했다. 워낙 많은 치킨 조리법이 나와 더는 새로운 것이 날 것 같지 않은 치킨에 주인장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문제의 '숙주 치킨'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이렇다 할 게 없다. 한쪽은 많이 보던 그 후라이드치킨이고 다른 쪽이라고 해봐야 양념을 가미한 데친 숙주일 뿐이었다. 주인장의 능력이라면 그 둘의 조합을 찾아낸 것이 전부인데, 급기야 그 조합에 피바람이 불고야 말았다.



가히 범접하기 힘든 웨이팅은 기본이고, 워낙 많은 손님이 몰려든 탓에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날 셈을 치르는데 주인장이 그랬었다.



- 이제 문 닫아야겠어요.

- 워낙 많이 드셨어요.



그 말인즉 닭이 떨어져 더는 손님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인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사이 치킨〉은 속칭 ‘숙주 치킨’(어째 무시무시하다. 본래 이름은 달랐는데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 외에도 그 흔한 후라이드치킨을 위시해 여러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구미를 당기지 않은 것이 없었다.



치킨 후라이드와 숙주 샐러드의 조합은 “미쳤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입에 착 감겼다. 치킨을 반쯤 베어 질감이 물씬 나도록 씹다가 중간에 소스가 밴 숙주와 양파를 곁들여 그 둘의 조합을 입안 이리저리 오물거리며 먹는 맛은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날 아들 두 녀석과 정말 두말 안 하고 치킨을 입속에 욱여넣었다. 말하기라도 하면 맛이 다 새 나갈까 걱정스러웠는지, 아니라면 허기진 탓에 말할 배 속 채우느라 정신없었는지는 지금으로선 그 치킨의 정확한 이름만큼이나 알 길이 없다.



그날 치킨값으로만 8만원을 긁었다. 치킨 한 마리 값은 당시만 해도 1만 원이 조금 넘었다.



성곽길



그날 아침 청와대 뒷산으로 난 성곽을 세 시간에 걸쳐 걸었다. 성균관대 방면에서 오르는 성곽길은 의외로 거칠었다. 경사가 대체로 가파르지 않아 수월할 것 같았던, 그래서 2시간 안에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섰던 그 길에는 복병이 있었다.



성곽 저 아래 입구에서 신분 확인을 거친 뒤에 콘크리트 방벽을 따라 부암동 방면으로 이동하는 동선에 보초를 서는 군인들이 자주 등장했다. 몰랐던 바가 아닌데 괜스레 움츠러드는 기분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군인들이 걸음마저 재촉하니 군인들이 선 자리부터 가팔라진 산길을 숨 고를 틈 없이 바쁜 걸음으로 내달려야 했다. 거의 산행을 마쳤을 즈음엔 허기도 허기려니와 〈사이 치킨〉을 찾는 일마저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전에 두 번에 걸쳐 〈사이 치킨〉의 위치를 찾았다. 때마다 실패했다. ‘길 찾기 앱’을 동원해 위치와 방향을 확인했건만 〈사이 치킨〉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 드디어 고대하던 〈사이 치킨〉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아이들에게 체면이 선 건 물론인데 두 번이나 찾았음에도 돌아서야 했던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밖에서 보면 그곳에 입구라고는 있을 턱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야 비로소 지붕과 지붕 사이 그 밑으로 빼꼼히 골목이 보일 뿐이다. 그마저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특히나 그 골목에 들어가려면 밑으로 난 대여섯 개의 계단을 내려서야 하는데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입구는 영락없는 담벼락이었다.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안심할 사항이 아니다. 겨우 두 사람 정도가 교행할 비좁은 주택가 골목길. 그곳에 무슨 치킨집이 있을까 싶은 차에 이렇다 할 간판마저 없었다. 결과는 맨손 맨입으로 돌아 나온 손님들이 적잖았단다. 우여곡절은 공교로운 위치와 식당 같지 않은 장소가 빚어낸 합작품이었던 셈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실방으로 본 듯한 표정으로 주인장은 우리 셋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낮 시간대’에 체격이 ‘호리호리한’ 셋이 ‘그 많은 양’을 먹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놀랍기는 마찬가지. 그만 먹을 때도 되었는데 손이 자꾸 갔다.



적이 계산도 걱정되고 이러다 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지경에 이르렀을 때 설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 광장시장의 ‘마약 김밥’이 부암동 버전으로 재탄생하기라도. 이때 아들 녀석의 한마디 말.



- 이럴 줄 알았으면 스테이크 먹을걸.”



아빠가 치킨에 그만한 비용을 들이는 게 몹시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어이없던 거겠지만. 뭐든 어떠랴! 잘 먹고 잘 자라주기만 한다면야.



〈부암동 치킨〉의 대표 메뉴이기도 한 ‘숙주 치킨’은 치킨의 바삭한 질감과 숙주의 아삭거리는 맛이 찰진 간장 소스와 어울려 세상에 둘도 없는 진기한 맛을 냈다고 평하기 적절하다. 한 번 더 가서 먹었으면 반감됐을지 모를 그 맛이 가게 폐업과 함께 결국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주인장에게 주재료와 부재료의 공교한 조합으로 풍미가 배가 된 그날의 치킨은 두말할 나위 없이 내 인생 최고의 먹방샷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멀리 이사가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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