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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리가 큰 비리 불러: 부당 여비, 무단 병가

터럭이라도 봐주고 넘길 것 아냐

by 콩코드


기준의 무차별성

기준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어떤 발언의 본질적 내용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상벌이 명확해야 합니다. 기준을 잘 지키면 적절히 보상하고 기준을 어길 때는 상응하는 처벌이 뒤따라야 합니다. 구성원이 합의한 기준의 가치는 그렇게 드높일 수 있습니다.


누구나 기준이 공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기준이 공정한 지위를 갖는 데 필요한 상벌 부분, 특히 벌에 관해서 둔감한 것이 사실입니다.



병가 무단 사용 지적에 일제히

어떤 매체에서 병가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문제에 관해 사실 그대로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 미처 몰랐다.

- 내심 반성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라는 양심선언이 주를 이루었다는 '알흠다운' 결말은 저 세상 텐션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딱히 큰 기대를 했던 것도 아니니 아쉬울 건 없습니다. 해피엔딩은 멋진 시나리오에나 있을 법한 얘기입니다. 현실은 자주, 어쩌면 대부분 기대 밖의 결론으로 치닫곤 합니다. 거의 예외 없이 말이죠.



변명으로 일관

처음 그 글을 올리 때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반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변명으로 일관하지는 않을 거라는 어떤 기대, 무망한 일입니다만 그런 기대를 어느 정도는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전에 출장 여비로 홍역을 치른 경험이 내부에 있어 거기서 적잖게 배웠을 거라는 게 오판의 이유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무원들은 출장을 가지 않고도 매일 출장을 간 것처럼 결재를 올렸습니다. 공무원들 절대다수가 그 일을 따라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관행처럼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법을 앞다퉈 지켜야 할 사람들이 허위로 공문을 꾸미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것, 기이하지 않습니까. 마치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 말입니다.





허위 출장에 여비조로 매달 30만 원 가까이 타먹어

집단 최면과 관련해서 공무원들의 내심을 관통하는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 여비는 원래 본봉에 넣어야 할 수당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도 넣지 않은 것,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 단, 남들 다 하는데 나만 발 빼는 건 좀,

- 돈이 얼만데.


이 모든 항변이 박봉이라는 현실에 대한 정당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박봉의 원인은 봉급체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봉급체계를 바꾸는 것으로 박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외 다른 수단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므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수단 외 다른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마치 집에 돈이 없으면 옆집을 털어도 된다는 주장처럼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가지도 않은 출장을 문서로 올리고 여비조로 매달 30만 원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을 타먹은 사실은 분명 옳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시민이 피로 일군 세금(으로 조성된)을 착복한 것도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양심의 가책 없이 관성적으로 그 돈을 받아왔다는 데 있습니다.



현실판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처참한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이히만은 수없이 많은 유태인들을 가스길로 보내 죽음에 이르게 한 대가로 전범 재판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를 본 아렌트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선천적인 악인인 줄 알았던 아이히만이 주변에서 늘 보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연덕스럽게도 그는 단지 자신은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이라고 자신을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재판정에서 악의 평범성과 지독할 정도로 생각에 무지한 인간을 똑똑히 본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생각함에 무능하면, 누구든 아이히만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대중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잔혹한 범죄는 특별한 사람만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일반적이지 않은 환경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확률이 높은데, 문제는 자발적으로 그 영향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범죄의 악순환은 그와 같은 일련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계속됩니다.


개과천선은 정말 옛날 얘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것 실감. 변명도 모자라 범법 행위를 옹호하기까지. 자정능력을 잃은 집단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만. 아마도 곁에서 보았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진저리 칠 것이다.


생각 없음 = 영혼 없음

허위 출장에 이은 여비 부당 수령이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눈속임으로 받은 돈에 어떤 가치가 있을지, 하다못해 이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무원들입니다. 결국은 그런 공무원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런 공무원일수록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 아이히만을 보면 고개를 주억거리기 어렵지 않습니다. 허위 출장을 방조 혹은 묵인하고, 허위 의사를 일상적으로 실행하는 동안 악의 평범성이 비범하게 발현될 준비를 마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등한 여론으로 여비 부당 수령 길 막히자

여론이 끓어오르자 부랴부랴 감사 기관에서 부정 여비 수당의 실태 조사에 착수하고 향후 동일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 엄벌에 처한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사후 약방문이었지만 효과는 있었습니다. 바로는 아니어도-부정행위의 속성이 그렇습니다. 피해자 코스프레가 벌어지고 나만 손해 볼 수 없다는 터무니없는 의식이 자리 잡습니다-여론의 눈치가 무서워서라도 그만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이득이 시민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성 없이 끝난 사태는 유사한 국면에서 다시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토양을 갈아엎지 않고 좋은 열매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입니다. 이번엔 대상이 여비에서 병가로 바뀌었습니다. 병가 문제를 다투는 과정 자체에 대한 거부감, 그 거부감은 아마도 왜 또 빼앗으려고 해, 리는 말에 집약적으로 담겨있는데, 옳고 그름에 둔감한 태도가 집단무의식적으로 상대에 대한 언어폭력과 올바르지 않은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변명 사이에서 얼마나 구차하게 줄타기를 하는지 신물 나게 보여줍니다.


한결같다는 점을 칭찬해야 할까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라도 나선 듯 비장미에 사로잡힌 댓글이 속출합니다. 그 짧은 글의 취지와 내용, 지향하는 바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솜씨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배우고 익힌 것이 그것뿐이라는 듯 말이죠. 기회가 되면 댓글 전부를 소개하겠습니다.



다른 사안에 몰려가 한풀이

손톱만큼의 기대였을 망정 자정능력을 어느 정도는 기대했는데 결과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여비 부당 수령 문제로 여론이 들끓었던 당시 상황을 앞서 건조하게 다뤘지만 사실 공직사회 전체가 술렁거렸을 정도로 공직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연속해서 관련 기사가 나고 중앙과 지방 가리지 않고 수차에 걸쳐 내외부 감사를 벌였으니 그럴 만했을 겁니다. 크게 배울 기회에 정말 하나도 배우지 못한 티를 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감각, 무개념, 무생각으로 산, 그래서 영혼 없다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된 과거를 청산할 절호의 기회였지만 정말 한가롭게 흘려보냈습니다. 출장 신청과 여비 수령에 신중을 기하는 쪽으로 상황이 가볍게 정리되었습니다. 후속 조치로 반드시 이루어졌어야 할 반성은 후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잔불 위에 서둘러 지푸라기를 덮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언제든 다시 타오르기 좋은 불씨를 품은 상태, 일정의 화약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정기능이 사라지면 오욕 뒤집어쓰는 당연

무단 병가 사용을 옹호하는 댓글이 주종을 이룬 가운데 가물에 콩 나듯 소신 있는 발언이 눈에 띕니다.


- 쓰라고 있는 병가를 누구 허락받고 쓰느냐는 강변에서부터

- 그렇게 배 아프면 너도 써라는 둥 동네 아이들의 투닥거리는 말싸움 같은 짓거리나 제살 파먹는 짓 하지 마라는 훈계까지 오지랖 넓은 말들이 대부분입니다.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흥분한 티를 낸 글에선 짙은 가래에서 스멀거리는 역겨운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습니다.


집단 무의식에 사로잡혀 죄의식 없이 뒷주머니에 챙긴 출장 여비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게 불과 몇 해 전입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면 망신살이 뻗히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되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 에둘러 말해도 허위로 출장을 올리고 그것을 근거로 여비를 받은 행위는 세금을 갈취한 도둑질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더는 여비를 챙길 수 없게 되자 최후의 보루라도 되는 듯 허위 병가를 사수하겠다는 저 결연한 의지는 대단히 그로테스크합니다. 병 같지도 않은 병을 핑계로 병가 쓰는 짓을 계속하겠다는 정신머리는 대체 어떤 자신감에서 바롯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땅히 연가를 써야 할 개인 사정까지 병가로 처리하는 건 규정 위반입니다. 시민을 위해 일할 시간을 멋대로 갈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연가일수만큼 연가보상비조로 돈으로 받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고도 시민의 돈을 탈탈 털어먹는 도둑놈이라는 소리에 성질을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 이쯤이야,

- 같은 편끼리 치부 드러내지 마

라는 등의 허황된 면피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사이 공직사회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다는 것,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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