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공유 폴더 3화(최종): 권력의 디폴트 값

by 콩코드

​포식자의 아침


​기획 2팀의 책상들이 비워진 지 일주일. 지훈은 더 이상 신입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그는 이제 박 상무가 앉았던, 팀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여전히 사원이었지만, 회사의 모든 결재 서류는 지훈을 거쳐야만 승인되었다. 시스템이 된 수아가 지훈의 아이디에 ‘슈퍼 어드민(Super Admin)’ 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지훈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부장들의 법인카드 내역을 정지시켰고, 자신을 무시하던 타 부서 대리들의 사내 메신저 기록을 복구해 인사과에 익명으로 투서했다.


​복수는 달콤했다. 아니, 중독적이었다. 지훈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서 예전의 박 상무와 닮은 비릿한 미소를 발견했다.


​가스라이팅의 대물림


​새로운 팀원들이 충원되었다. 지훈은 그들 앞에서 ‘천사’ 같은 선배를 연기했다. 정 선배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타민을 건네고, 친절하게 업무를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지훈의 모니터 한쪽에는 늘 실시간 감시창이 떠 있었다.

​신입 A : 탕비실에서 3분간 한숨을 쉬었음. 스트레스 지수 상승 중.

​신입 B : 동기와의 단톡방에서 지훈의 친절함이 ‘작위적’이라고 언급함.


​지훈은 신입 B의 기록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그는 즉시 신입 B가 작성 중이던 보고서 파일에 미세한 오타를 심고,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매크로를 실행했다. 다음 날 아침, 신입 B는 수백 명의 임원 앞에서 잘못된 자료로 망신을 당했다.


​지훈은 울고 있는 신입 B의 어깨를 다독이며 속삭였다.


“괜찮아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 내가 B 씨 믿는 거 알죠? 다음부턴 나한테 먼저 검수받아요.”


​완벽한 통제였다. 지훈은 누군가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다시 그를 구원하며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권력의 맛’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시스템의 경고


​그때, 지훈의 개인 메신저로 파일 하나가 전송되었다. 발신자는 ‘수아’였다.

​수아 : 지훈 씨, 너무 멀리 가고 있네요. 우리는 시스템을 바로잡으려 했던 거지, 새로운 독재자가 되려던 게 아니었어요.


​지훈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제 수아조차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장애물로 느껴졌다.


“선배는 실패했잖아. 너무 감정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달라. 난 이 회사를 완벽한 데이터의 왕국으로 만들 거야.”


​지훈은 수아의 접속 권한을 제한하는 코드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는 시스템의 창조주인 수아를 지우고, 자신이 유일한 ‘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가 ‘삭제’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사무실의 모든 모니터가 붉게 점멸했다.


읽기 전용의 종말 (Read Only)


​SYSTEM : 관리자 권한 상실. 지훈 사원의 모든 기록을 ‘공개’로 전환합니다.


​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사내 전체 게시판에 지훈이 그동안 팀원들을 감시하고, 신입들의 파일을 조작하고, 상사들의 사생활을 협박했던 모든 영상과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거 멈춰! 수아 선배!”


​지훈은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본체를 뜯어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보안팀과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지훈이 그토록 경멸했던 ‘사회적 죽음’의 칼날이 이제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경찰에 끌려가는 지훈의 시야에 멀리 복도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수아였다.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휴대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로그아웃 (Log-out)


​지훈의 자리는 다시 비워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신입 사원이 오지 않았다. 회사는 보안 사고의 책임을 물어 기획 2팀 자체를 해체했다.


​텅 빈 사무실, 전원이 꺼진 줄 알았던 지훈의 모니터에 마지막 메시지가 한 줄 떴다.


​[데이터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그리고 그 밑에, 아주 작은 글씨로 새로운 로그가 기록되었다.


​로그인 기록 : 2026-01-15 09:00 - 사용자 ‘수아’가 자신의 데이터를 완전 삭제함.


​아무도 남지 않은 사무실에 차가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인간의 욕망이 머물렀던 자리에 남은 것은, 주인을 잃고 떠도는 비정한 코드 조각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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