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K. 딕. 1928년 출생, 1982년 사망. 1962년 휴고상, 1974년 존 캠벨 기념상, 1977년 영국 SF 협회상 수상. 20세기를 대표하는 광기의 SF 작가. 인터넷 포털에 기록된 필립 K. 딕.의 신상이다. 수식어가 인상적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광기의”. 대단한 찬사일 터다.
생전에 그는 고흐와 마찬가지로 영화를 누리지 못했다. 다작하는 작가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이다. 사후에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의 작품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영화화되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평자들은 그의 작품이 당장에 수정 없이 시나리오로 바뀌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한다. 기염을 토하는 부분은 사실 따로 있다.
필립 K. 딕의 작품은 작품 안에서 변주가 자유로운데, 예를 들어 시나리오 작가가 원작 안에 어떤 에피소드를 넣더라도 그 에피소드와 원작이 유기적으로 조응한다는 것이다. 원작이 지닌 아우라의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수 있는 지점이다.
쟁쟁한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된 필립 K. 딕의 작품들. 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페이첵,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토탈 리콜
소설집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첫 편을 읽었을 뿐이다. 줄거리의 전개가 물 흐르듯 유연하고 반전이 예상을 훌쩍 넘어 놀랐다. 일곱 장이 채 안 되는 아주 작은 소설이다. 고작 일곱 장 안에 작가는 소설의 구성과 양식은 물론 단계를 전부 들여놓았다.
발 디딜 틈이라곤 없을 것 같은 공간에 대형 수영장과 너른 주방, 편안한 소파와 실내 놀이터가 있는 느낌? 일곱 장을 읽었는데 장편을 읽은 기분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인물, 사건, 배경의 3요소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가 공교히 짜인 소설의 배면을 잘 살펴보길.
폭탄이 ‘터지고’ 개 싸우듯 ‘싸우는’ 장면 하나 없는 소설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은 채 두텁게 잔상으로 남은 페이소스를 직관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뒤에야 등골을 바짝 조인 서스펜스를 알아채다니.
독자의 전망과 예측을시종 섣부르게 만들 소설적 완성도를 위해 작가가 자신의 재능을 광기와 맞바꾼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일곱 장의 글로 사람을 이토록 흔들어 놓을 수 있으려면 대체 얼마만 한 광기가 질료로 쌓여야 할까?
호들갑이 아니다. 산, 들, 바람을 들인 서사가 도저한 강을 이루는 동안 거기 넋 놓을 독자들이 제법 많으리라고, 나중에야 달이 아닌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음을 알고 번쩍 눈이 뜨일 거라고 믿는다.
두 번째 작품은 이틀 전부터 정점을 치닫고 있다. 빠르게 읽을 마음을 바로 이틀 전에 접었다. 제대로 만끽하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때에 따라 나흘이라도 두고 볼 계획이다.
역시나 줄거리 전개가 물 흐르듯 유연한데 반전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런 걸 극적이라고 한다. 한 편을 읽고 겨우 2편째를 넘기고 있는데도 알겠다. 작품의 스토리 라인이 워낙 탄탄하다. 사이언스 픽션을 포괄하는 아이디어가 전혀 구태의연하지 않다. 40년 전의 소설에서 현실감이 춤추는 이유다.
한동안 필립 K. 딕 앓이에 빠져들 것 같다. 이 이상의 상찬은 영화화된 작품으로 대신한다.
필립 K. 딕은 44편의 장편소설과 121편의 중단편을 출간했다. 장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를 리들리 스콧이 영화화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다.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파우 페르후번에 의해 〈토탈 리콜〉(1990)로 재탄생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임포스터〉(2002), 〈페이첵〉(2003), 〈넥스트〉(2007), 〈컨트롤러〉(2011)도 그의 단편들을 바탕으로 했다.
이외에 《파머 엘드리치의 세 개의 성흔》을 원류로 만든 영화 〈매트릭스〉가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역시〈메멘토〉, 〈인셉션〉의 영감을 필립 K. 딕의 소설에서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