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 올린 비릿한 진실 — 소설가 천명관을 만나다
프롤로그: 먼지 섞인 바람이 머무는 작업실
엘리너 와크텔은 누군가를 인터뷰하기 전, 그가 세상에 내놓은 모든 문장을 씹어 삼키고 대화의 장으로 나간다. 그것은 상대의 영혼에 노크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질문자 스스로가 대화의 미궁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다. 나 역시 천명관의 『고래』를 다시 펼쳤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비린내와 흙먼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욕망의 냄새가 진동했다. 서울 변두리, 소음이 비껴간 골목 끝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그가 지어낸 이야기들의 광기 어린 발원지치고는 지나치게 적막했다.
작업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 위에 수북이 쌓인 재떨이와 낡은 타자기,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책들이었다. 천명관은 마치 방금 막 거대한 공사를 마친 인부처럼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수많은 인물의 생애를 제 손으로 죽이고 살려온 기록자 특유의 무심함과, 그 소란을 견뎌낸 뒤의 지독한 피로가 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와크텔이 거장들을 마주할 때 가졌던 그 팽팽한 긴장감이 내 등줄기를 스쳤다. 나는 인사를 대신해 그가 평생을 바쳐온 ‘이야기’라는 유령에 대해 묻기로 했다.
결핍이라는 이름의 엔진: 실패의 전리품
대화의 서두는 그의 화려한 등단이 아닌, 그 이전의 길고 어두웠던 무명의 시간으로 향했다. 천명관은 소설가가 되기 전,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시나리오 작가였고, 동시에 ‘무산된 프로젝트’들의 감독이었다.
질문: “작가님, 당신의 문장에는 유독 결핍의 냄새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감독을 꿈꾸며 방황하던 그 십 수년의 세월은 당신에게 무엇을 남겼나요? 많은 이들이 당신의 성공을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 화려한 스크린 뒤편에서 당신이 챙겨온 ‘실패의 전리품’이 궁금합니다. 소설은 혹시 그 실패의 틈새에서 피어난 꽃입니까?”
그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연기가 그의 깊은 주름 골을 따라 느리게 소용돌이치며 올라갔다.
“전리품이라니요, 너무 우아한 표현입니다. 제게 소설은 ‘생존의 비명’에 가까웠습니다. 영화판에서 시나리오가 엎어지고, 자본의 논리에 난도질당하고, 갈 곳이 없던 시절... 그때 제가 본 건 화려한 시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비참한 밑바닥이었습니다. 약속은 쉽게 깨지고, 호의는 배신으로 돌아오며, 욕망은 추악하게 일그러지는 현장이었죠. 그때 느낀 그 모멸감과 분노가 저를 소설로 밀어 넣었습니다. 내가 감독으로서 철저히 실패했기에, 그 실패의 틈새로 소설이라는 괴물이 기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소설은 내게 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벼린 칼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서늘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와크텔이 강조했던 ‘인간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미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잉크 삼아 문장을 써 내려왔음을 덤덤히 고백했다.
야생의 서사학: 비릿함과 장엄함의 이중주
천명관의 소설은 매끄럽지 않다. 오히려 거칠고 투박하며, 때로는 기괴하다. 현대 한국 문학이 주로 다루는 내밀한 심리 묘사나 세련된 문체와는 궤를 달리한다. 나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질문: “당신의 작품에는 피와 땀, 배설물과 흙먼지 냄새가 진동합니다.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상태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요. 현대 문학이 잊어버린 그 원시적인 생명력, 혹은 ‘비릿함’에 집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천명관은 식어가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삶이 세련되던가요? 적어도 제가 본 삶은 단 한 번도 매끈한 적이 없었습니다. 삶은 비릿하고, 무자비하고, 때로는 이유 없이 장엄하죠. 저는 소설이 도덕책이나 세련된 소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사실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배고프면 먹고 싶고, 탐나면 뺏고 싶고, 미우면 죽이고 싶은 그 원초적인 에너지가 세상을 움직입니다. 저는 그 에너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는 순간, 그 펄떡거리는 생명력은 박제가 되어 죽어버리거든요.”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는 관념의 숲을 거니는 산책자가 아니었다. 그는 육체를 가진 인간, 그 육체가 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을 기록하는 ‘몸의 작가’였다. 『고래』의 금복이 거대한 공장을 짓고, 코끼리와 대화하며, 욕망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결국 우리 안에 내재한 원시적인 불꽃의 변주였던 셈이다.
괴물들의 연대기: 창조주가 된 서기(書記)의 운명
이제 이야기는 그의 인물들로 향했다. 금복, 거대한 노파, 춘희, 그리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기이한 주인공들까지. 그들은 하나같이 상식을 벗어난 거구이거나, 기괴한 능력을 지녔거나, 압도적인 결핍을 품고 있다.
질문: “당신의 인물들은 대개 ‘괴물’처럼 묘사됩니다. 그들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두운 이면을 거대하게 형상화한 것 같습니다. 그들을 창조할 때 당신은 어떤 마음입니까? 그들이 당신의 통제를 벗어나 날뛸 때, 창조주로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천명관은 처음으로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진지했다.
“두렵다마다요. 어떤 때는 자고 일어났더니 인물이 소설 밖으로 걸어 나와 저를 노려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고래』의 노파를 쓸 때는 그랬어요. 그 노파는 제가 만든 인물이 아니라, 그냥 어느 날 제 방구석에 앉아 있던 존재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그 노파가 내뱉는 저주와 이야기를 받아 적었을 뿐이죠. 저는 제 자신을 작가라기보다 ‘서기(書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떠도는 거친 이야기들이 제 몸이라는 통로를 지나 문장이 되도록 허락하는 존재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와크텔의 통찰이 떠올랐다. 거장들은 대개 자신이 작품을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에 ‘사로잡혔다’고 말한다. 천명관 역시 그랬다. 그는 이야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그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해들을 수집하는 사람이었다.
축제가 끝난 뒤의 정적: 이야기꾼의 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작업실 안에는 어스름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그의 소설 속 축제들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는 질문을 던지는 나도, 대답하는 그도 한 명의 고독한 개인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질문: “작가님, 당신이 만들어낸 그 수많은 인물이 생을 다하고 소설이 끝날 때, 그 축제의 소음이 잦아든 뒤의 밤을 생각합니다. 홀로 남겨진 서재에서 당신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지독한 고독을 어떻게 마주하시나요?”
천명관은 담배를 끄고 한참 동안 창밖의 무심한 풍경을 내다봤다.
“소설이 끝나면 정말로 거대한 상실감이 찾아옵니다. 마치 온 가족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그럴 땐 그저 걷습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통에 가기도 하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걷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다시 깨닫게 돼요. 내가 쓴 이야기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위대한 이야기들이 저 길바닥에 널려 있다는 걸요. 그 평범하고도 치열한 삶의 풍경들이 저를 다시 현실로 붙잡아줍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또 다른 누군가의 비명이 내 안에서 들리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펜을 잡는 거죠. 그게 제 형벌이자 구원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여운이 배어 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천생 이야기꾼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그에게 고독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잉태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자궁과도 같은 것이었다.
에필로그: 다시, 진흙탕 속의 별을 향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서울의 저녁 하늘은 그의 소설 속 한 장면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문앞까지 나와 투박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등에 박힌 굳은살은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원고지와 싸워왔는지를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엘리너 와크텔은 좋은 인터뷰란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살게 하는 마법”이라고 했다. 오늘 나는 천명관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여행했다. 그 대륙은 비릿한 피냄새와 땀방울로 가득했지만, 그 끝에는 항상 삶에 대한 지독한 긍정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결핍을 동력 삼아, 세상의 낮은 곳을 흐르는 진실을 길어 올리기 위해 스스로를 고독의 심해로 밀어 넣을 것이다. 그가 다음에 들려줄 이야기는 또 얼마나 거대하고 흉측하며, 동시에 아름다울까. 나는 그의 작업실 창가에 다시 불이 켜지는 것을 보며, 또 한 번 그의 ‘거짓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갈 준비를 했다.
작별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내 등 뒤로, 멈췄던 이야기의 수차가 다시 돌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본 글은 엘리너 와크텔의 인터뷰 스타일을 차용하여 작가의 실제 인터뷰와 작품 세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