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나무엔 몇 송이의 꽃이 피었나요?

개화와 만개의 기준이 가르쳐준 생의 여백

by 안녕 콩코드


"꽃 세 송이가 피어나면 개화라 부르고, 나무의 팔 할이 물들면 만개라 부른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짧은 문장이 유독 귓가에 오래 머무는 날이 있습니다. 식물학적 정의에 불과한 '개화'와 '만개'의 기준이 어쩐지 우리네 삶의 속도와 꼭 닮아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 수천, 수만 개의 꽃송이가 맺히는데, 고작 세 송이가 피었을 뿐인 상태를 두고 세상은 '꽃이 피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 엄격하면서도 너그러운 기준을 가만히 읊조려 봅니다. 우리 인생에도 분명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아직 앙상한 가지가 더 많고, 성과라고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은 움직임뿐이지만, 스스로에게 "이제 시작되었구나"라고 말해줄 수 있는 그 찰나 말입니다.


​흔히 우리는 인생의 화양연화가 완벽하게 무르익은 '만개'의 상태여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곤 합니다. 하지만 자연이 정한 개화의 기준이 단 세 송이인 이유는, 그 세 송이가 가진 상징성 때문일 것입니다. 겨울의 냉기를 뚫고 가장 먼저 고개를 내민 그 용기, 그리고 뒤따라올 수천 개의 꽃봉오리에게 "이제 곧 우리 차례야"라고 보내는 신호. 그것만으로도 나무는 이미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우리의 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원대한 목표의 80%를 달성해야만 비로소 성공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사실 우리가 진짜 응원받아야 할 지점은 마음속에 품었던 결심이 현실이라는 가지 위로 딱 세 송이만큼 드러났을 때입니다. 처음으로 배운 외국어 한 문장을 내뱉었을 때, 서툰 솜씨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혹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을 사흘간 지켰을 때. 세상의 기준으로는 미약해 보일지 몰라도 내 인생의 절기상으로는 분명한 '개화'입니다.



​이어지는 '만개'의 기준 또한 흥미롭습니다. 100%가 아닌 80%가 피었을 때를 절정이라 부르는 그 여백 말입니다. 완벽주의라는 굴레에 갇혀 100%의 성취만을 갈구하는 우리에게 80%의 만개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나무는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어버리면 다음을 기약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요. 조금은 덜 피어 있는 상태, 아직 피어날 꽃들이 남아 있는 그 지점이 가장 아름답고 활기찬 법입니다.


​만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치열하지만,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깨닫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순환'입니다. 꽃이 다 피고 나면 필연적으로 떨어짐을 준비해야 하듯, 우리 삶의 절정 또한 영원히 머무르는 정거장이 아닙니다. 그러니 80%의 성취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나머지 20%를 채우지 못했다며 자책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눈부신 빛깔을 만끽하는 것이 만개라는 계절을 대하는 올바른 예우일 것입니다.


​라디오의 목소리는 끝났지만 마음속 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지금 당신의 인생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나요? 혹시 단 세 송이의 꽃이 피었음에도 "아직 멀었어"라며 그 고귀한 개화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요? 혹은 80%의 결실을 맺었으면서도 채워지지 않은 20%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나요?


​개화는 시작의 용기이며, 만개는 여유로운 정점입니다. 세 송이의 꽃이 피어났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봄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그 꽃들이 하나둘 늘어나 나무 전체가 환해질 때, 완벽이라는 강박 대신 80%의 넉넉함으로 당신의 계절을 축복해 주었으면 합니다. 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피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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