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프리카에 농장이 있었다.”
아이작 디네센의 자서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이 담담하고도 비장한 과거형의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있었다’라는 서술어는 이미 그 모든 풍경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 모래알이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영화가 비추는 사바나의 황금빛 노을과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는 찬란한 축복이라기보다, 이미 부재(不在)하는 것들을 향한 긴 만가(輓歌)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여성이 겪은 파란만장한 로맨스를 넘어, 인간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소유와 상실,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는 기록의 의미를 마주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영화는 사적인 기억의 심연을 건드립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이 영화를 보던 숨 가쁜 공기가 떠오릅니다. 당시의 우리는 영화 속 광활한 사바나보다 서로의 옆모습에 더 몰입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왜 그 수많은 영화 중 하필 이 작품을 첫 영화로 택했는지, 9년이라는 긴 항해를 끝내고 각자의 항구로 흩어진 지금에야 비로소 그 속뜻을 짐작해 봅니다. 그녀는 어쩌면 9년 뒤에 찾아올 상실을 예감하며, 소유할 수 없는 사랑과 붙잡을 수 없는 순간에 대해 미리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일까요.
카렌이 처음 아프리카 케냐에 발을 디뎠을 때, 그녀의 손에는 유럽의 정교한 문명들이 들려 있었습니다. 화려한 도자기 식기, 태엽을 감아야 움직이는 뻐꾸기시계, 그리고 덴마크의 관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들. 그녀는 황량한 대지에 커피 나무를 심고, 원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 합니다. 그것은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대한 ‘소유’의 기획이었습니다. 그녀는 대지를 소유하고, 노동력을 소유하며,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까지도 자신의 삶이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려 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그리 만만한 대지가 아니었습니다. 가뭄은 커피 나무의 생명을 앗아가고, 사자는 울타리를 비웃듯 가축을 사냥합니다. 무엇보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는 결코 소유될 수 없는 바람 같은 존재였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소유를 통해 안정을 찾으려는 카렌의 근대적 세계관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였습니다. 데니스가 카렌을 비행기에 태워 사바나 상공을 비행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지상에서는 울타리를 치고 경계를 나누던 카렌이, 하늘 위에서 비로소 대지의 거대한 흐름을 목격합니다. 손을 맞잡고 체온을 나누지만 서로를 묶어두지 않는 그 비행은, 진정한 연대란 소유가 아닌 ‘함께 흐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국 카렌은 모든 것을 잃습니다. 화재는 농장을 집어삼켰고, 데니스는 비행기 사고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손에 남은 것은 아프리카의 붉은 먼지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모든 실체적 소유를 박탈당한 순간, 카렌은 비로소 ‘작가’가 됩니다. 농장을 경영하던 여인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로 변모한 것입니다. 물질적 자산은 사라졌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얻은 감각과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서사가 되어 그녀의 영혼에 각인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를 소유해야만 그것이 나의 일부가 된다고 믿습니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누군가의 마음을 확약받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우리에게 건네는 엄정한 사실은,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기록뿐이라는 것입니다. 소유는 일시적이지만, 상실을 통과하며 벼려낸 문장은 영원합니다. 카렌이 덴마크로 돌아가 집필한 글들이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곁에 머물며 아프리카의 바람 소리를 들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녀와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20대 초반의 그 극장에서 시작된 사바나의 노을은 여전히 내 안에 선명한 낙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세운 울타리는 언젠가 무너지고, 우리가 심은 나무는 때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실을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빈자리에 깃든 풍경을 담담히 기록할 수 있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카렌의 사자 언덕에 묘비는 없지만, 그녀가 남긴 문장들이 그 언덕을 영원히 푸르게 지키고 있듯이 말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화려하게 타버린 농장은 어디입니까.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까. 기록하는 인간에게 상실은 끝이 아니라, 비로소 진실한 첫 문장을 뗄 수 있는 출발선입니다. 이제 나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문장을 닫으며, 나만의 사바나로 다시 걸어 들어갑니다. 소유할 수 없었기에 비로소 영원히 나의 것이 된, 그 아름답고도 처절한 패배의 기록 속으로.
[후기]
이 글을 마무리하며, 문득 수십 년 전 그 극장의 어둠 속에서 나란히 앉아 있던 스무 살의 우리를 떠올립니다. 당시의 나는 내가 그녀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의 무심한 눈빛 하나에 내 속은 무던히도 타들어 갔고, 그 열병 같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밤잠을 설치던 날들이 9년이나 이어졌습니다. 내가 더 많이 사랑하기에 더 많이 아픈 것이라 억울해하던 그 시절, 나는 내가 지독하게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얄궂은 것은 세월의 장난입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던 그녀가 아니라, 그 곁에서 마음을 태우던 제가 작가가 되어 있습니다. 카렌이 불타버린 농장의 잿더미 위에서 펜을 들었듯, 저 역시 그녀가 남기고 간 그 거대한 상실의 영토를 수십 년간 홀로 경작한 끝에야 비로소 문장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야 묻고 싶어집니다. 그때의 그녀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사랑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상실의 고통마저 기꺼이 받아 적을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는 것을요. 무던히 내 속을 태웠던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떤 풍경을 보고 있을까요. 그녀가 어디에 있든, 제가 쓴 이 문장들이 아프리카의 바람을 타고 그녀의 창가에 잠시 머물다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그녀를 더 많이 사랑했다고 믿었던 오만마저 이제는 상실의 기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오늘도 문장을 씁니다. 소유할 수 없었기에 비로소 영원히 나의 것이 된, 그 9년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기록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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