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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l 02. 2024

작가 백영옥 '스타일'의 '힘과 쉼'

다양한 경험, 속 깊은 위로


어떤 조우

생각지도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반가운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딱 맞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번 ///// 놀랄 텐데요. 단어 자체로는 느낌이 약해 보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단어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 깜짝 놀라 몸을 갑자기 떠는 듯이 움직이다." 단어보다 단어의 뜻이 씬 생동감이 있습니다. 몸이 떨릴 만큼 놀랐다는 표현이 제겐 아주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이번 생은 망한 것인가!" - 이하 겹따옴표 글은 백영옥의 《힘과 쉼》 일부임.



갑작스러운 휴강에 딱히 뭘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작정하고 걷다가 캠퍼스 정문을 100여 미터 앞두고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좌우로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 잘못 들었나 싶어 멈췄던 걸음을 막 떼려는데 여자 친구가 제 앞에  나섰습니다. "오빠, 내가 마나 불렀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비할 겨를 없이 여자 친구가 제게 폴짝 안겨왔습니다. 너무 반갑고. 후자에선 무척 황홀했습니다. 여자친구가 그러더군요. "오빠가 이 시간이면 수업 중일 텐데 만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걷고 있었다"고요. 여자 친구의 대학과 제가 다니는 대학은 채 20분도 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거든요.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여자친구를 만나니 반가움이 수십 배는 더하더군요. 소 때 만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3 때 교회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고 전 여자 친구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그날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여자 친구 앓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 여자친구를 껴안았습니다. 첫사랑의 비운을 피해 가지 못하고 여자 구와 헤어진 뒤론 정말 좋아서 오히려 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더는 한 적이 없습니다. 9년을 사귀고 헤어진 터라 파장이 컸습니다. 빠져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날, 에세이

오후 4시면 당 떨어진 느낌이 바짝 달려듯 요 며칠 달달한 에세이가 침샘을 자극했습니다. 몇 번의 탐색 끝에 그날도  기대 없이 서가를 뒤지고 있었습니다. 하필 노란색 표지에 찰떡 같이 붙은 '힘과 쉼'이라는 원색적 제목의 책이 리다니. 오늘도 틀린 모양이라고 몸을 반쯤 틀었는데 어떻게 그 책이 손에 들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갈망 계속되면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평소라면 거들떠보지 않았을 주제의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란 눈으로 표지 앞뒤를 돌려보다가 딱히 약속도 없어 시큰둥한 표정으로 에필로그 몇 장을 읽었습니다. 여성 특유의 정감 어린 글이 마치 퐁듀를 떴을 때의 느낌처럼 잔잔한 감성을 타고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리더군요. 한 문단 더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을 거대한 물결이라 상상하면 어느 구간에서 우리는 힘을 내 팔을 휘저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급류가 몰아치는 곳에서는 잠시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난파선처럼 전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역시 어떤 것에 엮이는 원인은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위험성이 다분한 도전정신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배 한 대 정도는 피워도 되잖아,라고 외치며 죽음을 재촉한 조직 이인자의 운명과도 같이 말입니다. 결국 동병상련이라는 복병을 제대로 만나게 되더라는 그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르륵 넘긴 책장의  문단에서 저자는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길어 올린 값진 지혜를 무심하게 던지고 있었습니다. 들으려면 듣고 말려면 말라는 로 말이죠. 위성이나 강행규정의 문장이라곤 조금도 습니다. 그런데 끌리더란 겁니다. 배우려는 사람보다는 르치려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유명 작가가 허세를 털어낼 수 있다면 호감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공감은 뒤따르는 반응일 테고요. 반 이상 넘어간 저는 뒤도 아보지 않고 계산을 마쳤습니다. 칠이 지난 오늘도 그 책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추억

저자의 약력을 읽다가 한번 더 소스라쳤습니다. 아이유의 삼단고음쯤으로 치부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겠지 싶더군요. 때다 싶으면 나와야 하는 아이유의 삼단고음에 어김없이 자지러지는 관객이 있고, 는 맛에 끌리는 먹성 좋은 분들이 있습니다. 기대한 순간에 익히 아는 노래나 음식나오는데 식상하지 않을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생각 없이 지나쳐서 그렇지 어떤 책에서 뻔한 스토리에 진절머리 친 이 있다면 제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될 겁니다. 다 아는 내용, 다 아는 맛에 감정이 동하는 이유로 팬심에 가득 든 무한 공감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뒤늦게 저자가 소설 《스타일》을 쓴 작가라는 사실을 프로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힘들어 지친 친구에게 위로의 말로 '힘내!'가 아닌 '힘 빼-'란 말을 건네는 건 어떨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소스라치게 놀라는데 하물며 본의 아니게 오래 잊힌 사람을 만나면 자지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해도 반응은 마찬가지인 듯하니다. 그날 거리며 책상머리에서 읽은 《스타일》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소설과 결부된 작가마저 기억에서 밀어내진 않은 모양입니다. 스타일을 구기진 않아 다행입니다. ㅋ  2008년에 출간된 작품이라 거의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그 시간 동안 저자는 앞선 소설 외에 세 권의 장편 소설과 여섯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더군요. 특유의 녹진한 맛이 에세이에 고스란히 담긴 것에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스타일이 바뀌진 않았는데 기성 스타일에 아우라가 가득 들어찬 느낌이랄까 그런. 역시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이어 곡절과 우연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작가가 그다지 나아가지 못한 저를 채근하는 느낌도 보기 드문 것이었습니다.



위로의 

휴강한 교실을 나와서 하염없이 걷던 그날의 캠퍼스에 20년 후 예기치 않은 만남이 중첩된 까닭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실 사이에서 교차 가능한 지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삶이란 때론 예측불허의 전개과정을 밟기도 한다는 것. 실패를 딛고 일어설 기회가 완전히 닫히진 않는다는 것. 예서 멈추지만 않으면 가파른 비탈길이라도 반드시  끝에 게 된다는 것. 저자는 우리에겐 유연해질 연습이 필요하다고 삶을 통해 웅변해 왔습니다. 곡절로 치면 그가 우리의 그것과 비교해 몇 배는 될 겁니다. 습관, 느림, 감정, 비움, 경청, 휴식, 자아, 상상, 만족, 일, 공감, 성장을 키워드로 그가 반추한 날들의 기록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밑바탕에 흐르는 저자만의 남모를 아픔이 켜켜이 쌓인 탓일 겁니다. 주먹을 쥐는 데만 안이 된 일상은 텐션이 극대화된 삶이라 쉴 틈을 허용치 습니다. 거기서 비롯되는 곤란이 한 둘이 아님에도 쉽게 벗어날 궁리를 못하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악에는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있다. 이것이 음악의 3요소다. 강약과 높낮이, 반복의 조화가 결국 음악을 만든다. 삶 역시 그렇다. 모든 반복되는 것 속에 삶의 가장 반짝이는 것들이 숨어 있다. 그러니 반복되는 일상을 권태로움이라 섣불리 단정 지어선 인 된다."



저자는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것을 능사로 아는 세태에 같은 방식으로 매몰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기꺼이 원제인 '나로 사는 힘''힘과 쉼'으로 바꿨다고 했습니다. 어미 뱃속에서 한껏 주먹을 쥔 갓난아이라도 태어난 뒤론 잘 웃고 잘 웁니다. 그만큼 갓난아이도 움켜쥔 걸 푸는 방향으로 성장해 간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아기가 몸에 잔뜩 힘을 주는 경우란 똥을 쌀 때 외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주먹 쥔 손을 펴는 동작을 의지적으로라도 하자는 말에선 움켜쥐고 살아온 일상을 좀 내려놓는 게 어떻겠느냐는 다정한 초대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갖은 실패 위에 발을 딛고 일어서서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즘엔 평범해서 찬란하다는 찬사가 거북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평범 지닌 힘은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그만하면 됐다", 고 쉬이 짐을 내려놓는 미덕을 발휘합니다. 힘의 가치는 쉼이 예견된 힘에서 비롯합니다. 특유의 서사와 문장으로 위로를 던지는 저자의 글은 쥘 땐 쥐고 풀 땐 푸는 힘과 쉼의 고저장단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스타일'의 작가로 추억한 당신은 오늘부터 '힘과 쉼'의 작가로 제 안에 오래 기억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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