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빵집에서 치아바타를 곁들여 커피를 마십니다. 알싸한 원두 풍미가 코끝을 감싸는 동안 가져온 책 표지를 이리저리 살피고, 고개를 들어 산비탈에 안온하게 걸린 녹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넉넉한 아침입니다.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무슨 생각을 해도 마냥 행복할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맛보는 일상입니다. 오늘은 동행으로 히라마쓰 요코의 '어른의 맛'과 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 끝으로 마리나 반 주일렌이 쓴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가 나섰습니다.
벌써부터 점심은 뭐가 좋을지 궁리합니다. 간헐적 단식을 오래 한 덕에 딱히 아침, 점심으로 뭘 먹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오늘 같이 정겨운 날엔 별 것이 다 생각나나 봅니다. 아무렴 어떨까 싶어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저녁은 가까운 횟집에 들를 계획입니다. 깔끔한 식당을 찾아 두었습니다. 지인이 무척 좋아하는 해물 등속을 시켜 오래 정담을 나눌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엔 바닷가가 어떨까요? 차로 한 시간만 가면 짙푸른 바다향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일상의 속살 안으로 저며 들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정오를 가리키려면 아직 1시간 20분이 남았습니다.
《일본의 굴레》, 태가트 머피, 글항아리, 2021
역사는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고 한다. 단견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거기서 침소봉대가 비롯하고 가짜뉴스가 판친다. 확인되지 않은 전제를 근거로 상대를 일의적으로 규정하는 건 사실 더 위험하다. 그런 말이나 글이 대부분 전문가의 외피를 쓰고, 마치 객관적인 시각에서 상대를 조망한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외부자적인 시각과 내부자적인 이해를 강조한다. 다른 말로 하면 차가운 심장과 뜨거운 머리로 끌어안을 때와 밀어낼 때를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견 혹은 매몰의 어느 한쪽에 서거나 그 사이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그 자신부터 40년 이상 일본에서 생활해 온 미국인이다. 고작 1,2년 혹은 몇 개월 머물다 떠난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들의 글을 보면 대체로 알맹이가 없다. 다 아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뿐이라 대체 이런 책은 왜 내지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자의 글에선 짐짓 아는 투의 말이나 가르치려는 문장이 없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냉철하게 일본을 분석하는 한편 자칫 그 과정에서 드러낼지 모를 억측과 오해를 내부자의 입장에서 바로잡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균형감각은 상대와 날를 꿰뚫는 통찰에서 나온다.
'가까운 나라'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또 '상종할 수 없는 나라'라는 전혀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일본을 우린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세계적인 매체의 특파원으로 우리나라를 다녀 간 외국인이 그런 말을 했다.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잘 안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아는 내용이 다분히 '편집된 사실' 이상을 넘지 않는다는 걸 그가 알아챘을지 모를 일이다.
선재도, 구봉도
봉우리가 9개인 산을 품은 구봉도. 제법 깊은 산과 하얀 조개껍데기가 깔린 해변, 깊고 푸른 바다, 가슴 설레는 낙조를 함께 볼 수 있는 드문 곳입니다. 이런 풍광을 1시간을 조금 넘게 들이면 언제든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생각만으로도 늘 달뜨는 기분에사로잡힙니다.작열하는 태양을 은근히 누르듯 건들바람과 된바람이 연신 불어 더운 기색 없이 바다 맛과 풍취를 제대로즐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