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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Aug 28. 2024

모르는 건 처음부터 모른다고 하는 편이 낫다

섣불리 알은 채 했다가 낭패 본 사례를 굳이 찾아볼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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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눠보았다. 1) 모르는 게 정말 없다. 2) 모른다고 하면 무시당한다. 어설픈 지식이라도 일단 뱉고 상대를 봐가며 대응하면 된다. 1)의 예가 있을까 싶지만 혹 모르니 시간을 내서 찾아보기로 하고, 우선 우리 주변에 흔할 것만 같은 2)부터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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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어떤 주제가 화두로 떠오를 경우 아는 사람만 그 주제에 끼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의 심리란 자격지심이 발동하면 남의 밥상이라도 나서고 싶은 법이어서 섣불리 말을 섞는 불상사로 곤욕을 치르고도 정신 못 차리는 때가 많다. 보통은 끼어들 자리인지 아닌지 가늠부터 하겠지만, 자격지심이 발동된 상태에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찬밥 신세가 되는 것 같은 심정을 못 견뎌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꼬이게 되는 줄은 영 모르고 말이다. 



관련 사고(?)를 여러 번 쳤다면 깨달을 만도 하겠지만 이런 부류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에게 불편한 경험을 잘 잊는다는 것이고, 그들 특유의 심리기제가 이 부류 사람들을 때 아니게 대범하게 만드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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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현자는 ‘뭘 모르는지 아는 것’을 지혜라고 했다. 정확히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다. 설핏 아는 건 아예 모르는 것과 같다. 정확히 말하면 아예 모르는 것보다 나쁘다. 수렁에 빠지는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특히 타인의 문제를 다룰 때 설핏 아는 것으로 상대에게 조언을 할 경우 낭패를 당하는 건 시간문제다. 



큰 소리로 말하는 것에 타고난 자질을 갖춘 사람이 있다. 전화 통화든 바로 옆 사람과 대화든 가리지 않고 화통을 삶는 통에 30평쯤 되는 사무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그에 관한 한 남들이 듣지 않아도 될 시시콜콜한 일상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최근 그가 계약 관련해서 아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워낙 그치 목소리가 쩌렁쩌렁해서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재간이 없다는 것, 공공연한 비밀이다, 똘마니가 오야붕 눈에 들어 사무실 내 도덕이고 나발이고 팽개친 채 설치는 상황이다. 오야붕 눈에 든 그날 후로 그는 같은 행위를 거의 매일 반복하고 있다.



그전엔? 부스럭대는 소리 하나 없었다. 전화는 나가서 받았고, 사무실 내에서 전화를 받을 경우에도 통화 내용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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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의 조언대로 상대방이 고소 고발까지 갈 모양이다. 문제는 그 계약이라는 게 당연한 말이지만 쌍방 계약이라는 것. 자칫 물리면 계약 상대방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관련 분야에 관한 지식조차 일천해 보이는 그가 연신 목소리를 높인다. “걱정하지 하라는 대로 하.” 그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는 가히 절대적이다. 틈만 나면 그에게 전화를 걸고, 묻는다. 거기에 예외 없이 답을 주는 그. 달리 기댈 데도 없는 상대는 그에게 껌뻑 죽는 눈치다.



누가 봐도 물정 모르는 조언인데.... 서툰 조언이 참상으로 귀결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 도사가 거침없이 뱉는 말에 멋모르고 춤춘 상대는 어떤 심중과 맞닥뜨리게 될까? 되돌리기엔 한참 멀리 갔다. 되돌리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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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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