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선을 따라 나아간다는 독특한 시각이 지면에 용혈한다. 신선한 자극, 매혹적인 사색, 가없는 성찰이 솟는 힘은 풍부한 관점에서 나온다. 겉보기에 두텁고 거칠게 칠한 유화가 사물을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싶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몇 걸음 뒤로 몸을 물려 그 지점에서 유화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놀랍지 않던가. - 이건 완벽한 현실인데. 화폭에 접근하는 방식은 화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디 그뿐이랴. 어떤 사물이든, 사고든, 학문이든, 과학이든 관점의 방향은 무한히 넓다. 우리의 경험이 일천한데 본 것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 지식, 기성 과학, 일전의 판단을 조금 밀쳐내면 언제든 그 자리에 새로운 지혜가 가득 찰 기회가 생긴다. 공간을 비워두는 것, 어떤 의미에선 고복(皐復)과 닮았다.
옛것이 가고 새로운 것이 오듯 시절이 바뀌어야 생동한다. 그 지점을 겨냥한 것이리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건 멀리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그곳에 둥지를 튼 어떤 것도 단선적이거나 일의적이거나 유일무이하지 않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지만 새로운 시각은 있다. 하다못해 익숙한 것을 낯설게 읽을 수도 있다. 탁자 위에 팀 잉골드의 《라인스》를 올려 놓았다.
경우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조성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돈이라면 보통은 못 볼 것 본 듯 거리를 유지하지 않던가. 그런 돈이 수중에 들어왔다면 참을 수 없는 수치감에 온몸을 부르르 떠는 게 상례일 터다. 유통할 생각을 했다면 이미 부정한 돈이라는 감각이 온 데 간 데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잊힌 돈, 엄밀히 말하면 잊히길 바랐던 돈이 누군가에게 건네진 뒤로 세평이 들끓고, 또 다른 누구의 어느 시절 행각이 수면 위로 재부상하는 모욕의 사이클이라니. 욕지기가 나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하겠다.
색채
어떤 곳에선 무색무취, 적정한 거리 유지, 고뇌에 찬 결심이 용을 쓰지 못한다. 알아서 기고, 따라서 붙고, 급기야 누군가의 똥구멍을 대신 후비는 짓에도 태연하다. 더러운 걸 더럽다고 못하는 곳에선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