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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코드 Oct 03. 2024

열한 번째 시간: 변곡점, 대역전의 순간

에밀리 디킨슨은 '막판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상황'으로 해석


1.

'열한 번째 시간'전환의 순간, 안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막혔던 웅덩이가 뻥 뚫리고 어디에도 퇴로가 없던 막다른 골목길에 기상천외하게 문이 열린다. 잿빛 하늘에 잔뜩 핀 구름이 걷히고 언제냐 싶게 눈부신 햇살이 가없이 내리는 답답했던 가슴에서 천년은 묵었음직한 날숨이 하나 남김없이 기도를 뚫고 나온다. 몸과 마음의, 나아가 불온한 현실이라는 체증이란 체증은 온 데 간데 없이 날아가버린 순간, 내 눈앞의 온갖 것들이 얼마나 신나고 새롭게 보일지 안다. 에밀리 디킨슨은 '열한 번째 시간' '막판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상황'으로 묘사했다. 짐작하셨듯 어떤 일이란 대전환이 일어나는 깜짝 놀랄 사건에 견줄 수 있다.



2.

축구에도 두 번째 선수가 있다. 보통은 서포터스를 일컫지만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제3의 선수다. 그들은 선수들이 실력은 물론 짐재력까지 한껏 발휘할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성취의 근인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 선수가 없거나 변변치 못하면 선수들은 맥을 추지 못한다. 선수들이 이들의 환호를 먹고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두 번째 선수의 역할을 작다고 할 수 없다. 다 진 경기를 뒤엎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열화와 같은 함성에 각성한 선수들이 결국 일을 낸 것이다. 주의 환기의 순간. 열한 번째 시간이다.



3.

다크호스도 마찬가지다. 다크호스는 객관적인 수치에서 뒤진 경주마가 경기 당일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거머쥐었을 때처럼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낸 선수를 상찬하는 뜻으로 쓰인다. 숨은 인재.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막후의 존재가 비로소 어둠을 뚫고 나오는 순간이 있다. 잠재력은 론 그동안 숨겨둔 재능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다크호스의 역동적인 주력을 보면 불끈 솟은 근육이란 근육이 전부 터질 듯하다. 다크호스가 기다려온 순간이다. 맹렬히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는 다크호스. 가히 폭발적인 그 힘 앞에 여느 경주마들은 꼼짝없이 길을 내주고 만다. 혼신에 힘이 가해진 다크호스의 두 발과 다부진 어깨를 보았다면 곧이어 승자의 머리에 월계관이 주어지는 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가능성이 현실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이때의 한 번째 시간은 내부 잠재력이 일거에 폭발하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외부 충격을 동력으로 삼는 축구경기와는 다소 성격이 다른 경우다.



4.

흑기사도 있다.  흑기사는 여느 흑기사와 다르다. 이때의 흑기사는 먹고 싶지 않거나 마시면 몹시 취할 것 같을 때 당자의 호명에 따라 등장한다. 간혹 자발적으로 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기대한 바와 달리 자칫 뻘쭘해질 수 있는 점 감안해야 한다. 여기서 기대한 바란 '짠' 하고 영화 같이 등장하는 신을 지나치게 상상한 탓이려니 하고 하자. 아무튼 흑기사가 흔쾌히 응하기만 하면 당자의 고민거리가 한방에 해결된다. 흑기사가 주당이 상당하고 그깟 벌주 정도야 한입 거리도 안 되는 그야말로 주계의 신이라면 환호성은 더 커진다. 흑기사로 지목했더니 그만 사경을 헤매는 돈키호테였다는 서사는 대신 마시게 한 사람이나 마신 사람 모두에게 극히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함부로 폼 잡고 나서선 안 되는 게 흑기사다. 그럴 우려만 빼면 과연 흑기사는 세를 뒤바꾸는 힘이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안심하고 술자리에 끼어들 키를 비로 그 흑기사가 쥐고 있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즐길 준비가 된 순간, 열한 번째 시간이다.



5.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대로 생각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며, 우리가 행동하는 대로 살아간다.” 기능성을 믿지 못하면 늘 저주 같은 현실을 끼고 살 것이다. 마지막 비탈을 버티지 못하면 끝내 정상을 밟지 못한다. 반환점을 돌기 전까지는 죽을 것 같아도 멀리 반환점이 보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없던 활기가 솟는다. 우린 아직 반도 못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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