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이라는 용어를 통해 사유하지 않는 인간의 위험성을 통렬히 지적한 한나 아렌트.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전범 재판에 회부된 아돌프 아이히만은 겉으로 보기에 결혼해 자녀를 둔 여느 가정의 남편, 평범한 아버지였다. 주변의 평가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매우 착한 사람이었으며, 인간관계에도 대단히 도덕적이었다고.
재판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런 그(온화한 남편,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주변에 아주 착한 사람으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그렇게(죄 없는 유대인들을 죄책감 없이 가스실로 보내) 수많은 사람(당시 나치가 독가스로 죽인 사람의 수는 500만 명을 헤아린다)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의아해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히만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자신은 나치 중령이라는 지위에서 단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취지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자 너나없이 분노를 토했다. 이후 아이히만이 자신의 양형 수위를 낮추려는 의도로 그런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편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청중은 숨이 넘어가는 듯했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가?
아이히만의 어조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재판 전부를 취재한 아렌트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아이히만이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다.” 재판 이듬해 아이히만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주변 사람은 물론 자신마저 한순간 무사유, 무감각, 무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케 했다. 평범한 사람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서슬 퍼런 현실 앞에 오싹 소름이 끼쳤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당대에 미친 파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악의 평범성'이 특정 부분의 사유 없음을 정의하는 기제가 되어선 안 돼
경계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예를 들어 인간은 선악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특정 조건에서 악마적 속성이 끌려 나올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즉,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예증하는 용어로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그 주장의 일부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나치 장교인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위가 미칠 결과를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속 시원히 답하지 않았다. 그 문제가 아렌트에게는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다만, 아렌트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들을 사지로 내몬 장본인이 너무도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그 연장선에서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그가 평소 그의 성격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짓을 저지를 수 있었던 배경에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인 게 아닌가 싶다.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인간 살육의 파장과 결과를 심사숙고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는 이유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이 부여받은 직무에 대해 무사유, 즉 생각 없음에 빠졌다고 보았다.
아이히만은 줄곧 자신은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으로 그 명령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히만 사후 그가 무죄를 뒷받침하기 위해 고도의 연기를 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있고 보면 비록 그의 범죄 행위가 소명돼 사형에 처해졌다고는 해도 아이히만의 위치에선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으리라는 공감에 일말이라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유대인 살육이라는 공분에 압도된 현장 분위기에서 그런 식으로 두둔할 사람이 있었겠느냐 싶지만 말이다.
'평범한 (일상)'과 '정상적이지 않은 (사고)'는 등치가 되지 않는다. 특히 나치 장교인 아이히만이 정말로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을까 하는 점에서 그렇다. 그 시기 나치는 유대인 절멸을 지상과제로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내부에서 은밀히 혹은 공공연하게 자행했다. 그전에 체제 차원에서 그와 같은 정책에 철학적 토대를 마련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그 일을 일선에서 진두지휘할 장교에게 공을 들이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프로파간다에 능수능란했던 나치 체제에서 내부적으로 ‘이념의 강고한 안착’을 등한시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수용소에 수감되었거나 색출된 유대인들의 장탄식을 수도 없이 들었을 아이히만이 과연 그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리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적어도 그가 그런 인간애를 뒤로 밀칠 만큼 강렬한 동기를 갖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는 신념에 투철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등. 보상으로 장성급 이상의 지위와 명예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이 편이 그의 행위를 악의 평범성으로 갈무리하는 것보다 실제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인천 in에 〈아이히만이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한 이유〉라는 제하의 글을 기고한 안태엽은 “그 당시 독일의 다수 국민들도 자기 집 앞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알려하지도 않았다. 알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지만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았으며 질문한 사람에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치당에 입당하여 좋은 직장에 월급이 보장되는 화이트칼라들과 일한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했다.”라고 썼다. 일반 국민들이 그랬다면 장교들은 오죽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