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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단이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무 부장의 소왕국 - 웃음 뒤에 가린 것의 정체

by 콩코드


무 부장은 직원들이 올린 결재를 간단히 처리했고 직원들을 살갑게 대했다. 부장이 시원시원하게 결재하고 직원들을 따뜻하게 대하는데 이만한 직장이 또 있을까?, 싶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 말이다. 와 과장은 무 부장이 ‘통치’ 전략의 일환으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와 과장이 무 부장에 관심을 보인 계기가 있다. 사내에 무 부장이 어디로 튈지 모를 인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때였다. 사내에선 직원들에게 부장 이상이 모인 회의를 실시간 영상으로 공개했다. 사장이 주재한 회의라 해도 이 회의는 바로 뒤에 언급할 회의에 비하면 수월했다.



혹 사업 진척이 더디면 사장은 책임자를 강하게 질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주의해서 살피라는 정도의 말로 끝냈다. 부장이 답변하느라 진땀을 뺄 일은 따로 없었다.



1년에 서너 번씩 외부인 주재로 사장이 지시한 업무 성과와 향후 계획을 따져 묻는 회의가 있었고, 마찬가지로 회사에선 직원들에게 회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제공했다. 와 과장은 이 회의가 어떤 성격의 회의인지, 회의를 주재한 외부인은 누구인지 밝히지 않기로 했다. 밝히면 여러모로 피곤해질 터였다.



회의에서는 참석한 외부인이 사무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부장들에게 가차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때마다 무 부장은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했다. 관련 사항을 미리 찾아보고 대비하지 않은 탓에 예상된 질문에도 무 부장은 연신 버벅댔다.



무 부장은 답변 중에 천연덕스럽게 과장들을 비하하는 말을 뱉었다. 평소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가 몸에 밴 탓이었다.



법적 문제에 휩싸인 어떤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공사 자체가 공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데도, 그는 입에 침 한번 바르지 않고 정상 추진 중이라고 뻔뻔하게 답했다. 이 자리만 모면하면 된다는 의식의 발로였다. 무 부장은 제대로 면박을 당했다.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현황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그만큼 현실 인식이 부족했던 것이다. 더 가관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뻔한 거짓말을 태연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질문의 의도는커녕 질문의 내용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떠벌리다가 제지당하는 등 무 부장을 둘러싼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러 번에 걸쳐 말실수와 거짓말로 큰 곤욕을 치르고도 무 부장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과장들과 회의에 관해 평가할 때였다. 무 부장은 자신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이 흠잡을 데 없는 답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고도 했다. 그 회의엔 과장들이 배석했다. 유감스럽게도 눈이 멀거나 귀가 안 들리는 과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와 과장은 과장들이 당일 무 부장의 언행을 본대로 믿는 게 아니라 회의가 끝나고 무 부장이 한 말만 믿는 철딱서니 정도로 생각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만큼 무 부장은 뻔뻔했다. 금새 들킬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그와 전혀 관계 없는 감정이었다. 무 부장은 속속들이 자기중심성과 타인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인식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빌런. 와 과장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나직히 말했다.



보통 무 부장은 질문이 열이면 그 열 중에서 하나만 답했다. 그마저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회의실 옆자리에 앉은 본부장의 귀띔 덕에 그나마 가능했다. 그럼에도 무 부장은 우쭐해선,



- 봤지? 내가 질문에 다 답했잖아.

- 상대의 높은 콧대 제대로 꺾었어.



무 부장은 하루 두 번 결재했다. 자신이 마음대로 정한 시각에. 결재 내용은 상관하지 않았다. 결재가 쌓이고 직원들이 부장 자리로 가서 결재를 요청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나중엔 직원들이 체념하고 자리에서 기다렸다. 오전 결재는 11시에 했다. 그 시각은 출근 후 2시간의 간극이 있다. 오후 결재 시각은 4시. 첫 번째 결재시각인 11시를 기점으로 보면 직원들은 5시간 후에나 부장의 결재흘 받았다는 얘기다.



무 부장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무례했다. 그의 엄격한 잣대는 자신이 아닌 외부로 향했다. 잣대마저도 개인적 호오를 따랐다. 무 부장은 와 과장처럼 말 안 듣는(대체 뭐 하자는 건지?) 직원에게 무 부장은 시어머니가 눈 밖에 난 며느리의 발뒤꿈치가 달걀 같다고 타박하듯 사사건건 면박을 주었다. 직원들 모두 들으라고 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상대를 몰아붙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갑질이었다. 그는 훈육이라고 했다.



조직관리 이론에 이런 것이 있다. 과거에 부서장이 직원 한 명을 본보기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본보기가 되지 않으려고 직원들이 부서장에게 복종하는 심리를 노린 것이었다. 수십 년 전에나 횡행했던 이론으로 X이론이라고 불렀다. 과장은 무 부장의 태연하고 천연스러운 낯짝 몇 가지를 떠올렸다.



직원은 요란하게 칫솔질하면서 사무실에서 세면대로 가면 안 되었다. 큰소리로 더럽게 코를 풀는 건 예의에 어긋났다. 슬리퍼를 끌거나 구두 뒷굽 소리를 내며 걷는 건 허용되지 않았다. 단 한 사람, 무 부장만은 예외였다. 매일 무 부장은 요란하게 칫솔질하며 화장실로 갔고, 누런 콧물이 연상될 정도로 크게 코를 풀었으며, 사무실 안에서 슬리퍼나 구두를 여봐란 듯이 내디뎠다.



한 가지 더. 지난해 10월 이후 무 부장은 과장 회의를 단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 와 과장이 싫다는 게 이유였다. 과장 회의를 하지 않더라도 와 과장이 빠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다른 과장들에게만 전달하면 그만이라고 믿는 듯보였다. 이외에도 무 부장은 공사를 구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 둘을 마구 뒤섞었다. 대체 누가 이런 괴물을 들인거냐? 내친 김에.



무 부장은 지위를 이용해 상식 밖의 근평을 했다. 와 과장은 룰론이고 와 고장의 직속 직원들의 근평을 형편없이 주었다. 사실을 알았더라도 근평을 받는 사람이야 속으로 욕은 할지라도 이의신청까지 하면서 골치 썪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직원의 열악한 지위를 악용한 것이다. 무 부장은 자신의 지위를 십분 활용했다. 근평은 부장이 직원에게 휘두를 전가의 보도였다.



와 과장은 이번에야말로 부장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근평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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