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부장은 사각 얼굴에 위로 찢어진 눈매의소유자다. 그는 건달 비슷하게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며 걸었다. 무 부장은 남을 업신여기는 걸 무슨 대단한 훈장처럼 여겼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나쳤다 싶으면 예외 없이 웃어 제끼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무 부장은 머리 보다 말이 빨랐다. 수습이 될 리 없다는 건 무 부 장도 알았다. 뒷수습은 한결 같이 다른 사람 몫이었다. 무 부장 곁에는 무 부장의 비위를 맞춰주는 철딱서니들이 유독 많았다. 그들이 무 부장이 싸지른 똥을 치웠다.
무 부장이 과장들과 차를 마시자고 한 다음 날, 무 부장은 과장들을 불러 다짜고짜 호통부터 쳤다. 같이 차 한잔 마시자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나원, (더러워서). 무 부장 입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개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두리안의 위용같은.
와 과장은 무 부장이 과장들이 부장의 차담(이라 쓰고 잡담이라고 읽는다.) 제안에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을 문제 삼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부서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부장이라도 - 부서를 벗어나면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상사가 ‘천지삐까리’다. - 직원들이 지켜보는 사무실에서 과장들을 경우 없이 대하는 건 옳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사이가 아주 가깝더라도 서로에겐 지켜야 할 선이 있었다.
무 부장은 대단한 권력이라도 손에 쥔 듯 걸핏하면 과장을 찍어 면박을 주었고 그걸 즐겼다. 무 부장은 거듭 선을 넘나들었다. 과거 한때 어느 부장도 과장을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다. 몇몇 과장들은 무 부장을 제지하기는커녕 나서서 무 부장을 두둔했다.
직원들은 부장의 위세에 눌려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데, 부장의 전횡을 견제할 과장들이 부장의 ‘똥구녁’을 빨고 있으니, 부서는 물론 회사의 앞날이 뻔했다. 와 과장은 세상천지에 이런 인간이 또 있을까 싶었다. 와 과장이 이번처럼 인간에 대한 회의를 모욕적으로 느낀 때는 많지 않았다. 와 과장은 빈정대는 햇살 위로 고개를 젖혔다. 거푸 한숨을 쉬었다. 무대포가 부장 자리에 오른 것부터 미스터리였다.
전례 없는 무 부장을 누가 중용했을까? 물컹한 가래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욕지기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인간을 거르지 못할 정도로 인사시스템이 망가진것이리라. 와 과장은 거푸 밭은 숨을 뱉었다. 툇! 목구멍에서 겨우 빠져나온 가래에선 쉰내가 났다. 비위가 상한 와 과장은 입안에 남았을지 모를 가래를 그러모아 멀리 뱉었다. 퇴에엣.
무 부장은 출근 1시간 전에 사무실에 나왔다. 단 하루도 늦게 나온 날이 없었다. 보상(?)으로 무 부장은 1시간 일찍 사무실을 나섰다. 무 부장의 1시간은 엄연히 근무시간이었다.무 부장이 과장들에게 차를 마시며 노닥거리자고 하거나 과장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호통칠 계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 부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근무시간이든 아니든 그가 눈치 볼 대상은 사무실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무 부장 앞에 바짝 몸을 낮춘 과장들을 보며 직원들은 이미 좌절감을 맛보았을 터다. 직원들이 부장을 꼰지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사무실은 모 부장의 소왕국이었다.
무 무장이 부임하고 여드레가 되었다. 무 부장과 과장들이 하릴 없이 차나 마시며 노닥거리는 자리에 와 과장이 노골적으로 동석하지 않은 직후였다. 전날 와 과장은 그들에거 매몰찬 시선을 던지며 불쾌감을 드러냈었다. 무 부장이 과장들을 불러 모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과장들과 쑥덕거렸다. 와 과장을 씹는 중이라는 건 세 살 난 어린애도 알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무 부장은 연일 1시간 동안 차를 마시며 과장들과 그 잘난 이야기꽃을 피웠다.
열흘이 지나고부터는 무 부장이 직원들을 자리로 불렀다. 직원들은 무 부장의 부름에 어쩔 줄 몰라하며 아장바장한 자세로 부장을 마주보고 앉았다. 무 부장은 어느 때보다 환한 목소리로 시시콜콜 얘기를 늘어놓았다. 직원들은 일찍 나와봐야 부장의 시덥지 않은 말에나 대꾸해야 하는 현실이 달갑지 않았다. 눈치가 보인 직원들은 차담을 피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일찍 나오는 직원 수도 현격히 줄어들었다.
-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얘기 나누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 (이러쿵저러쿵)
좋아하는 커피를 정 마시면서 목청껏 목울대를 울릴 양이면 부장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 따로 모아 밖으로 나가서 마시고 떠들면 될 것이었다. 굳이 한창 업무 준비로 바쁜 직원들을 불러내 직원들이 부장과 과장의 잡담에 맞장구를 치게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가뜩이나 업무부담으로 힘든 직원들은 눈치를 보며 일을핑계로 짜증을 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음을 가다듬으려던 직원들만 애꿏게 시간을 앗겼다. 무 부장은 그런 시간을 빼앗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와 과장은 윗사람이 아침 이른 시간부터 사무실 분위기를 망친 예가 있었는지 머리를 굴렸다. 없.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기만 한 게 아니다. 때때로 뒷물이 앞물 위로 넘실댔다. 직원들이나지막이 혀를 차는 소리에 무 부장 귀가 여간 간지럽지 않았을 것이다. 이쯤에서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히 해보자. 과연 무 부장 외에 다른 과장들은 문제가 없었을까?
과장 중엔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무 부장과 마찬가지로 일찍 사무실을 나설 작정인 과장들이 꽤 되었다. 그들의 그 시각 역시 근무 시간이었다. 야근할 과장이라면 그가 일찍 나온 시간을 포함해서 아머지 야근 시간을 더해 수당을 챙겼다. 그 과장의 그 시각 역시 근무 시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장과 과장들이 태연하게 근무 시간을 농락할 수 있다니 와 과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덕적 해이, 도덕 불감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권한남용과 갑질은말할 것 없었다. 하지만 무 부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 직원들이 누구 눈치를 보는지 다들 고개를 파묻고 일만 하고 있어. 쯧쯧.
- 감시받는 사람처럼 말이야.
무 부장이 느닷없이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뱉었다. 무 부장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은 보통 확신 없는 말을 좀체 입 밖에 내지 않는다. 혹 내더라도 신중을 기하게 마련이다. 직원이 일에 몰두하는 장면을 무 부장이 조롱하자 와 과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무 부장이 테이블에 앉은 과장들을 죽 훑어보며 같은 말을 했다. 잘못 듣지 않았다.
위로부터 급격하게 무너진 기강은 밑둥을 세차게 흔들었다. 직원들은 처음엔 쭈뼛거렸다. 곧 직원들은 공공연하게 과장의 길을 따랐다. 직원들이 없는 데서 타인을 험담했고, 그마저 재미가 없자 직원들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멀리 빼내 몸을 눕히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더러는 사무실 밖으로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부장이 이해되지 읺은 일을 허구헌 날 하는데 나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결과였다. 흙탕물이 유입된 후 강은 한 길 물 속조차 살피기 힘들었다. 무슨 소용돌이가 이는지 알 수 없었다. 돌연 물살이 거세게 몰아쳤다. 둑에 커다랗게 구멍이 났다. 언제 무너질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