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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차는 러시아가 아니다. - 《러시아적 인간》

by 콩코드


알다 가도 모를 일. 아니다. 생판 모르겠다. 러시아적 인간? 떠오르는 이미지는 겨우 문학작품에서 단편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의 주지주의적 성격뿐. 그마저도 모호해서 과연 어떤 인간을 그렇게 부를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은둔의 나라, 러시아.



거기서도 사네 마네 하며 뒤엉켜 싸우는 인간들이 있을 테고, 온갖 똥폼을 잡고 저잣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인간도 없지 않을 게다. 곱게 화장한 여성은 물론 험악한 표정의 남성들도 자주 목격될 그곳. 사람이 살 ‘개연성이 높은’ 곳이다. 경험되지 않은 곳의 사정은 얼마든지 왜곡되어도 상관없을까.



민낯까지는 보지 않아도 추레한 옷차림의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의 녹진한 삶의 냄새를 맡는 일이란 때마다 정겹다. 저자가 냄새의 실체를 가늠할 수단으로 소설을 택했다. 은유다. 그 덕에 잔뜩 무거웠던 마음을 벗었다.



요 며칠 책장에 고이 모셔두는 악행에도 별반 말이 없었다. 그렇게 적잖이 미안해하고, 때때로 기대에 못 미치는 상대 앞에서 기세를 더하기도 하는 설픈 짓이 반복된다. 지칠 만하지만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내게 독서라는 여정은 줄곧 라만차의 허름한 헛간에서 시작되었다. 압도 직전의 긴장으로 몸 온갖 곳에서 솜털이 쭈뼛 설 때에야 이정표가 보이곤 했다. 날이 밝아오던 그날 내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온 사람을, 장소를, 물건을 잊지 않았다.



그가, 그곳이, 그것이 '러시아적 인간'을 대표했으리라는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이 책은 당장 처박히고 말 것이다. 그때 가서 부랴부랴 내 안에 깃든 묵시록적 인간을 부산 떨며 찾으리라는 것도 짐작만으로 안다.



어느 구석이든 여지는 있다.




♤ 이즈쓰 도시히코는 《러시아적 인간》에서 러시아 문학 작품을 분석하고, 그것을 마중물로 러시아인 특유의 정신을 길어 올렸다. 정신에 깃든 ‘러시아적인 것’의 실체를 궁벽하지 않게 드러낸 것도 그의 공로다. 이 책은 1953년 초반이 출간된 후 일본에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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