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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대 교수의 생각 이상의 생각

상아탑에서 벗어나 대중 안으로

by 콩코드


길게 설명할 필요 없다. 쓴 글만으로 존재감이 빛나는 작가란 바로 이런 사람일 법한 작가, 사이토 다카시다. 최근 새 장정으로 재출간된 《일류의 조건》을 비롯해 역사를 보는 관점에 일대 변화를 불러온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공부에 관한 기존 관념을 파한 《내가 공부하는 이유》 외에도 수많은 저작에 다카시는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다카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작가로는 가히 독보적이다. 일본 유수의 메이지대 문학부 교수라는 직함에서 현학적인 문체와 고답적인 글쓰기가 연상되었다면 당장 집어치워도 좋다. 교수가 낸 저작이 베스트셀러에 오를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다카시가 낸 저작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베스트셀러가 의문의 여지없이 질적 수준이 높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니 오해 마시라. 대중의 입소문이든 알만한 이의 추천이든 덥석 물어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이든 직접 골라서 어느 정도 읽고 난 뒤에 손에 넣는 게 바람직하다.




《일류의 조건》은 저명한 뇌과학자인 박문호 박사가 '꼭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2006년 출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의 누적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일류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공을 일궈냈는지 남다른 통찰과 분석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다. 자기 계발서의 바이블로 불리기도 한다. 2006년 국내 출간 후 절판되었다가 18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다카시는 일류가 되는 근본 조건 세 가지로 ‘훔치는 힘’, ‘요약하는 힘’, ‘추진하는 힘’을 들었다. '훔치는 힘'은 타인의 지식과 노하우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을 포함한다. ‘훔치는 힘’이 모방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자신의 장점에 타인의 장점을 융합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힘의 요체는 모방과 융합, 재창조라는 일련의 흐름으로 고쳐 말할 수 있다. ‘요약하는 힘’은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데 긴요한 자질로 저자는 이를 일류가 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다루고 있다. 핵심 주제와 목표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면 요약은 필수다. 요약을 통해 각각의 내용이 간명해지는 건 물론이다. 한 줄 요약의 힘은 장황한 설명이 들어설 자리를 없게 만든다. ‘추진하는 힘’은 이들 ‘훔치는 힘’과 ‘요약하는 힘’의 배후라고 해도 좋다. 뒷받침과 추동력 없이는 어떤 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추동력은 문자적으로 물체에 힘을 가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말한다.




세상을 움직여온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세계사의 흐름을 다섯 가지 코드로 풀었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가 그 다섯 가지 코드다. 대부분 인간의 감정에서 기인했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들이다.



보통은 이성에 기반해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풀어가는 데 익숙한 학계 풍토에서 더군다나 교수가 이성의 대척점에 선 감정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에 접근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칫 변죽만 울리다 말 소재와 거기서 파생될 개연성이 사뭇 해석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저자는 세계사를 보는 시각 혹은 관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발간된 여러 저자의 유사한 저작은 이 책의 주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카시의 글은 신선한 소재와 색다른 시각, 강한 흡인력을 특징적으로 드러냈다.



역사 서술의 한 방법으로 연대기적 기술은 발생 사건과 사고를 순차적으로 이해하는 데 용이하지만 각각의 사건, 사고에 내재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 서술 방식에는 이성적 판단 외에 다른 관점이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런 관점의 역사 서술이 대세였던 탓에 역사 해석은 대부분 교과서의 인식 수준에 머물렀다. 자유로운 상상은 엄두도 내지 못한 상황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는 간결하고 색다른 시선'이 등장했던 것이다. 출간 즉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독자들에게 유레카와 같은 인식적 충격을 주었다.




부모 입장이라면 자녀가 공부해야 할 이유를 아마도 수만 가지는 들 것이다. 업체를 운영하는 사업가나 공부를 업으로 삼은 교수는 말할 것 없다.



고교 3학년, 장래가 까무룩 하던 고교 3학년, 그해 여름 주말을 이용해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였다. 시간표를 따라 책상에 수험서를 정돈하다가 문득 건너편 옆자리를 보게 되었다. 그때로 치면 아저씨 한 분이 일반서적을 읽고 있었다. 아,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해봐야지. 그 꿈은 직장에 들어가고 한참 뒤에야 이룰 수 있었다. 요즘은 뻔질나게 카페에 드나들며 읽고 싶은 책을 마구잡이로 읽지만 짧은 머리 고교생 때나 직장 초년병 시절에는 좀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공부다운 공부를 하나 보다 싶었다.



다카시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공부를 통해 성장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공부는 그 자체를 즐기는, 호흡이 길고 깊은 공부다. 요체는 책에 담긴 지혜와 지식에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을 길어 올리는 데 있다. 허다한 곤경을 스스로 헤쳐 나갈 힘을 책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 사이토 다카시가 줄곧 실천한 공부의 의미다.



당면한 사정에만 매달리면 하루살이 처지를 벗을 수 없다. 물론 하루를 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하루가 모여 십수 년을 이룬다면 하루를 얼마나 충일하게 살아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하다. 자기반성으로는 명약과도 같은 성찰이다. 잊은 게 있다. 하루살이에게는 자신에게 부여된 하루가 살아있을 날의 전부라는 사실말이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경향을 바꿀 결심부터 하는 것, 그것이 공부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하라.”는 저자의 말이 폐부에 날카롭게 박힌다.



잠시 뒤에 이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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