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음악 차트를 석권하며 한창 바람몰이 중인 노래가 있다. '나는 반딧불'이다. '나는 반딧불'은 인생이라는 험난한 파고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꿈을 이뤄간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황가람이 불렀다.
황가람은 <유퀴즈>에서 어린 시절 맞닥뜨린 심각한 골절 사고로 꿈에 그린 선수 생활을 포기한 이야기와 상경 후 홍대 노숙 생활, 이후 11년 무명 시절의 갖은 생활고와 견디기 힘든 시련을 덤덤히 꺼내놓았다. 무거운 침묵과 탄식이 스튜디오에 내려앉았다. 황가람의 노래를 청해 들은 조세호는 노래가 끝나자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유재석도 가슴이 먹먹해진 듯 여러 번 숨을 골랐다. 기타 선율을 타고 황가람 특유의 호소력 짙은 음색과 심중을 흔드는 노랫말이 좌중을 압도했다. 노래를 듣는 내내 울컥했다.
어두운 터널이 끝없이 이어질 것만 삶의 갈피마다 더는 버티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쓰러지고 산산이 부서져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자격 없는 상황에서 끝내 그를 일으킨 힘이 있었다. 작은 손톱, 무대 위에 서는 꿈이었다. 희망이라곤 조금도 남지 않은 자리에서 고개를 떨군 지난날의 자신에게 그가 전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 마디를 꾹 눌러 말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 움직이지 못했다. 가치 있는 일은 때론 쉽게 이뤄지지 않으니까 꺾이지 말고 힘내자. 조금만 더 참고 길고 멀리 보자.
글은 삶의 총량에 비례한다. 심금을 울리는 노래 역시 가수가 살아낸 삶에 뿌리박지 않을 수 없다. 현란한 재주와 남들이 따라잡기 힘든 기교로 무장하면 찬탄을 끌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듣거나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지는 못한다. 그런 글과 노래라면 굳이 찾아서 읽거나 들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대중이 바라는 노래는 그런 것과는 결이 다르다. 특히 어수선한 시기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한 이야기꽃 한 자락에 마음이 동하는 이치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거 같지 않다. 노래도 넓게 보면 음률을 갖춘 이야기라 할 수 있잖은가. 어떤 이야기를 가락에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자기 이야기가 중심이 될수록 표현이 생생하게 살아날 것은 자명하다. 이는 곧바로 곡 해석력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삶의 고투로 농익어 상대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음색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황가람에게는 이 모든 비유가 빼곡히 들어있다.
나는 반딧불
노래 황가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
하늘로 올라가 초승달 돼 버렸지
주워 담을 수도 없게 너무 멀리 갔죠
누가 저기 걸어놨어 누가 저기 걸어놨어
우주에서 무주로 날아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딧불이 돼 버렸지
내가 널 만난 것처럼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다시 태어났지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별인 줄 알았어요
소원을 들어주는 작은 별
몰랐어요 난 내가 개똥벌레란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