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인의 밥값에나 쓰라고 세금 낸 것 아냐.
- 전근대적인 ○○ 모시기 횡행. 물 새듯 새는 직원들 호주머니
-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법카로 밥값 충당
- 늘 그래왔다고, 하던 대로 하겠다는 과장
국장 모시기, 과장 모시기 등 전근대적인 용어가 난무하는 어떤 곳에선 오늘도 직원들이 과비, 팀비 명목으로 돈을 뜯긴다. 안에선 이를 갹출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르는 모양이다. 대부분 한 달 단위로 돈을 걷는데, 화폐가치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10만 원에서 20만 원은 큰돈이다. 내기에 버겁다. 매번 울상을 짓지만 소용없다.
한 달이면 두 번, 많을 땐 네 번 정도 ‘모시기’ 순번이 돌아와 미리 윗사람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는 일도 직원들 몫이다. 국장 혹은 과장이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알아보고, 다른 직원들과 다녀온 식당을 미리 거르고 알맞은 식당을 골라 예약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면 이곳에 일하러 들어온 건지, 상사 입맛 챙기러 들어온 건지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다 떠나서 쥐꼬리만 한 월급에 한 달에 한 번씩 목돈을 내야 하는 직원 입장에선 정말 죽을 맛이다. 국장 또는 과장은 정말 혼자선 밥을 못 먹기라도 하나?
내부에서 말도 안 되는 관행을 바꾸자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뻔하다. 직원들이 거의 만나기 힘든 국장을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시간을 갖자는 취지라거나, 그 자리를 통해 현안 사항을 전달하고 격의 없이 질의응답을 하게 되니까 대단히 생산적이라는 둥 변명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생각해 보라. 점심시간에 무슨 현안을 챙기고, 토론하느냐 말이다. 제대로 된 토론을 하자면 따로 시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선 대부분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거나 소소한 집안사나 떠벌리는 게 고작이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변명거리는 더 있다.
직원들이 밥값을 내지만 국장이나 과장이 식후 커피를 내니까 국장이나 과장이 쓰는 돈이 더 많은데 직원 입장에서만 보고 아무렇게나 떠벌리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말은 관계자의 입을 빌려 국장 과장의 입장을 강변한 말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오해라고 눙칠 것 없다. 사실이다. 그 따위 항변은 항변 자체부터 우스꽝스러운 데다가 번지수마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직원들이 바라지 않는 행위를 강제하는 건 명백한 강요. 내고 싶지 않은 돈을 내게 하는 건 갈취에 해당
직원들의 원성을 사는 부분은 점심 정도는 알아서 먹으면 될 일에 국장이나 과장이 직원들을 동원하고 마지못해 참석한 직원들이 대신 밥값을 내게 만든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관한 것이다. 국장이나 과장이 밥을 떠먹여 주어야 하는 코흘리개가 아니지 않은가. 국장 혹은 과장 모시기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직원들이 국장 혹은 과장을 살피고 마음이 우러나 적극적으로 나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직원들이 동료들과 자유롭게 식사할 시간을 빼앗은 것에 미안한 마음이 그런 말에 들어설 구석은 없어 보인다.
조직의 건강도는 전근대적 곤행에서 얼마만큼 벗어났는지로도 측정이 가능하다. 구태에 따른 폐해가 명백히 드러나 혼란을 초래하는데도 이를 고수하려는 의도는 퇴행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마치 모시기 어려운 분을 특별히 알현하는 기회라도 주는 양 포장하는 식으로 관행을 고수하는 것에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는 수준을 넘어 낯 뜨겁다. 현안이든 쟁점이든 허심탄회하게 주고받는 시간이 되지 않겠느냐는 빤한 소리를 다 큰 성인에게 해서야 되겠는가.
각 부서에서 돌아가면서 국장 혹은 과장 모시는 날을 직접 편성한 직원 자신도 타 직원들이 국장, 과장과 밥 먹어주고 밥값까지 내는 현실을 모르지 않다. 그 직원 역시 같은 경우를 거쳤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말로 상대를 추동하기엔 버겁다고 느낀 그가 혹은 조직이 토론의 시간이니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이라느니 하는 별 시답지 않은 말로 자신부터 속이려 했을 것이다. 그렇게 관행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그게 설득력이 없다는 건 그 자신부터 잘 안다.
까놓고 말하면 국장이나 과장 모시기가 국장 혹은 과장 혼자 밥 먹게 둘 수 없으니(혹은 다 큰 어른이라도 혼자 먹지 못하니)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같이 점심을 먹으라는 말 아니던가. 자발적으로 되지 않으니까 자발성을 가장해서라도 국장, 과장과 밥을 먹게 하자는 발상은 지극히 유치하고 대단히 우스꽝스럽다.
결국은 대접받으려는 사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나중에 가서 국장 혹은 과장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아랫사람이 과잉 충성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떠넘길 작정이 아니라면 조직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조직원들에게 자괴감만 남긴 ‘모시기’ 같은 얼토당토않은 짓거리는 당장 집어치우는 게 맞다.
법카로 윗분 점심값 내고, 정기적으로 특정인들과 밥 먹기. 가족 식당에서 법카 결재는 일상. 사적 유용은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할 수 있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따로 있다. 사실상 직원들의 호주머니를 턴 돈으로 윗사람의 밥값을 지불하는 것부터 말이 안 되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국장 모시기는 주로 과장이 주도한다. 과장이 국장을 모시고 팀장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뒤에 과장이 법카로 밥값을 결재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관계 규정에 보면 법카를 사용할 항목에 ‘직원 격려 차원의 식비 지급’이 있다. 한 달에 4회에서 5회에 걸쳐 국장을 '모실' 때마다 과장은 서무를 맡른 직원을 시켜 ‘직원 격려 차원’이라는 제하의 뮨서를 만들게 한다.
그 문서의 참석자란은 ○○과장 외 ○○명만 기재될 뿐 참석자가 누구인지 알 만한 정보가 없다. 문서만 보면 국장이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국장 밥값을 따로 냈는지, 법카로 냈는지 문서에선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누구에게든 밥을 사고 법카를 긁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얘기다. 그렇게 문서가 마무리되면 탈 없이 법카 결재가 최종 승인된다. 과장이 법카를 쓰고 누가 같이 밥을 먹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서를 과장이 서무 직원을 시켜 만들게 하고 그 문서를 과장이 결재하는 것으로 끝이다. 이보다 완벽한 범죄, 완전 범죄는 없다!
직원 격려 차원에 법카를 쓸 수 있다는 규정은 판판히 무시한 채(사실상 규정을 유린한다) 과장이 매월 4,5회 국장을 위해 법카를 긁고, 따로 매월 2,3차례는 팀장들과 점심값 용도로 법카를 긁는데도 심각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눈치다.
위 행위는 사안과 행위의 정도에 따라 허위공문서 작성, 배임죄, 업무상 횡령죄를 구성한다. 실형 혹은 징계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선뜻 범죄행위에 들어서는 건 어리석기 짝이 없다. 달리 말하면 내부에 도덕불감증이 팽배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반증이 연례행사로 보도되고 있다. 더 썩어서 더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부패하기 전에 솜을 쓰는 게 맞다. 반드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