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볍게 산행하기 좋은 산, 전망 좋은 카페, 고등어조림으로 이름난 식당, 사색하며 능행은 또다른 즐거움
한강 변 도로를 따라 속도를 늦추며 질주하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300여 미터 지점에서 유턴한다. 다시 200미터를 나아가 오른쪽으로 난 길로 들어선다.
잠시 뒤 네비게이션이 멈춰섰다. 그런데 카페가 보이지 않는다. 잘못 왔나 싶어 포털 지도를 열었다. 잘못 내리지 않았다. 9시 30분, 카페가 문을 열기까지는 30분이 남았다.
길 왼쪽으로 우뚝 솟은 언덕에 가린 카페는 좀체 속살을 드러내지 않았다. 카페 추정 지점에서 오른쪽 위로 난 산길을 조금 걷다 내려오면 맞춤한 시각이 될 것이었다.
두툼한 옷가지를 챙겼다. 제법 날이 찼다. 한참 걸었다. 왼쪽으로 거기 있을 법하지 않은 산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년 전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안시성>의 세트장이다. 조인성씨가 주연을 맡아 성주 양만춘 역을 열연했다.
아차산 초입의 대장간 마을. 태왕사신기, 안시성 등 드라마와 영화를 여기서 촬영했다.
초입 기암 절벽과 길 곳곳에 자리한 너른 바위
산장 무리가 줄지어 선 게 보이면 오른쪽 모퉁이로 방향을 틀자. 아차산 들머리다. 구리 방면 도로에서 바투 산행이 시작되는 코스라 주변에 별다른 기반 시설이 없다.
짐작하듯 그 코스를 따라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이 많지 않다. 한적하게 산행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아차산, 기암 괴석과 너른 바위, 깊은 품
그렇다고 마음을 놓기엔 아직 이르다. 오랜 옛날 산적 떼가 살았음 직한 산세에 한번 놀라는 것쯤은 예사라고 해두자. 별반 높지 않은 산에도 불구하고 초입부터 기암괴석이 버티어 선 풍광에 제법 놀랄 각오 정도는 해두는 게 좋다. 아마도 이런 점이 이쪽 코스의 백미일지 모른다.
인근 코스로 그랜드워커힐 서울에서 출발하는 산행이 운치있다. 빼어난 한강 풍경을 바라보며 오르는 산행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길에 면한 <아차산 생태공원>에선 봄철 벚꽂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가을이면 수려한 단풍이 곱게 물든다. 서울 근교에 이만한 풍광과 산세를 갖춘 산이 또 있으랴 싶을 거다.
기왕에 워커힐 코스를 예로 든 만큼 잠시 정보 제공 차원에서 샛길로 빠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산길이야 워낙 샛길이 많은 법이다. ^^
워커힐 코스는 광나루역에서 셔틀버스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광나루역 2번 출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왼쪽으로 정류장이 있다. 셔틀버스는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버스를 타고 워커힐에서 내리면 된다. 워커힐 코스에서 맞는 비경을 사진으로 남긴다.
워커힐 아파트 뒷편 벚꽃길.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워커힐 호텔 뒷쪽 산책길
더글라스 가든 쉼터의 가을색. 워커힐 호텔과 아차산생태공원 사이에 있다. 이상 사진 @이상헌
구리 방면에서 <모던기와커피>를 왼쪽으로 끼고 오르는 코스는 정상까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당도한다.
가는 길 내내 너른 바위가 쉴 곳을 만들어 주는가 하면 좁은 산길에 중앙을 비집고 들어온 가지들이 치기가 발동했는지 툭툭 어깨를 치는 정다운 모습이 지천이다. 토양 유실을 막으려는 고육지책이겠지만 덱 형태로 조성한 계단만큼은 적응이 쉽지 않다.
산길이 여러 곳에 갈래를 친 것에서 적잖이 힘든 산행이 될 수 있음을 짐작케 했다. 우려할 만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거리의 99%가 실제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가파른 길이 있으면 평평한 길도 있더라는 삶의 진리를 모르지 않다. 심신을 가지런히 내려놔도 될 산행에서마저 교훈을 떠올리고 싶지는 않다. 때때로 교훈보다 나은 덕목이 재미인 것 잊지 말기를. 누구라 할 것 없이 재미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힘겹다는 8부 능선에 오르자 일순 시야가 훤히 트였다. 멀리 유유히 흐르는 한강 줄기가 보이고 다리 위로 힘차게 달리는 차량들이 점점히 눈에 박힌다. 그 바깥으로 산더미같이 쌓은 주택가가 인상적으로 대비된다. 대비 효과는 대체로 강렬하다. 아차산 첫 산행이 그러하듯...
수년 동안 근처를 오가도록 그 흔한 <아차산> 산행을 결행하지 못했다.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를 줄 알았다. 문제라면 단 하나.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것. 그 후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산을 찾았다. 알다가도 모를 상황은 그 후로 수십 번쯤 맞닥뜨렸을 텐데 모르고도 알은 채 하는 경우만 많아지는 듯하다.
정상 좌우로 펼쳐진 풍광에 압도된 것도 잠시 시계를 보고 아차 싶었다. 시각이 12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조금만 걸은 뒤에 카페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은 걸 송두리째 잊었다. 그만큼 <아차산>이 빼어났다는 뜻이겠다.
영어 형용사 모던과 전통 양식의 기와, 그리고 외래 커피라는 매우 억지스러운 조합은 영 입에 붙지 않았다. 〈모던기와커피〉는 〈동구릉〉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천혜의 위치로 그 흔한 고려 없이 단박에 선택했다. 나중에서야 〈모던기와커피〉를 거쳐 〈어랑추〉에서 점심을 먹고 〈동구릉〉으로 향하는 일정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해야했지만 말이다.
사실 동선은 〈어랑추〉, 〈동구릉〉, 〈모던기와커피〉 순으로 짜야 옳았다. 전자로 구성하다보니 커피는 12시 30분에 마셨고 점심은 2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동구릉〉은 어땠을까? 4시에 도착해 마감시간인 6시까지 경내를 부리나케 걸어야 했다. 능의 60%나 봤을까?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때아닌 호사(?)를 누렸지만 동선만 제대로 짰어도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거든 여러분은 〈어랑추〉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어랑추〉는 〈동구릉〉에서 아주 가깝다.- 〈동구릉〉을 충분히 거닌 뒤에 능에서 많이 떨어져 있지만 한강 풍경이 너무도 좋은 〈모던기와커피〉에서 알콩달콩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 왜 안그런가!
모던기와커피, 한옥의 멋스러움, 한강 풍광은 덤
계량 한옥의 멋을 살리는 데는 다른 노력이 필요 없었다. 현란한 꽃이나 특이한 나무들을 가까이 들이지 않을 것. 한옥에서 멀찍이 시선을 돌리게 하는 데 그만한 것들이 없겠기에 그렇다. 그 점을 카페 주인장이 잘 알았던 듯하다.
조경은 한옥 앞 마당의 잔디가 전부였다. 그외 경치는 자연 그대로를 최대한 살렸다. 밑둥치부터 탐스럽게 자란 나무들이 즐비한 곳에 전망대를 설비했다. 거기에 여남은 개의 테이블을 놓았다. 이렇다 할 것 없는 배치였다.
그곳에 오래 앉았으면 추울 법도 한데 거기 자리를 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어설 줄 몰랐다. 경관 몰입도가 최고였다. 수치를 가늠할 길마저 없었다. 아메리카노와 대추차를 주문했다. 이미 시간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주력 상품은 묵은지 고등어조림이다. 들기름 두부 부침과 조합이 좋다.
어랑추, 노포의 맛, 일품 고등어조림
<어랑추>는 노포로 손색이 없었다. 외관에서 풍기는 노포다움은 음식에서 빛을 발했다. 어랑추의 시그니처 메뉴라 할 묵은지 고등어 조림이 특히 뛰어났다. 푹 익은 묵은지 밑에 간이 잘 밴 고등어가 가득 들었다.
제대로 살 오른 고등어 맛이 달큰하게 입안으로 퍼지는가 하면 알싸하고 뭉근한 묵은지가 연신 성화를 붙이는 통에 밥그릇이 언제 빈 줄도 몰랐다. 더이상 고등어가 퍽퍽하다는 섣부른 인상이나 자칫 고등어에게 억울할 수 있을 비릿하다는 수식어는 이곳 노포에선 설자리를 잃었다.
맛중에서도 당기는 맛이 제일 무섭다. 설명할 길 없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뇌리에 각인된 맛이기 때문이다. 끌려나온 맛이 좀체 끌려들어갈 기미가 없을 때 그만 울컥하는 심정이 들었다. 어머니가 차려준 손색 없는 한상 차림이었다.
단, 위생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 내부 관리는 물론이고 식기 등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나이 드신 분들이 아들들 도움으로 운영하는 식당이라 현 웨이팅 수준에 비해 많이 버겁게 느껴졌다.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손님이 떠나게 된다. 한철 장사에 그칠 생각이 아나라면 두루 살필 필요가 있다.
동구릉은 도성의 동쪽에 위치한 무덤이라는 뜻.@산으로 간다
동구릉, 왕릉의 위엄, 고요한 산책길
동구릉은 구리시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아홉 능을 말한다.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수릉, 경릉이 그것이다.
조금 더 언급하면 건원릉은 조선 태조의 무덤이다. 현릉은 문종과 현덕 왕후, 목릉은 선조와 의인 왕후 및 계비 인목 왕후, 휘릉은 인조 비 장렬 왕후, 숭릉은 현종과 명성 왕후, 혜릉은 경종 비 단의 왕후, 원릉은 영조와 계비 정순 왕후, 수릉은 문조와 신정 왕후, 경릉은 헌종과 효현 왕후 및 계비 효정 왕후의 무덤이다.
여의도 면적의 10분의 1에 달하는 너른 대지 위에 조성된 묵직한 톤의 왕릉. 저 웅장함 배면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베이듯 들려왔다. 능이 가진 힘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싶었다. 짓누르지 않는 엄숙함.
곁을 스쳐가는 무명한 새들의 귓등이 그새 새빨갛다. 과연 그랬다. 노을 지는 하늘이 파랗게 변했던 것도. 때때로 들려오던 태평소 소리에 화들짝 놀란 것도. 새들의 유별난 귓등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