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일월수목원>, 수원 성균관대 후문 먹자골목 내 <생각나는 순대국>, 용인 온천 <로만바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수목원 산책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장욱진 미술관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장욱진 미술관은 양주시에서 건립한 미술관으로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찾는다.
외관이 작아 미술관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알만한 작가의 작품이 주로 전시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으면 섣부른 평가가 옹색해지고 만다. 이번에 미술관은 김환기 작품을 걸었다. 회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군침이 돌게 마련일 거다.
계곡에 면한 미술관답게 여름엔 앞 개울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 수도 있고, 지금과 같은 가을철은 단풍놀이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그리 멀지 않은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재미도 비할 바가 없을 듯하다. 미술관 문이 닫힐 때까지 오래 머물러도 마냥 좋을 것만 같은 느낌이 강렬했다.
상찬을 거듭하고도 미술관에는 갈 수 없었다. 미술관은 온천탕에서 멀었다. 미술관까지 차로 1시간 10여 분을 달려가기에는 빗길 역시 무리였다. 대안을 접자, 비가 그쳤다.
우겨서라도 저녁 무렵의 온천욕을 다음으로 미루고 비 오는 날이라 수목원 산책이 어렵다는 핑계로 미술관에 다녀올 만반의 계획을 세웠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 수목원이 온천탕에서 가깝다며.
- 마침 비도 그쳤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일월수목원은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짐작이 맞는다면 거기서 온천욕장 로만바스까지는 10분 거리면 충분했다. 비까지 그친 마당에 더는 머뭇거릴 까닭이 없었다.
일월수목원은 수원 천천동의 성균관 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를 끼고 있다. 수목원 왼편으로 면한 도로를 건너면 바로 성균관 대학교 정문으로 연결된다. 수목원 뒤로는 제법 큰 저수지가 반긴다.
생각만큼 크지는 않지만, 저수지 한켠에 물억새를 가득 심어 경관에 운치를 더했다.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드는 곳에는 100미터가량의 둔덕을 세우고 그 밑으로 화단을 조성하는 등 변화를 준 것도 특색있다.
산책길에 길게 늘어선 메타세쿼이아가 풍광을 더하는데 어느 틈에 다녀갔는지 무른 땅에는 종류를 알 길 없는 동물 발자국이 선명하게 박혔다. 안타깝게도 저수지 산책길을 따라 철제 담장을 쳐놓아 수목원에서 저수지 방향으로 바로 진입할 수 없다. 수목원 입장료는 4000원이다. 과연 그 정도의 돈을 내고 수목원을 둘러봐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조경은 쓸모를 잘 갖췄다. 특히 좁은 면적을 넓게 활용할 욕심을 부리지 않아 도심 수목원의 기능을 살린 점이 좋았다. 관목과 화초를 종류와 성격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야 보편적이겠지만 오밀조밀하지 않게 구획한 솜씨가 돋보였다. 처음엔 휑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그 덕(?)에 바삐 걸을 욕구가 사라졌고 이내 산책다운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도심 수목원의 주요 기능이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화초와 나무 사이를 걷는 것. 돈 내고 들어왔으니,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양 두 눈을 부릅뜨고 보지 않아도 되는 수목원은 찾아보면 많지 않다.
어떻게든 많은 수의 화초와 나무를 심으려는 주인장(?)의 욕심과 천지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화초와 나무를 봐야 직성이 플리는 관람객의 욕구가 자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의외성이야 언제든 있는 법이라 혀를 차기만 하는 나이는 벗었다. 의외여서 좋은 곳, 일월수목원이다.
- 좋다. 오랜만에 참 느릿느릿 걸었어.
- 오히려 작아서 좋네.
작은 공간에 티 나지 않게 구릉을 만들고 그 뒤로 연달아 골목길을 낸 곳으로 들어가자 마치 뒤안길의 누이라도 만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키 높이의 억새가 자아내는 투박한 이미지에서도 누이 냄새가 났다.
그 밑으로 냇가가 흐르고 냇가에 심긴 노란 꽃들이 눈가에 매달려 내려올 줄 모르는데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하릴없이 흔들어 놓은 의자에 벌새가 앉으려 날개를 퍼덕인다. 해가 저물 시간이다.
기어코 점심을 한참 놓치고서야 배고픈 줄 알았다. 거기서 식당까지는 도보로 30분은 족히 걸릴 터였다. 겨우겨우 물어서 알게 된 정보라 그마저도 자신할 수 없다.
- 학교 뒤쪽으로 가면 먹자골목이에요.
일러준 길을 따라 성균관대 안으로 들어섰다. 노란 은행 잎이 수북히 쌓인 거리로 여남은 명의 학생들이 지나갔다. 먹자골목은 생각보다 멀었다. 후문으로 난 길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오른쪽 길로 접어들자 과연 식당가가 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일요일이라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았다. 학생들이 없는 일요일에 영업장 문를 열어봐야 별 소용 없다는 걸 업주들이 모를 리 없었다. 문을 연 곳 중에서 가장 깨끗한 곳을 찾았다. <생각나는 순대국>이었다.
순대만 들어간 순대국, 내장과 머릿고기 등속이 들어간 순대국, 마지막으로 매운 족발 1인분을 시켰다. 군내 없는 순대국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국물은 더없이 깔끔했다. 순대와 내장은 신선해서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직화로 맵게 구운 족발에 정신이 번쩍 든 것도 잠시 당기는 매운맛에 정신줄을 마저 놓았다.
한끼 식사로 너끈한데 맛있기까지 하다면 두 말할 것 없다. 천만 번도 더 부러 찾을 일이었다. 게절이 바뀔 때마다 수목원을 찾고 굳이 한 시간 거리를 마다하지 말고 이곳 순대국집에 들르자고 동행과 약속했다. 다음 번엔 직화 적발 반에 불 족발 반을 먹기로 했다. 시계가 6시를 가리켰다.
로만바스는 1100미터에서 길어올린 온천수로 이름을 알렸다. 가족 단위의 이용객이 많다. 아이들 손잡고 오는 부모들의 표정이 밝다.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오천으로 샤워를 마치면 나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더없이 매끄러워진 피부는 더는 씻을 일 없다는 듯 말끔했다.
이용료는 평알 10000원, 주말 12000원이다. 옷 대여료 2000원을 내면 찜질방을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