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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안 가리고 위험에 뛰어드는 청소년, 이유 있다!

와일드후드, 인간과 동물이 모두 겪는 사춘기

by 콩코드

누가 봐도 엄두가 나지 않는 행동을 벌이려면 적어도 대비책을 세워놓거나 비교적 상처가 덜한 방향으로 우회하기 마련이지만 청소년들은 그럴 생각에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어른 편에선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오죽 전전긍긍하기가 하늘을 찔렀으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 심정’이라는 속담까지 생겼을까?



워낙 빠르게 변모하는 현대 문명의 복판에서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환경에 지나치게 노출된 결과 요즘 청소년들의 판단력과 합리성이 흐려졌을 거라는 분석은 그럴듯하지만 표피적이다. 그런 분석은 문명 이전 혹은 문명 초기의 청소년이 지금보다 의젓했으리라는 추론을 얼마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청소년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유감스럽게도 냉정했다. 청소년들의 행동에 혀를 차거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졌던 모양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시기는 기원전 425년 경이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또 있다. 중세 스페인 사제였던 알바루스 펠라기우스는 1311년에 “요즘 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라고 개탄했다. 그 옛날 청소년에 대한 평가나 지금의 평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오죽했으면 저런 말을 공공연하게 발설하고 기록에까지 남겼을까 싶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부모에게 대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소크라테스, 기원전 425년경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 - 수메르 점토판, 기원전 1700년경
“요즘 학생들 정말 한숨만 나온다” - 알바루스 펠라기우스, 1311년



현대 과학은 인류가 유전자를 통해 생존에 유리한 방식이나 습관을 전승하고 그렇지 않은 방식과 습관은 도태시켜 인간 우위의 생태계를 확보해 왔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방종이 3800년 가까이 이어져 올 동안 거의 바뀌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의 불가해한 행동이 거의 유사한 형식으로 이어진 것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유전적 특질(인류에게 유리한)이 있기라도 한 걸까? 궁금증이 일 만하지 않은가. 진화생물학 교수인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와 과학 전문 기자인 캐서린 바워스가 관심을 가진 대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와일드후드》의 저자들은 동물과 인류가 도전정신, 무모함, 격한 감정 등에서 유사한 궤적을 그린다고 보았다. 특히 청소년기에 그 특징이 대단히 또렷하게 드러나는 점에 주목한다. 그 시기를 거치며 청소년들이 생존확률을 높인다는 것, 이른바 세상 모든 날것의 통과의례인 ‘와일드후드’다. 청소년들은 보통 우회로를 택하지 않고 직선 주로로 냅다 달린다. 통과할 확률이 적은 직선 주로에는 적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해달이 백상아리 떼 속을 빠르게 질주하는 것과 모양새가 닮았다. 다람쥐 떼가 흉포한 방울뱀 주위를 재빨리 돌고, 박쥐 떼마저 포식자인 올빼미를 어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청소년기의 가젤은 굶주려 죽기 직전인 치타 곁을 유유히 걸어간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단지 가설에 불과하지만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는 청소년기의 보편적인 행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일치한다. 청소년기 동물은 필요에 쫓겨 한계를 탐험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혁신을 꾀하며 바로 이 과정에서 미래를 개척한다.
............ 《와일드후드》 중에서



얼핏 봐도 인간과 동물의 행동은 생존 본능과 정반대다. 저자들은 그와 같은 비상식적인 행동이 인간과 동물의 생존, 적응, 번식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 인간과 동물이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곧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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