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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달려 찾은 이야기

– 유년의 기억에서 시작된 책 읽기의 역사

by 콩코드


프롤로그 – 잊을 수 없는 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겨울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낯설 만큼 어두웠지만, 무섭지 않았다. 앞바구니엔 친구 집에서 빌린 추리소설 두 권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셜록 홈즈, 하나는 괴도 루팡. 그날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마치 두 권의 책이, 두 개의 세계를 품은 열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열쇠는 무거운 꾸지람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화가 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밤길을 다니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느냐고. 딴짓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얹어졌다. 책을 위해 갔다고 말해도, 책이 무슨 이유가 되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어린 나는 그 꾸지람 앞에서 목이 콱 메어왔다. 세상을 얻은 듯했던 기쁨은 그렇게 짓눌렸고, 다음 날 받은 또 하나의 말은 더욱 뼈아팠다.


“아버지가, 우리 애는 책도 안 좋아하는데, 친구가 저렇게 미친 듯이 책을 읽으니까 불편하대. 이젠 오지 마."


친구의 말은 뜻밖이었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덜어낼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그 집에 가지 않았고, 추리소설을 읽는 일도 멈추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읽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1장 – 추리소설, 처음으로 빠져들다


그 시절의 나는 학교보다 도서관을 더 좋아했다. 복도 끝, 햇살이 비치는 작은 독서실에 앉아 책장을 넘기면 세상이 달라졌다. 셜록 홈즈의 명석함, 괴도 루팡의 자유로운 기개는 내 안의 상상력을 부풀게 했다. 사건과 단서, 함정과 반전 속에서 나는 주인공처럼 머리를 굴리고 마음을 졸였다. 책 속의 한 페이지가 눈앞의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건 단순한 취미 이상의 것이었다. 나에게 책은 세계와 나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고, 설명할 수 없는 마음속 빈자리를 메워주는 온기였다. 추리소설은 특히 그러했다. 작은 단서 하나로 퍼즐을 맞추는 과정은 나를 삶이라는 미지의 게임에 초대했다. 그래서일까. 두 시간 거리도 마다치 않고 친구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던 그날, 나는 그것이 위험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2장 – 책을 금지당하다


하지만 어른들의 시선은 달랐다. 그 밤길은 너무 어두웠고, 그 열정은 불안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걱정은 분명 사랑에서 비롯되었겠지만, 그날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가 책을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게 왜 문제인지, 꾸지람은 왜 책까지 포함하는지를. 그리고 친구의 집에서 들은 말은, 책을 금지당한 느낌보다 더 큰 외로움을 안겼다.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 후로도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마음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의 눈을 피해 이불속에서 후레시를 켜고 몰래 읽거나, 반납 날짜가 지난 책을 몰래 가방에 넣어두었다. 책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었지만, 그 빛은 조용히 숨죽이고 타오르고 있었다.


3장– 돌아온 이야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고, 삶이라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 책장 한켠에서 셜록 홈즈 전집을 발견했다. 손이 멈칫했지만, 곧 펼쳤다. 그리고 놀랐다. 그 옛날, 내 심장을 뛰게 했던 바로 그 문장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명탐정의 냉철한 추리가, 루팡의 장난기 가득한 활극이,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20년 만의 재회. 어린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세계로 다시 들어간 순간, 나는 책이 단지 이야기 그 이상의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책은 내 유년의 기억이자, 정체성이었고, 내가 잊고 있었던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다.


4장 – 책과 함께 자라다


그 이후로도 책은 내 삶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독서라는 행위는 나에게 세상과 나 사이의 통역이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길을 잃었을 때도 책은 늘 곁에 있었다. 때론 한 문장이, 때론 한 권이 내 삶을 바꾸었다. 철학서부터 문학, 인문, 예술, 심리학까지. 책은 내 사고의 뿌리를 넓혀주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눈을 길러주었다.


어린 시절, 추리소설을 읽기 위해 달리던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 아이가 되어 밤늦게 책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읽기 위해,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저 길을 달릴 수 있을까?” 대답은 늘 같다. "그렇다."


에필로그 – 아직 끝나지 않은 독서


지금 내 책상 위에는 읽다 만 책이 수북하다. 어떤 건 반쯤 읽고 덮었고, 어떤 건 밑줄만 잔뜩 그어놓았다. 하지만 그 어느 책도 낯설지 않다. 그것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계다. 언젠가 내 아이가 셜록 홈즈를 읽고 싶다고 말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웃으며 그 전집을 꺼내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이 책, 아빠가 어릴 때는 자전거 타고 두 시간 걸려서 빌리러 갔단다.”


그 말속엔 아버지의 꾸지람도, 친구의 말도, 밤하늘의 별빛도, 자전거의 바퀴 소리도 모두 담겨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책을 읽는다. 여전히 어떤 책은, 밤길을 달려가서라도 만나고 싶은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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