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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 조성되는 야생의 생태계

어반 정글

by 콩코드



너구리 가족


너구리닷!



무심코 지나친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대여섯 명이 합세하더니 삽시간에 한 장소에 열 명은 될듯한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목을 빼고 수풀로 뒤덮인 천변을 내려다보았다.



그해 여름밤은 유난히 짧았다. 보름달이 뜨기라도 하면 밤은 더더욱 기세를 펴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찌르레기가 울었다. 그날 하천은 달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거렸다. 천변엔 사람 크기만 하게 억새풀이 자랐고, 밑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늦은 밤에도 탄천엔 운동 삼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천과 천변을 번갈아 바라보며 하늘거리듯 걸었다. 달빛에 물든 하천 밑으로 물소리만 요란하게 흘렀다. 천변에선 연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은 거기 야생동물이라도 사는 모양이라고 말을 거들었다. 그날 너구리 가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두 마리 정도야 우연히라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족 전체를 한눈에 담는 경우란 흔치 않았다.



저기 있다.

저기도.

어, 저쪽에도.



대충 헤아려도 여섯 마리는 되었다. 안도 쪽에 몸을 반쯤 드러낸 너구리, 그놈 뒤 오른쪽에 한 치 간격으로 한 마리씩, 이어 그들 왼쪽으로 저 멀리 우거진 수풀 새로 세 마리가 웅크리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어 너구리들이 제각각 선 자리 너머로 네 갈래 길이 드러났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지형이 눈에 들었다. 너구리들이 급격한 경사로 반대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터다. 그 후로도 같은 장소에서 두 번 더 너구리들을 만났다.





수년 전만 해도 탄천은 십중팔구 야생동물이 보금자리를 둘 곳이 아니었다. 환경운동의 영향으로 수질 감시가 늘자 하천이 제법 관리되었다고는 해도 무더운 날이나 기압이 한층 내려간 날에는 어김없이 탄천에서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야생동물은커녕 그 흔한 피라미조차 거반 살지 못한 하천에 드디어 봄날의 기운이 찾아왔다.



당시 정부는 악화된 경기를 부양하려고 공공근로 사업을 일으켰다. 야산 가꾸기와 탄천 조성이 대표적인 사업이었다. 특히 탄천은 시민이 애용하기에 맞춤한 구석을 제법 갖추고 있었다. 잘만 조성하면 도심에 태부족한 산책로와 운동장 또는 피크닉 장소가 들어설 것이었다. 얼마간 시행착오를 거쳐 탄천이 자연 하천으로 탈바꿈하자 천변에 무성한 수풀이 돋고 그 사이로 피라미가 돌아왔다. 건강한 물을 마신 나무들은 활기를 띠었다. 계절을 따라 가오리와 황새가 오갔다. 이어 이름만 들어서는 도심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생동물들이 천변에 둥지를 틀었다.



몇 년 후 한층 깨끗해진 탄천변과 야산에 너구리, 고라니 등속이 둥지를 틀면서 감염 위험이 제기되었다. 도심에선 꿈도 꾸지 못할 광경이었다. 탄천에 표지판이 걸렸다. 야생동물 출몰 지역. 위험! 불과 10년이 채 안 된 시절이었다. 도시와 야생동물이 병존하는 희귀한 세상이 온 것이다. 꿈에라도 그릴 그림이 아니었다. 더더욱 야생동물과 접촉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문명은 도시와 짝이 맞았다. 그리고 그 문명엔 조련된 애완동물만 겨우 자리를 집았다. 야생은 도시가 서기 전 흔적으로만 사람들 기억에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 야생이 도심과 자웅을 겨룰 틈새를 조금씩 넓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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