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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류 문명과 그 안에서 공존하는 동식물의 생활사

벤 윌슨의 《메트로폴리스》와 《어반 정글》

by 콩코드


시차를 달리해 같은 책으로 두 권을 구입했다. 한 권은 책이 처음 나왔을 때 달려가 셈을 치렀고, 다른 한 권은 지난해 10월 미 동부와 캐나다 여행에 맞춰 손에 넣었다. 먼저 산 책은 부피가 크고 두꺼웠다(128*189*46mm, 668쪽). 내용이 풍부하고 관점 또한 시퍼렇게 살아있어 잠시라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터라 자주 그 두꺼운 책을 끼고 다녔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라면 대책이 필요했다. 한 차에 30여 명이 타고 여행을 다니는데 크고 두꺼운 책은 불필요하게 남의 눈에 띄기 좋았다. 보관도 쉽지 않았다. 틈틈이 읽자면 쌕 안에 가볍게 들어가야 했다. 먼젓번 책이 발간되고 1년이 좀 지났을 때 같은 책이 3분의 2 정도 크기의 판형으로 재출간된 사실을 확인했다. 운이 좋았다. 마침 그 책이 깨끗한 외형을 유지한 헌책방에 꽂혀있던 터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인류 문명사와 도시의 관계를 생생히 그린 책은 《메트로폴리스》였다. 저자는 벤 윌슨이다. 공교롭게도 윌슨은 어제 내가 쓴 글의 소재가 된 《어반 정글》의 저자이기도 했다. 오늘 《어반 정글》을 사들이고 나서야 《메트로폴리스》와 《어반 정글》의 저자가 같은 사람인 줄 알게 되었다. 기막힌 우연이라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미안한 말을 덧붙이면 위 여행지에서 다 읽지 못하고 《메트로폴리스》를 집으로 가져왔다. 2023년 10월 중순의 일이다. 책의 첫 발간이 2021년 12월이니까 거의 2년 3개월째 책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벌써 읽었어야 할 책인데 통 끝을 마주하지 못했다.



흥미를 잃은 게 아니었다. 다른 책에 꽂힌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인류와 문명이라는 주제를 신줏단지에 담듯 가슴 깊이 쟁여놓은 마당에 다른 분야의 책 읽기란 내게 일종의 변경, 여기와 같았다. 다른 책을 읽다가도 언제라도 같은 주제로 회귀할 만만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그런 책을 여태 읽지 못한 건 그야말로 진귀한 경우였다. 결국은 마음의 빚을 갚을 날이 온 셈이었다. 한순간에 《어반 정글》에 꽂힌 것이 그렇고, 느닷없이 어반 정글이 포괄한 ‘도시 속 야생 생태계’에 급 관심을 두게 된 것이 그랬다. 큰 맥락에서 두 작품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속 인류 문명과 그 안에 드러난 동식물의 생활사. 인류를 포함한 동물과 식물이 나름의 터전을 지키며 영역을 확장해 간 이야기는 설핏 양자 간의 다툼을 연상하지만 속살은 그렇지 않았다. 터 위에 터를 짓고 그 위에서 문명사를 꽃피운 인류와 마찬가지로 형식은 다를지언정 동식물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알게 모르게 영역을 확장해 왔다는 엄연한 사실 앞에 숙연한 마음마저 든다. 이어지는 글은 그 속살에 관한 이야기다.






《메트로폴리스》에서 벤 윌슨은 인류 문명사에 찬연히 드러난 26개 도시를 손에 잡힐 듯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최초의 도시 우루크가 세워진 이후 오늘날까지 총 6,000년간 인류 문명을 꽃피웠던 26개 도시가 손에 잡히기라도 하듯 우리 앞에 드리운 것이다. 도시의 역사에 켜켜이 더께를 올린 문학, 예술, 사교, 음식에 이어 상업, 무역, 매춘, 목욕탕에 돋을새김 된 이야기가 한층 흥미를 더하며 마치 저자가 재현한 도시 안에서 걸어 나오는 기이한 현상에 아찔할 지경이다. 짧지만 인류 고대사에 오랜 관심을 가진 나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다. 최초의 도시 우르크의 존재를 새삼 확인하고는 일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당시 우르크는 현대판 메트로폴리스였다. 이웃 문명과 활발히 교류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우르크는 현대 문명의 전범과도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규모는 그에 비할 바 아니라도 현대문명 또한 그 자장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만큼 우르크의 존재감이 빛났다. 그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큰 틀에서 보면 문명의 속살, 곧 청사진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데 눈이 뜨인다. 한편으론 문명사를 통해 현대문명이 직면한 위기의 일단을 헤쳐 나가려는 현대 인류의 구상이 허황한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는 용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우린 과거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이식하거나 변용한다. 그렇게 인류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두드러진 가치라면 바로 그 부분, 우리가 사는 도시를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그곳에서 펼쳐진 인간군상들의 얼마간 괴기하거나(?) 어처구니없는(!) 모습과 그것들을 축으로 명멸한 문명에 관해 속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친다면 아주 아쉬움이 남았을 것이다. 후속작인 《어반 정글》이 명멸하는 문명을 넘어 공존하는 문명의 그림자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벌써 몸이 근질근질하다.






책을 손에 넣은 뒤 읽을 생각에 마음이 달떴다. 짧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구입한 터라 고작 대여섯 쪽을 읽는 데 그쳤다. 단락마다 읽고 또 읽었으니까 그럴 만했다. 그렇게 자위하기엔 아쉬움이 목울대 근차까지 차올랐다. 역시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책더미에 올린 《어반 정글》을 벌써 여러 번 흘끔거리며 보았다. 저자의 정확한 이름을 확인한다는 핑계로 몇 번 들었다 놓기도 했다. 무게가 손끝에 묵직하게 전해오는데 질적 수준도 같은 비중으로 다가왔다. 전작에서 워낙 순도 높은 줄거리 선과 주제를 관통하는 엄정한 분석, 실현가능한 미래 전망을 두루 선보인 벤 윌슨이라 내겐 이미 믿고 보는 저자였다.



잠시 후면 퇴근하고 전철에 올라탈 것이다. 거기서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몇 정거장 뒤에 내릴 게 분명하다. 굳이 정신 차릴 뜻이 없다. 집에 들어가선 서둘러 저녁을 먹을 테고, 티브이를 잠시 지켜본 뒤 이내 책에 눈매를 꽂게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책이란 늘 그 모양이다. 피곤기까지 싹 가시게 하는 맛, 그 맛을 못 잊어 맨날 서점 근처를 배회하는 남자가 있다. 나이만 먹었지 버릇 하나 바뀐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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