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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가 말 많은 이유, 아저씨가 말 끊는 이유

화법의 문제일까? 태도의 문제일까?

by 콩코드


화성 사는 아줌마, 금성 사는 아저씨


유독 대화 내내 배경 설명에 열 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방은 골자가 무엇인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건의 발단과 진행 과정은 물론이고 그 각각에 곁들인 개인 논평까지 듣고 나면 듣는 사람 처지에선 정말 맥이 빠진다. 아직 결론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는 건 안 비밀. 일상 수준의 대화에 등장하는 시시콜콜한 화제라면 시간을 들여 듣고 또 들은들 무슨 대수겠냐마는 그런 식의 대화라도 듣는 편에선 정말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그런 대화를 즐겨하는 층이 분명 있다. 세상의 4분의 1을 점유한 아줌마다. 논리적으로 4분의 1은 아저씨일 터다. 나머지 4분의 2는 성별 불문 노인과 아이라고 해두자. 한 시간 넘게 통화하고도 나머지 얘기는 만나서 하자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아줌마들이 이 땅에 산다. 평가를 떠나 그런 정신을 지닌 아줌마들이 존경스럽다. 말하는데도 다 기운이 필요한 법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만나자마자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줌마들을 볼 때면 그런 체력이 다 어디서 나느냐고 묻고 싶어 진다. 카페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을 보고는 저런 배짱은 타고나야 한다는 결론에 얼척없이 이르고 만다.



아줌마가 말 많은 이유


뭐 아줌마들이라고 할 말이 없겠나. 집구석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대화로 푼다는 게 그분들의 보편적 주장이자 철학이다. 공박할 마음 조금도 없다. 오죽 풀 데가 없었으면 반나절을 엉덩이 붙이고 카페에 앉아 말로 풀겠느냐 싶어 짠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식의 생활 밀착적 대화에선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화제를 다시 끌어온들 문제가 될 턱이 없다. 결론을 내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사람이 없고, 왜 그렇게 말이 많냐고 누구도 핀잔주지 않는다. 두루 말을 마쳐야 비로소 자리를 파할 터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머지 얘기는 다음번에 만나서 하자. 전화 통화든 모임이든. 늘 그식이다. 예외를 거의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경력직 아줌마에게 들은 말이다. 치부를 드러내고는 그 아줌마 멋쩍었는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무슨 대단한 안티 아줌마라도 된 듯싶다. 오해다. 난 누구보다 아줌마를 사랑한다. 내 아내도 아줌마다. 말수는 좀 적은 편이다. 당신도 한 번 맥 빠져 보라는 취지에서 본론에 앞서 배경부터 잔뜩 늘어놓았다.





먼저 말해? 나중에 말해?


역지사지가 되지 않고는 남의 입장을 알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위기상황에서라면 타인의 어떤 결정을 꼼꼼히 따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왕이면 상대방에게 감정이입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도 겨우 가늠할 정도라는 게 내 판단이다. 언제 중심 주제가 나오나 목 빠진 분들 많으실 게다. 본론으로 들어간다. 긴급한 상황에 설명이 필요하거나 중요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꺼낼 땐 상대방에게 결론부터 말하라. 이어질 본론의 결론이다. 내용은 이렇다. 반대로 내용은 이렇다고 장황하게 설명한 뒤에야 위와 같이 요지를 붙이면 어떨 것 같은가?



문을 열었는데 안에 있던 행거가 넘어져 걸어놓은 옷이 엉망이 됐어. 가게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다급하게 걸려 온 전화 한 통. 의류 샵을 운영하는 지인이었다. 닫힌 상태에서 문을 열었는데 그렇게 됐다고? 내가 문을 열었잖아. 지인의 답변으론 그곳 상황을 알 수 없었다..... 사진부터 봐. 바람이 불어 옷이 흩어졌다고 하기엔 사진 상태가 심각했다. 혹 도둑이 들었나 싶었지만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물었다. 가게 문이 닫힌 상태에서 행거가 넘어졌어? 아니면 문을 열고 들어가 뒷문을 마저 열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렇게 됐어? 대뜸 지인이 화부터 냈다. 말뜻을 몰라? 세부 질문으로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려던 의도가 보기 좋게 난타당했다고 느낀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급할 땐 미괄식 화법


듣는 사람은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다. 들려주려는 사람이 굳이 나를 택했으니 귀를 기울인 것이다. 마침 이해가 덜 되어 묻는데 그게 듣는 사람 잘못일리 없다. 말하는 사람의 설명이 미진하면 더 들으려 하는 게 듣는 사람의 자세이기도 하다. 특히 현장 상황을 모르는 청자에게는 화자가 본 것을 풀어서 설명해야 수월하게 이해에 도달한다. 현장을 본 것은 화자이지 청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긴급한 상황 설명이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있으면 두괄식으로 말해달라고 요청했다가 지인에게 면박만 당했다. 다 내가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자신의 말을 무시한 결과라고. 예전엔 안 그랬다고........ 어떤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분에게 판정을 구한다. 지인의 화법이 문제일까? 내 태도가 문제일까?




행거가 넘어져 옷가지가 흩어진 까닭은 이렇다. 지인이 시간에 맞춰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다. 여느 때처럼 환기를 시키려고 열고 들어간 문을 밖으로 활짝 열었고, 쪽문 형태의 뒷문을 마저 열었다. 잠시 화장실을 갔는지 자리를 비웠는데 돌아와 보니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난리가 났던 것이다. 설명이 어려웠을까?



- 환기를 시키려고 앞뒤 문을 열고 잠시 나갔다 왔더니 행거가 쓰러져 내부가 난장판이 됐어? 무슨 일이지? 난 다친 데 없어. 가게 내부에 놓은 행거가 넘어졌어. 문을 열었는데. 왜지?



앞문을 열기 전 상황이야, 아니면 앞뒤 문을 다 연 뒤에 벌어진 상황이야,라고 내가 묻는 말에 지인은 답하지 않았다. 지인은 내게 사진을 보냈고, 문을 열었다고만 했다. 문을 열기 전에 행거가 넘어져 난장판이 됐다면 도둑이 들었을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했다. 밤새 가게 내부에 무슨 일이 있었다면 닫힌 문틈으로 바람이 불어 행거가 쓰러졌다고 보기보다 도둑질을 의심하는 게 상식에 가까운 판단일 것이다. 앞뒤 문을 다 연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요즘 돌풍이 많이 불었기에 그 영향으로 보면 얼추 이해될 상황이었다. 물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런 경우란 그동안 한 번도 없었다. 도둑이 든 게 아니라면 다친 데 없는지 걱정스럽게 물으면 될 일이었다. 행거가 넘어진 사실보다는 혹 그 때문에 지인이 다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하므로.



지인이 건넨 정보만으로는 상황이 이해가 안 돼 어떤 경우냐 물은 게 지인의 화를 돋울 정도의 잘못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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