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번아웃이 말뜻 그대로 일 때문에 왔다면 2차 번아웃은 관계에서 비롯 충격은 두 번째가 사뭇 세서 견디기 쉽지 않아
마음에 맞는 사람이 고위직에 올랐다. 한 번쯤은 같이 근무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그와 나는 상사와 참모로 만났다. 워낙 의욕이 대단한 분이라 나로서도 내심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상사와 호흡을 맞춰 여러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사안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의례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성취감이라는 공통분모가 서로를 견고하게 잡아주었다. 예기치 못한 외생 변수로 진로가 막히면서 프로젝트가 잠정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전은 물론 그 후로도 상사와 나는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를 너끈히 수행하며 결속을 다졌다.
함께 일한 지 반년이 넘은 어느 날. 느낌이 이상했다. 사무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뒤늦게야 상사가 이해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한 사실을 알았다. 여러 날 전 문서를 뒤적이다 전례 없는 분장시무를 보게 되었다. 분장 사무 일부가 뒤바뀌어 있었다. 심상치 않았던 사무실 분위기가 이것 때문임을 직감한 나는 그 길로 상사에게 달려갔다. 경위를 물었다. 그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전말은 이랬다.
승진한 지 두어 달이 채 안 된 선임 직원 A가 더는 위로 올라갈 가망성이 없다는 푸념을 앞세워 상사에게 업무를 떼 달라고 했단다. A는 나보다 한 살이 많았다. 합당한 이유가 아니므로 관리자라면 질책부터 해야 옳다. 승진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건 마치 더는 일을 안 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마찬가지였다. 오죽 상사를 우습게 보았으면 얼굴색 안 변하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댈 수 있는지부터 난 의아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상사는 A의 요구를 군말 없이 들어주었다. 사실을 확인하고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하면 누군들 일하고 싶겠느냐.
이후로 직원들에게 무슨 영이 서겠냐.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일을 떼려고 나설 사람들이 생길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냐.
말을 심하게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참모라면 쓴소리를 마다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다른 참모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판에 나마저 나서지 않으면 사무실이 얼마나 우스운 꼴이 되겠느냐 싶었다. A는 사장 쪽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A는 전에도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그 부분을 동원한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충분히 예견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사라면 A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줘서는 안 되었다. 적어도 난 상사가 연고주의에 덜 휘둘릴 거로 보았다. 상사는 지연 때문에 피해를 본 장본인이었다. 내가 계속 다그치자 체념한 듯 상사가 말했다. 나도 말년이야. 편하게 살란다. 내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그 길로 난 그와 절연했다. 이외에도 상사와 얽힌 실망스러운 사건은 더 있었다. 그 사건 후 내겐 한참 회의가 왔다. 첫 번째 번아웃이었다.
손해는 없다. 사건이 없었다면 모르고 지났을 구석을 알게 되는 것, 그건 어쩌면 반면교사와 같은 소득일 수 있다. 점차 썩어가는 부위가 관찰되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감난 연장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결국 터져버릴 폭탄 같은 것일 테니까 말이다. 기왕이면 터지기 전에 발견하거나 위험수위로 치닫기 전에 해체하는 게 맞다. 교훈은 성취 뒤에 오는 것 못지않게 씁쓸하게 맞는 경우의 교훈이라도 나쁠 게 없다.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