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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Apr 09. 2021

공자는 ‘공자님 말씀’만 하지 않았다

17편 양화(陽貨) 제4장

   공자가 무성(武城)에 갔다가 사람들이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공자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전에 이 언(자유의 이름)이 스승님께 듣기로는 ‘군자가 도(예악)를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게 되고, 백성이 도(예악)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아까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割鷄焉用牛刀?” 

  자지무성 문현가지성    부자완이이소    왈   할계언용우도 

  子游對曰: “昔者偃也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자유대왈   석자언야문저부자왈      군자학도즉애인   소인학도즉이사야

  子曰: “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 戱之耳.”  

  자왈   이삼자   언지언시야   전언  희지이     



  무성(武城)은 노나라 동쪽의 작은 읍성입니다. 계손씨의 성도인 비읍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합니다. 공문십철의 한 명으로 훗날 남방공자로 불리게 되는 자유(언언)가 이 무성의 읍재(邑宰)를 맡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유는 공자보다 45세 어린 자에 해당하는 제자였기에 아마도 공자가 노나라로 귀국한 이후의 일로 보입니다.  

    

  공자가 그 무성을 방문했다가 백성들이 거문고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을 듣자 빙그레 웃었습니다(莞爾).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예악은 본디 궁중에서 쓰는 것인데 일반 백성들이 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을 들으니 흐뭇하기도 하고 제자 자유의 엉뚱함에 절로 웃음이 난 거였습니다.  

    

  자유는 공자로부터 특히 문학에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당시 문학은 곧 시문(詩文)을 뜻했고 시문은 곧 노래 가사였으니 예악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자유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예악을 일반 백성에게 가르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도록 한 것입니다. 

     

  얼핏 들으며 유별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 성가대나 아마추어 합창동호회, 브라스밴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떠올려 보면 크게 유별날 것도 없습니다. 자하는 무성의 백성들이 혼연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아악과 민요를 단체로 가르친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런 활동에 참여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공동으로 음악활동을 한다는 것이 소속감과 자신감을 한껏 배양시켜줍니다.   

   

  고대의 예약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자유는 그것을 보고 듣는 수준을 넘어 일반 백성이 거기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집단적 소속감과 자부심 그리고 서로를 배려하는 화목함을 끌어내려한 것입니다. 엘리트를 겨냥한 공자의 음악교육을 대중에게도 전파하려 한 것입니다.      


  공자는 자유의 이런 시도를 보고 내심 흡족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자를 슬쩍 놀리려고 닭 잡는 칼, 소 잡는 칼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그러자 자유가 정색을 하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반박한 것입니다. 도라고 표현됐지만 여기선 예악을 말합니다. 


  군자가 예악을 배우면 심성이 맑아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예악을 배우면 화합하는 법을 배우게 되니 일처리를 할 때 불만과 갈등이 적어지게 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은 결코 낯선 게 아닙니다.  퇴락한 영국 소도시의 브라스밴드가 가져온 변화를 그린 ‘브래스드 오프’나 여죄수들이 합창을 배우며 가져온 변화를 그린 한국영화 ‘하모니’ 그리고 내전에 시달리는 남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청소년 브라스밴드를 조직해 변화를 가져온 다큐 ‘울지 마 톤즈’에서도 여실히 확인됩니다. 

     

  자유가 “스승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데 그렇게 놀리실 겁니까?”라며 정색하고 받아치자 공자는 손사래를 치며 농담이라고 한 발을 뺍니다. 二三子란 주변에 복수의 제자가 있을 때 스승이 그들을 한꺼번에 부르는 호칭입니다. “얘들아 난 그냥 자유를 놀리려고 한 말인데 자유가 너무 정색하고 달려드는 것 같지 않니?”라는 말로 좌중과 함께 파안대소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옮기면 "예능을 왜 다큐로 받느냐?"쯤 될 것입니다. 공자가 결코 ‘공자님 말씀’만 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짓궂은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할 줄 아는 인간적 매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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