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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Apr 14. 2021

부인이란 호칭에 대하여

16편 계씨(季氏) 제14장

  제후(邦君)가 자신의 아내를 부를 때는 부인(夫人)이라 한다. 부인 스스로는 소동(小童)이라 자칭한다. 백성은 군부인(君夫人)이라 부르지만 다른 제후국 사람에게 말할 때는 과소군(寡小君)이라 칭한다. 다른 제후국 사람이 그를 부를 때도 군부인이라 한다.     

  

  邦君之妻, 君稱之曰夫人, 夫人自稱曰小童. 邦人稱之曰君夫人, 稱諸異邦曰寡小君.

  방군지처   군칭지왈부인   부인자칭왈소동    방인칭지왈군부인    칭저이방왈과소군

  異邦人稱之亦曰君夫人.

  이방인칭지역왈군부인     


  

  뜬금없는 호칭 타령이 등장하기에 당황스러운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주석서는 '논어' 편집 도중 남은 여백에 공자가 해놓은 메모를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어쩌면 그게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500년 간 읽혀온 고전에 기록된 내용을 별 의미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논어를 편집한 사람들이 그냥 여백을 메우기 위해 별 의미 없는 내용을 집어넣었을 리 만무합니다.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가 입적한 나이가 여든. 그가 득도한 서른다섯 이후 45년간 설교한 내용을 500여명의 제자들이 모여서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如是我聞)”면서 서로의 기억을 더듬어 펴낸 것이 팔만대장경입니다. 법문의 수만 8만4000여개로 전체 글자 수를 따지면 5000만 자가 넘습니다. 반면 73세를 산 공자의 가르침을 수록한 ‘논어’의 글자 수는 1만5919 자밖에 안 됩니다. 석가모니보다 7년을 덜 살았을 뿐인데 그 가르침을 기록한 양은 0.3%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여백을 채우려고 별 의미 없는 메모를 옮겨놨다는 해석은 우리를 서글프게 만듭니다.


  자, 그럼 도대체 공자의 제자들은 왜 저 구절을 ‘논어’에 편입시켰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왜 많은 여인네 호칭 중에 하필이면 제후의 아내에 대한 호칭만을 정리해뒀는가 부터 물어야합니다. 공자가 편집한 것으로 알려진 ‘예기(禮記)’에 따르면 왕(천자)의 아내는 후(后), 제후의 아내는 부인(夫人), 대부의 아내는 유인(孺人), 사(士)의 아내는 부인(婦人), 서민(庶民)의 아내는 처(妻)로 칭한다고 돼 있습니다. 5개 계급의 아내 호칭 중 유독 제후의 아내 것만을 따로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 단서를 제후(諸侯)에 대한 표기로서 방군(邦君)에서 찾아봅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방(邦)은 국(國)을 뜻했는데 한고조 유방의 이름을 기휘하기 위해 그 이후로는 국으로 대체된 한자입니다. 중국인의 세계관에 따르면 천자가 다스리는 영역을 천하라 칭하고 그 천하의 일부로서 제후가 다스리는 영역을 처음엔 방, 한대 이후론 국으로 칭한 것입니다. 따라서 제후를 뜻하는 방군은 곧 국군(國君)이기도 합니다.


    방군과 국군의 군(君)은 군자(君子)의 군(君)과 같습니다. 군자란 본디 제후의 아들을 의미했습니다. 제후는 천자의 아들 내지 공신에게 방이라 불린 봉지를 나눠 다스리게 한 것에서 출발합니다. 본디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이란 다섯 개의 작위로 서열화 돼 있었습니다. 춘추시대가 될 무렵 후의 지위를 지닌 이들이 많아지면서 ‘모든 후작’이란 뜻의 ‘제후(諸侯)’가 그들을 총칭하는 대표명사가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공후백자남을 대표하는 공(公) 또한 제후의 대표명사가 됐습니다.


  천자의 아들이 제후가 되듯 제후의 아들은 개별 방에서 공(公)과 경(卿), 대부(大夫)가 됩니다. 그러니 군자는 개별 방 또는 국을 다스리는 통치자그룹을 통칭하는 용어인 셈입니다. 물론 경과 대부 중에는 제후가 아끼는 공신도 있습니다. 그래서 후대엔 이들까지 포함한 대인(大人)의 개념과 군자가 등치화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군자는 혈통에 의해 결정됩니다.     


  공자는 그런 군자 개념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혈통이 아니라 학문을 갈고닦는 것만으로 군자가 될 수 있음을 설파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군자는 제후를 포함한 공경대부의 지위를 획득한 대인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절차탁마 중인 후보군을 통칭하는 용어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자의 배필을 뜻하는 용어는 뭐가 돼야 할까요? ‘시경’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관저(關雎‧물수리)’의 그 유명한 구절을 떠올리는 분이 계실 겁니다. ‘요조숙녀야말로 군자의 짝이다(窈窕淑女/ 君子之逑).’ 여기서 군자는 공경대부의 반열에 오른 대인 아니면 그 아들로서 그러한 반열에 오를 사내를 뜻합니다. 반면 요조숙녀는 ‘그윽하고 정숙하고 맑은 여성’을 뜻하는 일반적 표현에 불과합니다. 특정 그룹의 여성군을 지칭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소리입니다.


  사실 군자는 공경대부의 반열에 오를 사람을 뜻하니 그 배필이라 함은 부인(夫人) 또는 유인(孺人)의 반열에 오를 여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공자도 고민하다가 내심 부인(夫人)이란 호칭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요? 제자들 또한 이를 눈치챘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5개 계급의 여성배우자 호칭 중에 유독 부인에 대한 다양한 호칭만이 논어에 기재된 것 아닐까요?


  공자를 필두로 한 유가에선 예제를 중시했기에 자격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경칭을 붙여주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夫人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제후의 아내에게만 쓸 수 있는 용어였으니까요. 하지만 군자가 그러했듯이 언젠가 소동(小童‧‘작은 어린이’라는 뜻), 과소군(寡小君‧‘부족하고 작은 임금’이란 뜻), 군부인을 포함한 夫人에 대한 다양한 호칭 중 하나가 군자의 짝을 지칭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상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과 미련의 단초를 남겨두고자 ‘논어’에 이를 기록해둔 것은 아닐까요?


  공자학단의 이런 생각은 오늘날 현실이 됐습니다. 夫人은 본디 제후의 아내를 뜻했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종3품 이상 대부의 아내에 대한 존칭이 됐고, 오늘날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일반호칭이 됐습니다. 이런 현상이 유독 夫人에 대한 호칭만이 기록된 ‘논어’의 영향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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