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편 계씨(季氏) 제2장
공자가 말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온다. 천하에 도가 사라지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의 손에 이뤄진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10세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며, 대부로부터 나오면 5세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며. 가신이 국권을 쥐게 되면 3세 안에 잃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정치가 대부에 있지 않으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의 의견이 분분하지 않다.”
孔子曰: “天下有道, 則禮樂征伐自天子出, 天下無道, 則禮樂征伐自諸侯出.
공자왈 천하유도 즉예악정벌자천자출 천하무도 즉예악정벌자제후출
自諸侯出, 蓋十世希不失矣, 自大夫出, 五世希不失矣, 陪臣執國命, 三世希不失矣.
자제후출 개십세희불실의 자대부출 오세희불실의 배신집국명 삼세희불실의
天下有道, 則政不在大夫, 天下有道, 則庶人不議.“
천하유도 즉정불재대부 천하유도 즉서인불의
공자의 역사법칙이 등장하는 장입니다. 요순시대부터 하은주 3대의 역사를 공부한 공자가 추출해낸 ‘10, 5, 3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을 노나라에 적용한 것이 앞서 살펴본 계씨 편 3장의 내용을 이룹니다.
천하에 도가 있다 함은 천하가 이치에 맞게 돌아간다는 소리입니다. 이는 곧 천하의 이치를 아는 성인이 다스리는 세상이 됐다는 말이자 그로 인해 천하가 태평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상적 정치상황인 겁니다. 그럴 때 예약이란 문(文)과 정벌이란 무(武)는 왕(천자)으로부터 출원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다스리지 않고 천하가 분란에 빠진 무도한 상황이 되면 천자 아래에 있는 제후가 문무의 전권을 휘두르게 되는 상황이 옵니다. 근대 이전의 역사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입니다.
주나라가 확립한 봉건제는 왕-제후-대부-가신-사인-서인의 뚜렷한 계층 질서를 이룹니다. 왕은 천하를 다스리고, 제후는 그 천하를 이루는 여러 나라(邦) 중 하나를 다스리며 왕을 떠받들고, 대부는 그 나라의 일부인 식읍을 다스리며 제후를 섬기고, 가신은 식읍의 일부에서 나오는 소출권을 받고 대부를 모십니다. 사인은 그런 가신을 배출하는 하위 관료집단이며 서인은 일반 백성입니다.
천하가 무도해지면 제후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제후 아래 있는 대부가 제후국의 전권을 휘두르는 사태가 옵니다. 또 노나라 양호의 경우처럼 집정대부(상경) 아래 있는 가신(陪臣)이 하극상을 일으켜 그 나라의 전권을 장악할 때도 있습니다. 이 경우 제후는 10세, 대부는 5세, 가신은 3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이 공자의 관찰입니다.
그럼 그 수치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춘추시대 쇠약해진 주나라 왕실을 대신해 제후를 이끈 인물을 패자(覇者)라 불렀습니다. 춘추시대 그런 제후를 다섯 명 있다 하여 춘추오패라고 불렀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제환공(강소백)입니다. 관중과 포숙이란 명재상을 거느린 제후였죠. 하지만 제환공으로부터 10세인 제경공(강저구) 말기 제나라 권력이 대부인 전씨 가문에 넘어가기 시작하고 12세인 제간공(강임)이 재상 전항에 의해 시해됩니다. 공자는 죽기 2년 전에 이를 목도합니다. 그리고 다시 4세가 지난 제강공(강대) 때 제나라는 전씨의 나라가 됩니다.
또 다른 춘추오패인 진문공(희착)을 배출한 진(晉)나라 역시 진문공의 10세인 진경공(희누) 때 내란이 발생해 조씨, 한씨, 위씨 세 대부 가문의 손아귀에 굴러 떨어집니다. 이 역시 공자가 목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13세인 진유공(희류) 때 진나라는 공실이 무너지고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 3국으로 분열됩니다. 공자 사후의 일이지만 춘추오패로 꼽힌 오왕 부차의 오나라는 당대에 망했고, 월왕 구천의 월나라는 그가 죽은 뒤 급속하게 몰락했습니다.
이처럼 제후가 패자가 되고 10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은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반면 대부가 권신인 경우 5세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은 틀렸습니다. 노나라의 대부인 삼환은 10세 이상 250년간 권력을 휘둘렀고, 제나라의 전씨와 진나라의 조씨, 한씨, 위씨는 권세를 누리다 결국 스스로 제후나 왕이 돼 100년~180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집정대부의 가신이 국정을 장악하는 경우는 노나라의 양호의 사례가 대표적일 만큼 극히 드뭅니다. 따라서 3세까지 가는 경우도 더 찾기 어렵습니다.
봉건제는 주나라뿐 아니라 중세 서양 여러 나라와 메이지유신 전까지 일본 막부 체제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되는 서열 질서입니다.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진사황에 의해 확립된 제국주의는 이런 봉건주의의 중앙집권화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근대 이전 로마제국의 제국주의나 근대 이후 서양 제국주의 역시 내적으로는 황제(왕)의 권력을 더 강화하면서 외적으로는 새로 확보한 식민지에 자신들의 서열 질서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확장된 봉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봉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던 시기였습니다. 공자는 그런 새로운 질서와 문물을 모색한 사람들 중에 선두주자였습니다. 하지만 후대인들은 공자가 주나라의 봉건제의 부활을 꿈꾼 보수주의자라고만 생각합니다. 요순과 하은주 시대라는 고대의 역사를 익히고 주문왕 주무왕 주공이 설계한 예악을 배운 것도 바로 그러한 봉건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그래서 이 장에서도 정해진 계급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극상으로 비판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겁니다. 그렇다면 제후였음에도 왕에게 하극상을 일으킨 은탕왕과 주문왕‧무왕을 공자는 왜 그리 찬미했을까요? 또 성인이 출현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전설의 동물 기린이 노나라에서 발견됐을 때 왜 기뻐하지 않고 절망하며 붓을 꺾을까요? 봉건질서의 옹호자였다면 당시 노나라 제후인 노애공(희장)이 군주로서 자격이 없음을 왜 그렇게 비판했을까요?
공자는 '주나라 봉건제의 민주화'를 꿈꿨습니다. 공경대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군자(君子)의 자격이 혈통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학문을 닦고 덕을 쌓았나로 평가해야 함을 주창한 것입니다. 이는 은탕왕과 주무왕의 역성혁명 보다 더 도발적 혁명이었습니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어질고 현명한 다른 누가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급진성과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고대의 문물과 제도의 회복이라고 포장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장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학문과 덕을 쌓지도 않는 자격 없는 사람이 권모술수를 통해 국정을 농단할 경우 그러한 체제가 결코 오래갈 수 없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은탕왕과 주문왕‧무왕 역시 처음엔 제환공이나 진문공처럼 제후들의 회맹이 이뤄질 때 맹주 역할을 맡은 것은 같습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도광양회(韜光養晦)하다가 칼을 빼들고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이 혁명에 성공하고 10세가 아니라 40세, 50세 가는 왕조를 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높았던 데다 당대의 도전에 응전할 제도적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도(有道)와 무도(無道)를 가르는 기준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런 사유를 좀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볼까요? 천하무도는 공자가 기획한 군자학 프로그램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당대의 현실을 규정한 표현입니다. 반대로 천하유도는 혈통이 아니라 학문을 닦고 덕을 쌓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이상적 미래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틀을 갖고 '논어'를 다시 읽게 되면 공자가 얼마나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인물인지 또한 그것을 얼마나 노회하고 세련되게 감춰둔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때부터 '논어 읽기'는 '보물찾기' 게임처럼 다가설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 ‘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이 의논할 일이 없다’는 구절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백성이 의논해 국사를 정할 때 천하에 도가 바로 설 수 있다’라고 새기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합니다. 다만 공자가 2500년 전 사람이란 점을 감안해 이를 해석하는 것이 고전의 재해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에 도가 있으면 백성의 의견이 분분하지 않다’고 국론이 분열되지 않은 상황으로 풀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