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대하는 태도

15편 위령공(衛靈公) 제42장

by 펭소아

음악 선생인 면(冕)이 공자를 만나러 왔다. 계단 앞에 이르자 공자가 “계단입니다” 했다. 좌석 앞에 이르자 공자가 “좌석입니다” 했다. 모두가 각자의 좌석에 앉자 공자는 “아무개는 여기에 앉았고, 아무개는 여기에 앉았습니다”라고 소개해줬다.

음악 선생 면이 떠나자 자장이 물었다. “음악 선생과 말하는 도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다. 본디 음악 선생을 모시는 도이니라.”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某在斯”

사면현 급계 자왈 계야 급석 자왈 석야 개좌 자고지왈 모재사모재사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사면출 자장문왈 여사언지도여

子曰: “然, 固相師之道也.”

자왈 연 고상사지도야



여기서 사(師)는 악사(樂師)를 뜻합니다. 악기를 다루는 악사(樂士)가 아닙니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악장(樂長)이자 그들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입니다. 궁중 악대의 최고 악사장은 대사(大師) 또는 태사(太師)라고 불렀습니다. 춘추전국시대 樂師는 보통 시각장애인이 맡았다고 합니다. 귀가 예민해 음악에 더 조예가 깊다 여겨 어린 시절부터 악기 다루는 법을 가르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예악을 좋아했던 공자는 제나라에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석 달간 고기 맛을 잊었다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음악 애호자 수준이 아니라 거문고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했습니다. 그래서 악사(樂師)들에게 직접 배움을 청할 때도 많았습니다.


공자가 거문고를 배운 일화를 일컫는 고사성어 학금사양(學琴師襄)에서 공자에게 거문고를 가르친 사양자(師襄子) 역시 양(襄)이란 이름을 지닌 악사였습니다. 노나라 궁중 최고 악사장 지(摯)는 ‘논어’에 두 차례나 그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가 시경에 수록된 첫 노래인 ‘관저(關雎)’를 연주할 때 그 마지막 구절이 잊히지 않는다 할 정도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들 모두가 시각장애인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본문에는 시각장애인을 뜻하는 맹(盲)이나 고(瞽) 같은 표현 하나 없이 ‘상사지도(相師之道)’로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장애인은 그 위상이 무척 낮았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나이가 맞아도 악사를 하대하는 문화가 있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공자는 그들을 배려해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상세히 알려줍니다. 현대인들이 레이 찰스나 스티브 원더를 만났을 때에 필적할 정도로 공손하고 친절합니다. 어린 제자 자장의 눈에는 이것이 낯설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원래 음악 선생에겐 다 그렇게 하는 게 맞느냐고 묻습니다. 거기엔 살짝 경탄의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이를 눈치챈 공자는 시크하게 답합니다. “그럼, 예전부터 다 그렇게 하라고 한 걸 내가 실천했을 뿐이다.” 과연 그랬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예는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의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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