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구르는 돌

15편 위령공(衛靈公) 제40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길이 다르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자왈 도부동 불상위모



여기서 도는 도덕 할 때 그 도가 아니라 그냥 길입니다. 걸어가야 할 인행 향로를 뜻합니다. 그 길이 다른 사람과는 굳이 뭔가를 도모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로 너무 당연한 듯도 싶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반박하고 싶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법조인과 의료인이 걷는 길이 다르다고 좋은 의료법안을 만들기 위해 협력하면 안 되는 걸까요? 2차 세계대전 기간 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미국과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소련은 걷는 길이 다르니까 나치 독일에 공동 대항하는 길을 도모하면 안 되는 거였나요? 대공황 이후 스웨덴 노동자당(SAP)이 자본축적의 길을 가려는 기업가, 임금착취를 줄이려는 노동자, 농산물 가격 하락을 막으려는 농민을 모아서 오늘날 사회복지제도의 원형인 조합주의 모델을 도모하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맥락을 떼놓고 공자의 발언만 놓고 보면 이렇게 허점과 모순이 드러납니다. 공자가 이 말을 할 때가 어떤 때였을지 상상을 해보면 의문이 풀립니다. 아마도 양호가 공자에게 공직 진출을 제안했을 때이거나 이 편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위령공이 공자에게 군사 책략을 물으며 넌지시 기용의 뜻을 암시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부 제자들은 좋은 기회인데 왜 그걸 박차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양호의 경우에는 노나라의 고질병인 삼환 정치를 종식시키는 목표는 공자와 같았으나 양호는 삼환 대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공자가 양호를 따른다면 제2의 삼환정치의 길을 열어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양호는 재승박덕한 인물이라 인재를 품을 줄 몰랐기에 그 권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공자가 간파했기에 ‘도부동 불상위모’에 맞아떨어집니다.


위령공의 경우엔 당시 위나라가 북방의 강대국인 진(晉)나라의 침략에 시달리게 되자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공자를 불러다 갑자기 진법에 대해 묻습니다. 공자는 그 순간 “저는 예법에 대해선 좀 알지만 진법에 대해선 모른다”며 바로 다음날 짐을 싸서 위나라를 떠났습니다. 공자는 위령공이 공자의 정치적 포부인 예악의 정치를 실시하려는 뜻은 없고 위기탈출용 카드로서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것임을 눈치챘을 것입니다. 게다가 위령공의 부인 남자는 공자까지 유혹한 스캔들메이커여서 심지어 수제자인 자로로부터도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대로 위나라에 있다가는 망신만 사고 버려지고 말 것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문덕(文德)의 정치를 펴려는 자신과 부국강병만 추구하는 위령공은 길이 다르다며 ‘도부동 불상위모’라는 말을 남기고 떠날 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든 공자의 말은 그 상황에 맞춰서 이해할 때 빛을 발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조선시대 당파싸움에 골몰했던 조선시대 사대부처럼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지켜야 할 보편원칙으로 받아들이면 한없이 갑갑해집니다. 길은 걷다 보면 하나로 합쳐질 때도 있고 나눠질 때도 있습니다. 길은 비틀스의 노래 제목 ‘The Long and Winding Road'처럼 길게 굽이치기도 하고 또 다른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이름처럼 이끼가 낄 새 없을 정도로 '굴러다니는 돌‘로 가득합니다. 그러니 한줄기 외길만 떠올리고 ’도부동 물상위모‘를 남발해선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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