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39장
공자가 말했다. “가르침에 있어선 차별이 없다.”
子曰: “有敎無類.”
자왈 유교무류
공자의 위대함을 꼽을 때 첫손가락으로 꼽는 것이 바로 이 구절 때문입니다. 중화권에서 스승의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공자 생일인 9월 28일로 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만세사표(萬世師表)’입니다. 수만 년이 지나도 스승의 표본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말라는 발언이 왜 그토록 중요한 걸까요?
공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중국에선 교육은 특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왕족과 귀자, 부자들만이 가정교사를 사서 자녀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위 관료를 맡은 사(士) 계급 자녀를 위해 기초적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 정도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육예(六藝)라 하여 선비가 되기 위한 교양과목을 골고루 체계적으로 가르친 인물은 공자가 처음일 거라는 겁니다.
사실 공자보다 앞서서 사립학교를 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공자가 ‘말린 육포 한 묶음(속수·束脩)’의 수업료만 내면 빈부귀천의 차이 없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줬다는 것에 있습니다. 누구든 배우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제자로 받아뒀다는 게 진짜 위대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20세기나 돼서야 이뤄지기 시작한 보편교육을 비록 개인 차원이긴 하지만 공자는 기원전 6세기에 이미 설파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교무류야말로 공자가 천명한 ‘군자학’과 공명합니다. 되풀이하지만 군자(君子)란 곧 임금의 자식을 뜻하니 고대 중국에서 공경대부의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공자는 학문을 닦고 덕을 쌓으면 누구라도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임금의 자손이란 이유만으로 노나라를 자기들 맘대로 주무르는 삼환을 미워했고, 왕과 제후라도 그에 걸맞은 덕을 갖추지 못했다 생각하면 비판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계층에게 군자의 길을 가르쳤다는 것은 훗날 진시황 사후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에서 터져 나온 ‘왕후장상의 씨앗이 어찌 따로 있으리오(王侯將相寧有種乎)?'의 씨앗을 뿌린 것이나 진배없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교육혁명이라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