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38장
공자가 말했다. “공직에 임할 때는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고 보수는 그 다음이다.”
子曰: “事君敬其事而後其食.”
자왈 사군경기사이후기식
사군(事君)은 임금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왕조시대의 표현이죠. 오늘날에는 마땅히 공직을 맡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임금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것이지요. ‘국민을 섬길 때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되 돈에 너무 연연하지 마라’는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너무 이상주의적 주장 같기도 합니다.
이 발언의 의미를 되새기리면 한번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과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차이입니다. 멸사봉공은 사적인 것은 깨끗이 포기하고 오로지 공적인 일에란 혼신을 다하란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지만 불가능한 말입니다. 전쟁 중이라던가 재난상황이 발생한 짧은 기간 동안이면 몰라도 먹고사는 문제, 가족을 건사하는 문제를 모두 포기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공선사후는 공공의 것을 앞세우고 사적인 것은 뒤로 돌리라는 뜻입니다. 공익을 사익보다 우선시하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먹고사는 문제나 가족을 건사하는 문제까지 도외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에서 공자의 발언은 멸사봉공이 아니라 공선산후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스갯말로 하면 전자는 공직을 맡으면 공짜로 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후불로라도 대접받는 걸 챙기라는 소리입니다.
중국의 한대(漢代) 이후 공자의 가르침에서 출발한 유교가 충효의 이데올로기로 변질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사군이라고 말하면 임금을 위해 목숨도 초개처럼 버릴 자세로 멸사봉공하는 충신을 떠올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공자는 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먼 인물입니다. 평생을 살면서 동시대 왕이나 제후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습니다. 쉰 살이 넘어 공직에 나섰을 때도 노정공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를 지켜주긴 했지만 대부로서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자 사표를 던지고 바로 짐 싸서 노나라를 떠난 사람이 바로 공자입니다.
공자보다 대략 200년 뒤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조온 폴리티콘(zoon politikon)'은 폴리스적인 동물이란 말입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도시국가인 폴리스를 운영하며 정치적 동물로 거듭날 때 최상의 행복을 맛본다는 취지의 표현입니다. 공자의 생각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공동체 운영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걸 목표로 삼은 인간을 군자(君子)로 호명한 것입니다.
고대의 사상가들에게 정치에 참여하고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그만큼 보람차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 대가로 주어지는 녹봉 같은 보수는 액수가 많고 적음은 그 다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공선사후의 공직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나라님이 나를 불러주셨으니 분골쇄신 충성을 다해야한다 의무론으로 똘똘 뭉친 멸사봉공의 공직관과 등치화해선 안됩니다. 공자는 그런 중세적 사유에 물들지 않은 자율적 인간이었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