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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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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소아 Nov 29. 2020

진인과 시인의 논쟁을 보며

2020년 9월 6일

진인 조은산의 '시무 7조' 상소문과 원태주 시인의 '시무 7조에 답한다'는 하교문을 읽으면서 우민은 엷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논쟁 자체가 국민에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대문이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다. 정치적 의견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이 상소문 형식과 그에 대한 하교문 형식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사람들은 주로 그 내용을 보고 우열을 논한다. 우민은 생각이 다르다. 형식에 더 주목하자고 말하고 싶다. 풍자를 위해 택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21세기 현대 민주주주의 국가에서 왕조시대의 유물인 상소문과 하교문을 끌고 온 점 말이다.

때로는 의식보다 무의식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 두 사람은 우리 시대의 최고 권력자로서 대통령=왕이라는 무의식을 공유한다.  이는 대다수 국민에게도 적용된다. 그들은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 맞잖아?'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태 때 많이 불린 '헌법 1조'라는 노래에도 나오는 듯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고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사람들은 그 뜻을 다 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저기서 등장하는 주권이라는 의미를 정확히 알까? 국민이면 누구나 나눠 가지는 상징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주권은 한 나라를 통치하고 그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쥔 최고의 권력이다. 왕조시대 왕이 쥐고 누렸던 권력이 바로 주권이다.

그 말은 곧 국민이 왕이란 소리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도지사든, 장차관이든 참모총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이든 다 그 아래에 있다는 말이다. 요즘 최고 인기 직업군이라는 공무원은 몰론 한국에서 제일 돈 많이 벌고 뻐기는 삼성그룹 오너와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BTS에게도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중 대다수는 놀랍게도 이를 망각하거나 모르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산다. 그래야 먹고 살기 편하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이 쓴 '왕자와 거지'에서 기지로 살아가는 왕자의 처지를 떠올린다면 그 어색함과 불편함이 이해될까? 차라리 거지로 살아가야 한다면 왕자라는 걸 깡그리 잊고 사는 게 속 편하니까.

그래서 자꾸 역사의 시곗바늘을 100년 전 왕조시대로 돌려놓고 산다.  대통령은 나라님이고 도지사나 장차관은 물론 일반 공무원도 나랏일 하시는 높은 분으로 떠받들고 살아야 내 일상이 안온과 평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 개개인이 왕 노릇을 할 순 없다. 그래서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가 있고 대통령, 시도지사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상 차원에선 그 대의기관의 결정과 지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담론의 차원에선 다르다. 국민 개개인이 최고 권력의 담지자라는 의식을 갖고 그것이 국민의 일반의지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면 대통령,  국회의원 , 시도지사에게 당당하게 이를 요구해야 한다.

정치담론의 장에 뛰어든 사람 중에 과연 얼마나 그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저 자신이 익숙한 왕조시대의 표현을 빌려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에게 삼가 고언을 올리거나 읍소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만일 주권의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시인의 하교문 형식으로 진인의 상소문에 담긴 내용을 펼쳤어야하지 않을까?

진인과 시인의 논쟁이 드러낸 무의식적 진실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 우민의 생각이다. 한때 촛불을 들고 이 정권의 출범을 열심히 지지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에 실망한 진인이건 여전히 이니가 옳고고 바른 당신이라고 믿은 시인이건 그들은 왕조시대적 자장 아래 살고 있다. 소위 태극기 시위라는 것을 벌이는 사람들과 그걸 지지하는 왕당파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우민은 한국사회의 이념의 잣대로서 자유와 평등 말고 또 다른 기준으로서 영웅주의와 공화주의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은 18세기 프랑스혁명 이후 탄생한 경제 결정론적 사고의 사물이다. 반면 고대부터 면면히 내려오는 정치 결정론적 사고가 바로 영웅주의냐 공화주의냐는 기준이다.

영웅파는 왕후장상의 씨앗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로마제국에 황제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던 불세출의 영웅 카이사르를 지지하고 그를 암살한 브루투스를 찌질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대통령을 비판할 때 자질과 그릇이 어쩠다 저쩠다고 비판하는 걸 선호한다.

공화파는 대통령이란 자리는 그렇게 잘나지 않아도 일반 국민들 중에서 큰 흠결이 없고 책임감과 리더십 있으면 누구나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를 지지한다. 또 대통령을 비판할 때 그 의사결정과 정책의 결과물을 놓고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현실만 놓고 보면 영웅파보다는 공화파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을 순 있다.  대부분 자가당착이라는 게 우민의 생각이다.  오디션 선발 시스템이나 그로 인해 형성된 팬클럽 문화는 영웅주의의 산물이다.  공화주의자라면 그 오디션 시스템의 1차 관문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영웅주의자들은 그중에서도 비범하고 탁월한 단 한 명을 선호한다.

자, 당신은 어느 쪽인가? 아, 우민 자신은 자유파이자 공화파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별호입니다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그래서 반대로 그저 ' 하나의 백성(又民)'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 많다는 생각에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치중하려고 합니다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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