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6일
우민은 어린 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복싱 중계를 열심히 봤다. 홍수환과 장정구, 유명우 같은 한국 선수들 경기는 물론 무함마드 알리와 슈거레이 레너드, 마빈 헤글러, 토머스 헌즈, 로베르토 두란를 거쳐 마이크 타이슨까지 웬만한 복싱 중계는 다 지켜봤다.
그중 우민이 최고의 복싱선수로 꼽는 이가 바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다. 역대 복싱 전문가들이 최고로 뽑는 살바도르 산체스(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의 경기는 국내에 중계된 적이 없어 우민은 보지 못했으니 논외로 하겠다. 산체스와 같은 멕시코 출신인 차베스는 복싱의 3박자로 불리는 펀치력, 테크닉, 맷집을 모두 갖췄기에 '신이 빚은 복서'라는 황홀한 닉네임으로 불렸다.
우민 기억에 차베스는 40전까지 한 번도 패배가 없었고 그중 37번인가의 케이오승을 거뒀다. 엄청난 펀치력과 테크니션을 갖추지 않고는 불가능한 기록이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맷집이었다. 차베스는 우민이 본 권투선수 중에서 가장 맷집이 좋았다. 웬만한 주먹에는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훗날 차베스도 패배를 기록하긴 했으나 케이오패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차베스의 그런 맷집을 떠올리게 하는 복서가 있다. 프로선수도 아니고 아마 선수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다. 바로 윤석열이다. 윤석열이 정의로운지 공정한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사실은 맷집과 뚝심으로 지금까지 패배를 모르고 링 위에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추미애와 윤석열이 몇 번 싸워 몇 번 이겼다에 관심을 기울인다. 틀렸다. 추미애는 그가 링위에 눕혀버린 여러 도전자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박근혜의 소나기 펀치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버텨서 승리를 쟁취한데 이어 조국과 추미애를 하나하나 쓰러뜨리고 결국 문재인 앞에까지 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차베스처럼 무슨 '원펀치 쓰리강냉이'의 돌주먹을 지닌 건 아니다. 대단한 테크니션도 아니다. '법대로, 원칙대로'를 주장하면서 상대의 펀치를 무력화시키는 맷집과 상대의 현란한 발놀림을 무력화시키게 가끔씩 복부를 가격하는 펀치가 전부지만 그럴 상대했던 이들이 결국 다 스스로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가 먼저 도전장을 내민 것도 아니다. 대통령 아니면 대선 후보로 분류되는 거물 정치인들이 먼저 의무방어전 도전자로 그를 지목해서 벌어진 시합이었다. 관중은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잘생기고 호감가게 생긴 그의 상대를 주로 응원했다. 맷집만 믿고 잔뜩 웅크린 채 버티면서 가끔씩 한두 번 휘두르는 펀치가 다인 그의 복싱이 너무 재미없어서다.
하지만 윤석열에겐 맷집 말고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기본기에 충실한 교과서적인 복싱을 한다는 점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는 상대의 주먹을 오픈 블로우로 날려버리는 대신 가끔씩 뻗는 자신의 펀치는 확실한 타격을 가할 줄 알았다.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 상대는 지치고 발이 풀린 반면 윤석열은 돌부처처럼 끄덕 이 없었다.
그래서 어느새 윤석열은 아마추어임에도 프로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자 중의 강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돈과 인기를 먹고사는 프로의 세계는 비정하고 냉혹하다. 정직하게 주먹으로만 승부하는 정공법으로 대응할 것이란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지금 우민이 생각한 것처럼 그의 복싱 스타일을 그들도 철저하게 연구하고 대처법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윤석열 같은 복싱 스타일을 무력화시킬 방법은 지연전을 펼치는 철저한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와 무승부만 기록해도 전승의 기록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서 힘과 명성에 금이 가도록 해놓곤 그만큼 맷집 좋은 젊은 선수를 올려보네 번갈아 상대케 하면서 명성에 금이 가게 하면 된다. 훨씬 더 야비한 방법도 있다. 산체스의 교통사고에 대한 오래된 의문 제기처럼 링 밖에서 사고를 위장한 테러를 가하는 것도 불사할 수 있다.
윤석열이 정의로운 검사인가에 대해 우민은 판단을 유보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살아있는 권력을 치기 위해서라도 과거 권력의 잘못에 대해서도 똑같이 매서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특수통 출신의 정통 검사라는 자부심 때문인지 윤석열에겐 그런 정무감각이 부족하다. 그래서 편향성 논란을 차조한 측면이 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것을 알까?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자신이 신만큼 정의롭고 지혜롭다는 오만함(휴브리스)으로 인해 무너진다. 지금 그 휴브리스로 인해 무너질 위기에 처한 사람은 바로 윤석열이다. 역사에 정의로운 검사로 기억되고 싶다면 야권 비리 수사에도 거침없이 칼을 휘둘러야 한다. 반대로 검찰총장을 그만두고 프로 정치인이 될 생각이 있다면 차라리 여당의 흉수에 내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못 먹어도 고!"를 외쳐야 한다. 그 양갈래 길 중 어떤 결정이 휴브리스에 가까운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까?
#우민은 제멋대로 지어 본 제 별호입니다. 제 본명이 한자로 '현명한 재상'이란 거창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그저 '또 하나의 백성(又民)'일 뿐이며 '어리석은 백성(愚民)'이자 '근심하는 백성(憂民)'에 불과하다는 뜻을 담아 지어 봤습니다. '우민일기'는 제 글이 전지적 작가 시점에 가까운 '맨스플레인'이 많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3인칭으로 객관화하려는 글쓰기 시도입니다. 제가 결론을 끌어내기보다는 여러분의 참여를 끌어내는 질문을 던지는데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 많은 응답과 질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