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36장
공자가 말했다. “어짊을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을 맞으면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
子曰: “當仁, 不讓於師.”
자왈 당인 불양어사
공자의 증손 제자뻘인 맹자는 공자의 군자학을 도덕심리학으로 전환시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단(四端)설인데 군자학에서 강조되는 여러 덕목 중에서 인의예지(仁義禮智) 4가지 덕목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본성이라면서 이를 지키고 함양시키는 것이 수양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나라 때 유교를 국가이념화한 동중서는 오행설(五行說)을 토대로 여기에 믿을 신(信)을 더해 기본 덕목을 다섯으로 확대한 오상(五常)을 주장하게 됩니다.
사단설에 따르면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 또는 불인지심(不忍之心)으로 풀이됩니다. 측은지심은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요, 불인지심은 타인을 고통을 차마 모른 척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풀이되니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그릇됨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예는 사양지심(辭讓之心) 또는 공경지심(恭敬之心)으로 설명됩니다. 사양하고 양보하는 마음이요, 다른 사람을 받들고 모시는 마음입니다. 지는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풀이되니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입니다.
처음 사단설을 접하면 사단은 동등하며 그 작용하는 범주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반면 공자가 이 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런 인과 예가 충돌할 경우 인을 우위에 둬야 합니다. 스승에게 웬만한 것은 다 양보하고 사양해야 하지만 결코 양보해선 안 될 것이 있으니 바로 인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맹자는 논어의 이 구절을 간과한 것일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맹자’ 이루(離婁) 장 상(上) 27장을 읽어보면 인과 의가 바탕이 되고 예와 지가 그 토대 위에서 발휘된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인의가 예지보다 우위에 있음을 맹자도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과 의가 충돌할 때는 어떡해야 할까요? 공자와 맹자 모두 인을 우위에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이 사랑이라면 의는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맹자에 따르면 인은 부자관계의 사랑으로 대표된다면 의는 군신관계의 의리로 대표됩니다.
이와 관련해 ‘논어’ 13편 ‘자로’ 18장에는 양을 훔친 아버지를 신고한 아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공자가 자식이라면 아버지를 위해 이를 숨겨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랑이 정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입니다. ‘맹자’ 진심(盡心) 장 상(上) 35편에도 만약 순임금의 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르면 순임금은 천자의 자리를 버리고 아버지를 업고 도망가 바닷가에서 숨어 살았을 것이란 맹자의 말이 나옵니다. 역시 부자관계의 사랑으로서 인이 군신관계의 의리에 앞선다고 밝힌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유교는 서구의 기독교와 이 지점에서 뚜렷이 갈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인간 대 인간의 사랑뿐 아니라 신과 인간의 사랑을 포괄합니다. 그중에서도 신의 사랑이 인간의 사랑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자신의 어린 아들 이삭을 하나님의 재물로 바치려 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순임금은 하느님의 아들이란 의미의 천자(天子) 자리를 버리고서라도 부자간의 정을 지킬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아브라함은 부자간의 정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고자 합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신과 같은 절대자의 자리를 천륜(天倫)이라는 윤리 개념이 대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자의 인은 그런 개인적 윤리 수준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공동체 운영의 기본원리이기도 했습니다. 맹자는 그런 복합적 이념으로서 인을 개별 인간의 심리와 윤리로 고착시키는 우를 저질렀습니다. 그와 함께 공자와 그가 구상한 군자 역시 공동체를 이끌고 운영하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역할은 망실되고 사람들의 일상에 도덕 잣대를 들이대는 ‘도덕군자(꽁생원)’로만 왜소화 되고 만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맹자의 분석적 도덕군자상이 아니라 공자의 웅혼한 군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