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불 안 가리고 좋은 거

15편 위령공(衛靈公) 제3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백성이 어짊을 필요로 하는 것이 물과 불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심하다. 나는 물이나 불에 뛰어들었다가 죽는 사람은 봤어도 어짊에 뛰어들었다고 죽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子曰: “民之於仁也, 甚於水火. 水火, 吾見蹈而死者矣, 未見蹈仁而死者也.”

자왈 민지어인야 심어수화 수화 오견도이사자의 미견도인이사자야



이 구절은 해석이 엇갈립니다. 도인(蹈仁)이란 구절 때문입니다. 이를 ‘어짊을 실천하다’로 해석할 경우 ‘그러다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발언이 같은 위령공 편 8장에 등장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과 상충하기 때문입니다. 어짊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 공자가 어짊을 실천하다 죽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뭔가 어색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 위나라 때 경전해석의 신동인 왕필이나 다산 정약용은 첫 구절에 멀리할 원(遠)이 빠졌다고 주장합니다. ‘민지원어인(民之遠於仁)’이서 “백성이 어짊을 멀리함이 물과 불을 멀리하는 것보다 심하다"라고 새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뒷구절은 “백성이 물과 불에 뛰어들어 죽는 경우는 봤어도 어짊을 실천하다가 죽는 경우는 못 봤다”가 됩니다. 살신성인을 실천하다 죽은 백성이 드문 이유가 평소 어짊을 멀리하기 때문이라고 완성되는 겁니다.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만 거기엔 두 가지 아쉬움이 발생합니다. 첫째는 원문에 없는 내용을 가필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럴 경우 어짊이란 덕목이 일반 백성의 삶과 유리되어 버립니다. 백성이 어짊을 싫어하거나 위험하다고 경계한다 하여 살신성인을 애써 실천하는 군자보다 한참 부족한 존재로 격하되어 버립니다.

그 두 가지 아쉬움은 도인(蹈仁)을 ‘어짊을 밟고 산다’ 내지 ‘어짊 속에 뛰어들다’로 해석하면 해소됩니다. 여기서 어짊은 개인적 윤리 차원이 아니라 ‘어진 정치(仁政)’를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정치적 동물인 인간이 살아가는데 물과 불뿐만 아니라 좋은 공동체도 필수적입니다. 물과 불은 백성의 삶에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넘치게 되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반면 어진 정치는 그것이 아무리 넘쳐도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없습니다. 어진 정치는 넘치면 오히려 그 존재가 지워지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공자가 성인의 대명사로 찬미한 요임금이 즉위 50년이 됐을 때 평민 차림으로 민정시찰을 나섰습니다. 번화한 사거리에서 아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만백성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立我烝民), 그대의 지극함 아닌 것이 없다(莫匪爾極),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不識不知), 임금의 법에 따르고 있다(順帝之則).” ‘편안한 사거리의 춤과 노래’라 하여 ‘강구가무(康衢歌舞)’라고 합니다.


또 들길로 발길을 옮기자 한 손으로는 배부른 배를 두들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치며 노래하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해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해 지면 쉬고(日入而息),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밭을 갈아먹으니(耕田而食),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帝力于我何有哉).” 땅을 두드리며 노래한다 하여 이 노래를 ‘격양가(擊壤歌)’라 합니다. 이로부터 태평성대를 뜻하는 표현으로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함포고복(含飽鼓腹)'과 '고복격양(鼓腹擊壤)'이 나란히 쓰이게 됐습니다. 이처럼 백성이 임금의 존재 그 자체를 잊게 만드는 것이 어진 정치의 진면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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