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냐 밥이냐?

15편 위령공(衛靈公) 제32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도(道)를 도모하지 밥을 도모하지 않는다. 논밭을 갈아도 그 가운데 굶주리는 수가 있고, 학문을 닦아도 그 가운데 봉록을 받는 수가 있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子曰: “君子謀道不謀食, 耕也, 餒在其中矣, 學也, 祿在其中矣, 君子憂道不憂貧.”

자왈 군자모도불모식 경야 뇌재기중의 학야 녹재기중의 군자우도불우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청춘이 고민한 문제입니다. 이뤄진다는 기약 없이 꿈을 좇을 것인가,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할 것인가. 2500년 전 공자는 이미 그 해답을 줬습니다. 군자라면 마땅히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꿈을 좇아야 한다고. 그런데 왜 대부분의 부모는 그 반대되는 말만 할까요?


유학의 원조인 공자가 쓴 ‘논어’는 까맣게 잊고 공자의 말석 제자인 자여(증자)가 집필한 ‘효경’의 내용만 기억하는 탓 아닐까요? 효경 1장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구절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다음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앞 구절은 ‘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헐거나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뒤 구절은 ‘세상에 떳떳한 한 자리를 차지하고 훗날까지 이름을 떨쳐 부모를 드러냄이 효도의 끝“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은 뒤 구절을 다 기억은 못해도 ‘입신양명(立身揚名)’ 4글자만큼은 뇌에 각인된 듯합니다. ‘그래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이름을 날려야지’라고. 여기에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뭔가를 꿈꾼다는 것이 사치가 되고 생존 그 자체가 목표가 된 야만의 시대를 살다가 다시 각자도생의 자본주의로 진입한 한국의 근현대사 체험도 단단히 한몫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자님 말씀이고 뭐고 간에 잘 먹고 잘 사는 게 장땡’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 결과 아닐까 싶습니다.


맞습니다. 공자가 아니라 공자님이 존경해 마지않는 성인도 굶주림 앞에선 도나 꿈을 말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공자도 먼저 백성의 굶주림을 해결한 뒤에 비로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문제는 절대빈곤의 상황이 해결된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꿈이나 도에 대해 인색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무슨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듯합니다.


공자는 이를 명쾌하게 설파합니다. ‘논밭을 갈아도 그 가운데 굶주리는 수가 있고, 학문을 닦아도 그 가운데 봉록을 받는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원문의 뇌(餒)는 많이 쓰지 않는 한자로 '굶주릴 뇌'입니다. 현대적 언어로 바꿔 말하면 ‘돈을 좇는 삶을 살아도 빚더미에 앉을 수가 있고, 꿈을 좇는 삶을 살아도 돈더미에 앉을 수가 있다’입니다. 그렇다면 한번밖에 못 사는 삶 무엇을 택해야 할까요?


공자의 이런 가르침은 말콤 맥도뤨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의 소비행태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책에서 소개돼 유명해진 ‘1만 시간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든 어떤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입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잘못 아시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어떤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입하면 성공은 못하더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하고 산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을 좇아 오랜 시간을 투입하면 그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종국에 가서 크게 성공하지도 크게 유명해지지도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데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비록 꿈을 성취하진 못했더라도 최소한 시도를 해봤고 그 덕에 먹고사는 운제까지 해결했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군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자가 꿈꾸는 것은 도를 깨치고 왕이나 제후에 기용돼 어진 정치를 펴는 것입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 학문에 전념하다 보면 부유한 삶과 거리가 먼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정계에 입문해 고위직에 올라 자신이 뜻하는 정치를 펼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극소수에게만 허용됩니다. 후자의 경우는 공자 자신도 칠십 평생 추구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공자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재능도 없었던 농사짓는 법이나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웠어야 할까요?


“결단코 그렇지 않다”라고 공자의 삶이 웅변합니다. 비록 현실에서 처절히 실패했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은 되지 못했지만 춘추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최초의 황제 자리에 오른 진시황보다도 훨씬 더 추앙받으며 ‘만세의 사표’로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은 노력 여부보다는 운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표현입니다. 이를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선 안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하지만 진짜 의미 있는 삶은 그 가능성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걸 관철시키기 위해 필생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앗이 되어 훗날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삶. 바로 공자가 열어젖힌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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