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국평천하를 위한 4가지 자격

15편 위령공(衛靈公) 제33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지혜가 그 지위에 미치더라도 어짊으로 지키지 못하면 비록 손에 넣더라도 반드시 잃게 된다. 지혜가 그 지위에 미치고 어짊으로 지켜도 정중하게 그 자리에 임하지 않으면 백성이 존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그 지위에 미치고 어짊으로 지키고 정중하게 임했다 하더라도 예로써 백성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직은 좋다고 할 수 없다.”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자왈 지급지 인불능수지 수득지 필실지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지급지 인능수지 부장이리지 즉민불경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지급지 인능수지 장이리지 동지불이례 미선야



여기서 지혜로 얻고, 어짊으로 지키는 그것(之)이 무엇일까요? 주희 같은 송유들은 그것이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라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입니다. 공자는 그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리를 별로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공자가 중점을 두고 설명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바로 군자가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즉, 어진 정치를 펼치기 위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치국이 목표면 대부나 제후가 되는 것이고, 평천하가 목표면 왕(천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당신의 신분에 상관없이 군자학을 익히고 4가지 자격을 갖추면 저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으니까요. 엄청난 계급혁명적 발상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입니다.


결론만 말하면 치국평천하를 위해선 지(知) 인(仁) 장(蔣) 예(禮) 4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지혜로워야 그 지위에 오를 수 있고, 어질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며, 정중함을 갖춰야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예에 입각해 백성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원문 중에서 ‘다다를 리’(涖)는 ‘임할 임(臨)’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중 지, 인, 예는 군자학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반면 씩씩하다, 위엄이 있다, 정중하다는 뜻의 장은 별로 언급되지 않은 개념입니다. 여기선 겉으로 드러나는 개인적 예의바름을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 의례를 넘어서 군자와 백성을 하나로 대동단결시키는 예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해 끌고 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구절은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연상케 합니다. ‘천지의 큰 덕은 생성에 있고, 성인의 큰 보물은 자리에 있다. 무엇으로 자리를 지키는가? 어짊(仁)이로다. 무엇으로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로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로잡아 백성이 잘못을 저지르기 않게 하는 것은 의(義)로다.’


계사전은 주역의 통계학적 원리를 인문사회적으로 풀어낸 글입니다. ‘계사’는 ‘말을 서로 이어 붙인다’는 뜻으로 주역의 괘사(64괘를 말로 푼 것)와 효사(각각의 괘를 이루는 6개 획을 말로 푼 것)의 총체적 원리를 풀어낸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 계사전에는 ‘하늘의 뜻은 어짊을 실현하는데 드러나고’라는 구절과 ‘자왈(子曰)’이라는 공자 말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공자가 쓴 것으로 봤으나 남송시대 이후로는 공자가 죽고 나서 전국시대 때 여러 학자가 모여서 집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기’의 공자세가에는 공자가 말년에 ‘주역’에 심취해 죽간을 엮은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열독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어떤 책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는 것을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표현하게 됐습니다. 이때 공자가 읽은 것은 현재의 주역이 아니라 괘사와 효사만 간략히 적힌 점괘책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계사전 또한 공문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학자들이 공자가 주역의 점괘를 보고 남긴 말을 취합했거나 아니면 공자의 입을 빌려 유가적 관점에서 주역의 구성 원리를 풀어낸 글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무엇으로 자리를 지키는가? 어짊이로다’는 구절이 논어의 이 장에 영감을 준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논어’의 이 구절이 계사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어짊이라고 해놓고 다시 사람을 모으는 것이 재물이라고 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논어’ 13편 자로(子路) 9장을 보면 백성이 많아지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염유의 질문에 공자는 “먼저 부유하게 해 주고 그다음으로 가르쳐야 한다”라고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재물을 언급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나 계사편은 궤사와 효사만 종합한 게 아니라 ‘논어’까지 종합한 글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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