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편 위령공(衛靈公) 제31장
공자가 말했다. “내 일찍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으며 사색만 한 일이 있었지만 유익함이 없었으니 배우는 것만 못하였느니라.”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자왈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
문사철을 종합한 인문학자로서 공자의 공부방식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 공부하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주제로 논문을 쓸 것인가 깊이 고민하면서 선행연구가 어떤 것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 해선 안 됩니다. 자신이 고민하는 것을 이미 밝혀놓은 연구가 있다면 다른 주제를 찾거나 그를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장, 심화시켜 새로운 논문을 발표해야 합니다. 즉 사색(思)과 공부(學)가 나란히 병행되어야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 ‘논어’ 2편 ‘위정(爲政)’ 15장에 등장합니다.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아둔해지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는 뜻입니다. 도를 터득하기 위해선 학과 사가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선 왜 사색에 초점을 둔 공부법만 비판한 것일까요? 제자 중에 누군가 독서를 게을리하면서 깊은 사유로 문제를 돌파하겠다고 하는 이가 있어서 그에게 일깨움을 주기 위해 꺼낸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너는 요즘 왜 책읽기를 게을리하느냐?”는 공자의 질문에 “남의 생각만 읽어봐야 실질적 도움이 안 되기에 제 스스로 문제를 풀기 위해 골똘히 사색 중입니다”라고 답한 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로가 아닐까 싶은데 그러자 공자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충고한 말일 것입니다.
학과 사는 중국유학사에서 두 갈래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송나라 때 유학자 주희는 학의 귀재였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유학경전을 독파하고 이를 주석하고 종합하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참된 본성은 하늘의 이치와 부합한다는 성즉리(性卽理)로 발전했고 이것이 성리학의 완성으로 귀결됩니다. 반면 명나라 때 유학자 왕양명은 사의 귀재였습니다. 그는 성현이 되겠다는 각오로 주희의 가르침을 따라 경전공부에 치중했지만 공허함을 달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깊숙이 응시하는 마음공부에 주력한 결과 마음이 곧 천리라는 심즉리(心卽理)의 깨달음에 도달했고, 이것이 양명학의 출발이 됐습니다.
저는 주희를 서양의 중세 교부신학을 종합하고 완성한 토마스 아퀴나스, 왕양명을 교리 중심의 가톨릭에서 벗어나 개별적 신앙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의 문을 연 마틴 루터에 즐겨 비유합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학과 사를 병행하긴 했지만 주희가 학에 방점을 뒀고 왕양명이 사에 중점을 뒀다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결이 다르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공자는 주희와 왕양명의 장점을 두루 갖췄다고 설파할 수는 있습니다. 만일 공자가 주희와 왕양명을 직접 대면했다면 주희에겐 ‘학이불사즉망’을 말하였을 것이고 왕양명에겐 ‘사이불학즉태’를 말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