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예와 직도

15편 위령공(衛靈公) 제25장

by 펭소아

공자가 말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누구를 실제보다 깎아 말하고, 누구를 실제보다 과하게 칭찬하더냐? 만일 과찬으로 느껴졌다면 아마도 겪어보고 검증한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이다. 하은주 삼대에 걸쳐 면면히 내려오는 성인(聖人)의 도를 굳게 믿고 따라온 백성이라면 그 올곧은 길을 걸어야 한다. 나 또한 이러한 백성의 하나이니라. "


子曰: "吾之於人也, 誰毁誰譽?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자왈: 오지어인야 수훼수예 여유소예자 기유소시의 사민야 삼대지소이직도이행야



3가지 개념을 구별할 수 있어야 전체 취지가 이해될 수 있는 구절입니다. 헐 훼(毁), 기릴 예(譽) 그리고 직도(直道)입니다. 훼는 그냥 비판이 아니라 실제보다 훨씬 더 나쁘게 말하는 것이고, 예는 그냥 칭찬이 아니라 실제보다 훨씬 더 좋게 말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과도한 평가절하, 후자는 과도한 평가절상을 뜻합니다. 보통 훼예(毁譽)는 포폄(褒貶)과 짝을 이뤄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따져 누가 높고 누가 낮은지를 평가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여기선 그 본뜻 그대로 타인의 장단점을 부풀려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직도는 그와 대비되게 휘어짐 없이 올곧게 있는 그대로 평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도 제자의 질문이 결락돼 있습니다. 질문한 제자가 누구인지 밝히기가 민망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유독 질투심 많은 제자가 “스승님은 왜 재아에 대해선 비판만 하시면서 안회에 대해선 그토록 칭찬만 하시는 겁니까?” 같은 질문을 던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면 “스승님은 왜 노나라 재상이 되려 했던 양호에겐 그렇게 혹독하시면서 제나라 재상인 안영은 왜 그렇게 예찬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수도 있습니다.


공자는 제자의 질문을 살짝 비틀었을 겁니다. 비판은 훼, 칭찬은 예로 받으면서 그것이 단순 비판과 칭찬이 아니라 실제보다 과도하게 험담하거나 칭송하는 것으로 바꿔 쳤을 공산이 큽니다. 이어 자신이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 실제보다 부풀려서 말하는 법이 없다고 되받아 칩니다. 여기에 이중 안전망까지 설치합니다. 설사 누군가를 과도하게 칭찬한 것으로 비친다면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검증한 결과 언제가 그가 그 칭찬에 부응할만한 공적을 이룰 것임을 예측해서 그러했을 뿐이라고요.


그럼 왜 과도한 비판은 말하지 않고 과도한 칭찬에 대해서만 언급한 걸까요? 16편 계씨 제5장에서 공자 자신이 익자삼요(益者三樂)의 하나로 ‘요도인지선(樂道人之善)’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익한 좋아함 3가지 중의 하나로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기를 좋아한다’를 꼽았던 공자였으니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하기를 주저한 것입니다.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는 것을 즐기다 보니 과도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 그건 나름의 검증이 끝나서 그러한 것이니 이해해달라는 말인 것이지요.


문제는 맨 마지막 문장입니다. 자신의 인물 평가의 객관성을 강조하다가 갑자기 ‘이 백성들이로다’라는 뜻의 사민야(斯民也)를 외칩니다. 그러면서 그 백성들이 하은주 3대 왕조에서 올곧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 개인의 훼예포폄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돌연 수천 년간 중국에서 살아온 모든 백성이 직도를 행하며 살아왔다는 일반론으로 논리적 비약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여기서 사민(斯民)은 주자가 해석한 공자 당대의 주나라 만백성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하은주 3대에 걸쳐 면면히 내려온 성인(聖人)의 도를 등불로 삼고 지켜온 소수의 백성을 뜻한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한 백성이라면 마땅히 다른 사람에 대해 가감 없고 사심 없이 올곧게 평가하는 직도(直道)를 지켜야겠죠. 그런데 ‘이 백성이로다’를 앞세우며 영탄조로 발언했다는 것은 공자 자신이 그 백성의 일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3대에 거친 성인지도(聖人之道)를 등불로 삼은 백성 중의 하나인 내가 어찌 직도를 지키지 않고 함부로 훼예를 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합니다.


훼예와 직도에 대한 공자의 이런 사유는 공자의 글쓰기 원칙인 ‘술이부작(述而不作)’으로 이어집니다. 있는 그대로 서술할 뿐 새롭게 창작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창의성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문예창작에 바로 접목할 순 없습니다.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여러 왕과 제후의 잘못을 비판하기 위해 공자가 궁리 끝에 발표한 역사집필법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진술할 뿐 거기에 별도의 논평이나 주석을 가하지 않는다고 선언을 하고 쓰는 글이기에 권력자들 입맛엔 안 맞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척 넘어가게 됩니다.


술이부작의 실천을 위해선 기술적으론 형용사와 부사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합니다. 거기에 필자의 감정이 묻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논어에서 공자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명사와 동사에 비해 형용사의 사용이 많지 않습니다. 특히 부사가 사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비판의 메시지를 행간에 숨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단순 나열이 아니라 고도로 계산된 글쓰기가 돼야 합니다. 그럼 ‘논어’에서 발견되는 행간의 메시지는 뭘까요? 혈통이 강조되는 군자라는 용어를 학과 덕을 갖춘 자격 개념으로 바꾼 것, 제후도 지키지 않는 ‘3년상’을 일반 서인까지 지키게 함으로써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게 한 것, 18편 ‘미자’ 제13장에서 백(伯) 중(仲) 숙(叔) 계(係)라는 형제간 서열이 담긴 여덟 선비 이름을 나열함으로써 노나라 공실과 삼환을 싸잡아 비판한 것, 태평성대에 출현해야 할 기린이 노애공 시절 붙잡히자 절필을 선언함으로써 노애공 치세가 태평성대가 아님을 우회적으로 선포한 것…. 이야말로 술이부작에 입각한 현실비판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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